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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Oct 28. 2023

마틴 스콜세지 신작, <플라워 킬링 문>

*엔딩 시퀀스 설명, 스포일러 포함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길게 이야기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그때 다시 이야기할까 했는데, 그전에 짧게라도 메모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몇 글자 단상을 남긴다. 우선 '플라워 킬링 문'이라는 이름에 대한 안타까움. 롯데엔터테인먼트가 무슨 생각으로 이 영화의 제목을 이따위로 번역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어쭙잖은 번역 대신 'Killers of the Flower Moon'이라는 원제를 그대로 쓰는 것이 좋았을 테다. 이 영화는 1920년대 오클라호마를 배경으로 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이 지역에서 살던 아메리카 원주민을 백인들이 하나둘 착취하고 살해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블랙 다이아몬드'인 석유를 쟁취하기 위해 이 산업을 잡고 있는 '오세이지'들을 죽이는 살인자의 타이틀을 부각시켜 '킬러'를 그냥 앞에 빼야 하는 영화인데, 이런 제목으로 이상하게 개봉한 것이 정말 안타깝다.



영화 초반에는 범작이라 생각했지만, 중후반을 넘어 엔딩에 다다라 '마틴 스콜세지가 또 다른 걸작을 만들어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우선 세 시간 반에 달하는 시간 동안 버릴 시퀀스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그것들이 이어져 긴 러닝타임을 그야말로 '순삭'되게 만드는 드라마라는 점이 가장 압도적이었다. 전체적인 내용의 흐름은 예의 스콜세지 영화에서 보이듯 유려하지만, 마지막을 장식하는 엔딩 시퀀스, 그러니까 이 이야기가 맺음되고 무대가 바뀌어 현대로 넘어와, 이 사건을 연극으로 보여주는 연극 무대에서 마틴 스콜세지가 직접 마이크를 잡아 맺음하는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 직후에 이어지는 부족의 노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 흐름을 볼 때, 그야말로 소름이 쫙 돋았다. 이건 스콜세지만 할 수 있는 거구나. 이런 것도 한단다, 자, 너는 어떻게 받아들일래? 라는 질문을 갑자기 받은 느낌. 아, 이게 거장 만이 할 수 있는 변주구나. 이걸 세 시간 반에 달하는 러닝타임의 마지막에 그저 툭, 하고 던져 놓는구나. 



릴리 글래드스톤의 연기는 정말 좋았다. 로버트 드니로와 디카프리오의 연기 또한 빼놓을 수는 물론 없지만, 워낙 압도적이었던 지라 나머지 둘이 부수적으로 느껴졌다. 스콜세지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이 모두 그렇지만, 정말 적재적소에 배치된 느낌이 이번에도 강하게 들었다. 특히 자신이 멍청한 것을 자각하고 있고 되는 대로 조종당하는 것 또한 인지하고 있는 전형적 백치의 멍청이 연기를 한 '어니스트'역의 디카프리오는, 영화를 잘 굴러가게 만드는 윤활유나 다름없었다. 



애플TV에 올라오겠지만 지난 번 <아이리시맨>도 그렇고 이번 작품도 그렇고, 역시 극장에서 봐야 한다. 세 시간 반, 네 시간이 넘는다고 하더라도 스콜세지의 영화는 언제나 놀랍다. 그 긴 러닝타임 덕분에 여기저기 추천하긴 좀 저어되지만 여전히 그렇다. 정말로 오래도록 남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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