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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Dec 25. 2023

2023년 올해의 영화 베스트 10 (국내 개봉작)

*이번 주 추천작은 올해 영화 베스트 10, 올해 넷플릭스 베스트 10으로 대체합니다 :)


2022년도의 개봉작을 꼽는 건 어렵지 않았다. 굵직한 몇 방이 있었기에 이미 그 영화를 보는 와중에 '아, 이건 올해의 베스트네' 싶은 생각이 바로 들었던 영화들이 있었고, 그때의 생각은 연말 베스트를 뽑는 순간까지 이어졌다. 2023년은 개봉작 베스트를 꼽는 게 다소 어려웠다. 블록버스터급이면서 동시에 영화계의 약진을 가능케한 한국 영화가 작년보다 월등히 많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목록에 들어가지 못한 한국 영화들이 제법 있다. 그들 모두를 말하고 싶었지만 제일 마지막에 짧게 목록 외의 이야기로 갈무리한다.


마지막까지 나의 올해 베스트 영화는 무엇인가를 좀 많이 고민했다. 1위부터 5위까지, 특히 1-3위의 영화들은 아마 이견이 없을 영화들이지 않을까 싶다. 2023년의 상하반기에서 각각 한 두 개씩을 꼽았다. 그밖에는 고민이 많았다. 고만고만한 영화들 사이에서 그래도 마음에 조금 더 들었던 영화들을 솎아내기가 참 쉽지 않았다.


올해 가장 기대작 중 하나였던 리들리 스콧의 <나폴레옹>과, 크리스티안 펫졸트의 <어파이어>는 관람하지 못했다. <어파이어>는 때를 놓쳐 '못했다'는 말이 맞고 <나폴레옹>은 '않았다'는 표현이 맞다. 이번에 개봉한 <나폴레옹>이 감독판(250분)으로 상영되었다면 바로 보러 갔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감독판을 상여해주는 곳이 없었기에 애플TV+로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킹덤 오브 헤븐> 같은 경우 상영판과 감독판이 아예 다른 영화였기에, 개봉 직후의 평가는 다소 이르다 생각된다. 그건 그렇고 이걸 집에서 시작부터 끝까지 풀로 스티리밍으로 볼 수 있느냐없느냐 그것이 문제다. 리들리 스콧 영화는 항상 개봉하면 무리를 해서라도 극장에서 보곤 했는데 애플TV 공개분까지 미뤄야 한다니 좀 아쉽다.


이 리스트는 2023년 1월부터 2023년 12월까지의 국내 개봉작 만을 기준으로 했다. 언제나 그렇듯 순위는 10위부터 1위 순서대로다.


10. <콘크리트 유토피아>


대종상과 청룡상 수상에 빛나는 올해의 한국 영화 중 하나. 전형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 디스토피아물에 충실하며, 세계의 멸망 이후 버려지다시피한 사람들의 삶을 그리는 작품이었으며 호평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으레 예상되는 한국형 재난물의 서사에서 조금 비켜나마녀 다양한 캐릭터들의 입체적인 면모를 살린 수작이다. 선과 악의 경계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결국 선에 치우친 인물들이 생존하는 결말이 좋았다. 간만에 극장에서 즐길 만한 한국 상업 영화가 등장했다는 생각이 들어, 관람 중에 연신 가슴이 두근거렸던 작품.


9. <다음 소희>


<다음 소희>는 <도희야>를 연출한 정주리 감독의 두 번째 작품으로, 올 한 해동안 압도적인 찬사를 받은 영화이기도 하다. '전주 콜센터 실습생 사건'이라는 실화를 소재로 하고 있으며, 부산국제영화제 국내 프리미어 상영을 가졌을 때도 다양한 호평을 얻었다. 김시은과 배두나의 케미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의 주제가 가지는 폭력성, 혹은 사회적 파급성에 대해 면밀히 들여다보고 제작한 게 여실히 느껴지는 연출과 각본이었다. 감독의 말대로, 소희의 현실은 우리 모두의 현실이기에.


8. <타르>


북미권에는 2022년에 개봉했지만, 국내에서는 2023년 2월에야 만나볼 수 있었던 영화. 토드 필드 감독의 십수 년 만의 복귀작이었는데, 그에 더해 케이트 블란쳇과 니나 호스, 그리고 노에미 메를랑이 합류해 그 기대를 더한 영화였다. 케이트 블란쳇은 <타르>로 골든글로브 영화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면 왜 케이트 블란쳇이 그 상을 수상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 일말의 이견이 없을 정도다. 음악 영화도 전기 영화도 아닌, 묘하게 삶의 민낯과 불편한 감정들을 꿰뚫고 건드리며 진행되는 이 영화로 케이트 블란쳇은 어떤 정점을 이루었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7.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오랜 시간 기다린 '스파이더-버스'의 두 번째 작품. 전작이 워낙 압도적으로 좋았기에, 후속작도 기대를 많이 하고 관람했지만 역시 명불허전이었던 영화였다. 전작과 다르게 결말 부분에서 차기작을 완벽하게 암시하고 끝났기에, '스파이더-버스'의 팬들에게 탄식을 끌어내기도 했던 일화가 있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갈아 넣은(그리고 스태프들의 노동력까지...) 영화로, 본격적인 스파이더-버스의 시작을 알리는 동시에 전작의 장점들이 배가 된 작품이었다. 이 영화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아트 워크이자 또 하나의 마스터피스였던 영화. 돌비로 재개봉한다면 적극적으로 관람을 추천하고 싶다.


