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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Oct 29. 2023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포일러 포함

개봉 직후 관람하고 그닥 좋지 않았던 영화나 OTT는 따로 기록하지 않는 편이다. 물론 평작도 마찬가지긴 하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은퇴를 번복하고 만든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또한 내겐 평작에 가깝다. 그런데도 몇 가지를 기록하는 이유는 완벽하게 호불호가 갈리는 친구와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조금은 개인적인 사담이다. 서로 다른 의견 차이를 더 적극적으로 나누기 위해서, 내게 이 영화가 참으로 매력없게 느껴졌던 것들을 이곳에 남겨본다. 그에 앞서 덧붙이자면 요시노 겐자부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두고 있으나 접점은 조금도 없다. 물론 이 점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단점은 아니다.


압도적인 작화와 지브리 혹은 미야자키 하야오 특유의 장면 연출은 과연 그의 작품이다, 싶을 정도였다. 몇몇 시퀀스들은 아직도 눈에 선할 정도로 좋았다. 장면 장면을 떨어뜨려 놓고 봤을 때, 이런 연출은 정말 좋다고 무릎을 탁 칠 만한 점들은 많았다. 내게 가장 큰 문제는 그 단편들이 모여 하나의 줄기를 이룰 때의 모습이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현실 세계와 현실 밑의 세계. 이걸 위의 세계와 아래의 세계라고 말한다면, 위와 아래가 접점을 이루는 장면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 위의 세계에 관한 설정은 완벽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주 강하며 동시에 그걸 스스로 비판하려는 시도가 보이는 설정들이 다수다. 80세가 넘은 누군가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그에 판타지의 서사를 뿌려 놓았다고 말하면 어느 정도 맞으려나. 하지만 이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아래의 세계로 향한 이후부터는, 급격하게 설정의 붕괴가 일어난다. 아래의 세계가 꿈의 세계, 뭐든 되는 세계, 무엇에 의해 설정된 세계, 창의의 세계라는 것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얼기설기한 세계관을 참아낼 수가 없었다. 그것이 구전으로 돌아다니는 이야기의 조합이든 혹은 설화의 일부분이든 간에 상관없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세계관은 매력적이지 않다. 그것을 엄청난 작화와 입이 딱 벌어지는 연출로 퉁치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 사이사이에 구멍 뚫려져있는 개연성이 내겐 가장 큰 문제였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영화를 바라본 친구가 "캐릭터가 매력이 없기에 세계관도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이 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선 양쪽의 세계를 이끌어가는 주인공 '마히토'의 동기.마히토는 양어머니(이자 이모)를 구하기 위해 아래 세계로 들어가고, 그곳에서 사망한 친어머니의 과거를 만나며, 양어머니를 자신의 진정한 어머니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설정이다. 아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결심하는 장면에서부터, 이 설정 자체가 붕 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서사가 '왜'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작품 속 주인공의 캐릭터성이 현저히 부족하다보니, 그에 딸려오는 다른 다양한 인물과 동물들이 전체적으로 밋밋해보인다. 그 끝자락에서 만난 마히토의 선조 할아버지가, 퍼즐을 쌓아가며 세계를 지탱하고 후계자를 마히토에게 제안하는 설정에 다다라서는...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앞에서 쌓여진 모든 것들에 대한 설명이 불투명한 채로, 그리고 전체적으로 누더기처럼 여기저기 기워진 채로 갑자기 감동적인(것을 강요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앞선 두루뭉술한 설정 때문에 이 부분 또한 전혀 감흥이 없었다. 이후에 오로지 남는 것은 작화, 작화, 작화. 그리고 새에 대한 묘사. 


다만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들어 왔던 이 여러 가지의 세계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로 마무리된다는 것을 가정해보았을 때, 그가 남긴 작품들을 마무리하는 관점에서의 이 작품에 대한 소회는 작품 자체에 고평가를 준 다른 사람들과 동일하다. 80세가 넘도록 현역으로 활동하며 이러한 장면들을 생각하고 연출해내고 대중 앞에 선보인다는 것에 대한, 그러니까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거장에 대한 평가와 경외는 언제나 변함이 없다. 그것들을 차치하고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오로지 작품만으로 바라봤을 때는, 지브리의 평작인 동시에 치명적인 단점을 안은 채 비주얼로만 승부하려는 작품으로 읽혀질 뿐이다. 전범국의 전쟁에 대한 태도나 이해하기 힘든 가족 풍습에 대한 비판도 있다만, 그러한 설정에 대한 비판은 내겐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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