6. <애프터썬>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되었을 때부터 개봉 직후까지 쭉 화제를 끌고 있고, 지금도 여전히 다양한 사람들이 올해의 베스트 중 하나로 꼽는 영화. 샬롯 웰스 감독의 놀라운 데뷔작인 동시에, 감독 자신이 아버지와 겪었던 실화의 일부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기도 하다. '아버지와 딸에 관한 이야기'라는 단순한 주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그 접근 방식은 그렇게 평평하지 않은 몹시 신기하고도 기이한 영화로,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어떤 이상한 감정이 물밀듯 몰고 올라와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 명망에 걸맞게 개봉 이후에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현재는 넷플릭스, 웨이브, 왓챠, 티빙 등에서 관람할 수 있다.


5. <오펜하이머>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이자 올해의 기대작이었던 <오펜하이머>.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에 대해 짙고 심도있게 다룬 이 작품의 공개 이전에, 놀란의 전기영화를 표방한 어떤 대상에 대한 영화 혹은 현상에 대한 영화에 대한 걱정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그 모든 우려를 말끔하게 날려버린 영화가 되었다. 크게 세 가지의 시점으로 나누어져있는 이 영화는 얼핏 전기영화의 틀을 잡고 진행되는 듯하지만, 그보다 더 멀리 혹은 가깝게 카메라를 이동시키며 오펜하이머라는 인간의 내면과 그를 둘러싼 다양한 집합들을 화면비 변화 등 다양한 변주를 주며 보여주면서도 스릴러 장르의 기법을 충실하게 따라간다. 오펜하이머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효과를 위해 IMAX 틀 내에서의 변화를 꾀한 게 아주 성공적이었다 생각되진 않지만, 영화 내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이미지의 거대한 중첩과 더불어 지속적인 플래시 효과, 오펜하이머 개인의 망상과 환상을 불균질하게 나열하는 설정은 압도적으로 좋았다.


4. <괴물>


고라에다 히로카즈의 <괴물>은 사카모토 유지의 각본과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이 유려하게 잘 융합되어 그야말로 폭발적인 효과를 낸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영화를 보고 난 직후, 퀴어 영화사에 있어 하나의 굵직한 획을 그은 게 아닐까 깊게 생각해볼 정도로, 이 영화는 퀴어적이며 그것을 옆으로도 뒤로도 피하려 하지 않고 아주 곧게 받아쳐낸다. 고레아다 히로카즈의 역작이라기보다 사카모토 유지의 역작이라는 말을 새기고 싶을 만큼, 각본이 좋았다. 더불어 영화를 보고 함께 읽으면 좋을 사카모토 유지의 인터뷰를 붙여본다.


http://cine21.com/news/view/?mag_id=103941


3. <이니셰린의 밴시>


나의 사랑 마틴 맥도나...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보고 정말 기립박수를 칠 정도로 좋아했고, 2023년 3월에 개봉하자마자 극장으로 달려가 한 번을 더 봤다. 마틴 맥도나의 각본은 이제 어느 정도 신의 경지에 오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좋았던 영화다. '친했던 친구가 갑자기 절교를 선언했다'라는, 이 단순한 문장이 어떻게 이렇게 은은하고 잔잔하게 미친 인간들의 이야기로 확대될 수 있는지 정말 놀라웠던 작품이다. 좋아하는 배우 중 하나인 배리 키오건을 정말 잘 쓴 영화이자, 그외에 주조연들인 콜린 패럴, 브랜던 글리슨, 케리 콘돈 누구 하나 빠질 데 없이 완벽하게 배치되어있는 작품. 콜린 패럴이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길 간절히 기원했지만 아쉽게도 그것은 불발되었다. 현재 디즈니+를 통해 관람할 수 있다.


2. <파벨만스>


바로 아래 거론한 베스트 1위의 작품을 보기 전까지, <파벨만스>는 올해 영화 베스트 목록의 부동의 1위였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신작인 동시에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를, 직접 관람하기 직전까지도 이런 엄청난 작품을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영화에 대한 영화, 영화 사랑에 대한 영화임을 표방하는 <파벨만스>는, 무언가를 좋아한 적이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영화기도 하다. 누구나 하고 싶어하고 따라할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아무도 만들 수 없는 이야기를 스필버그가 몸소 보여준 셈이다. 누군가 영화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파벨만스>라고 답할 수 있을 정도로 한동안 빠져있었고 그 감흥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파벨만스>는 올해의 빛이다.


1. <플라워 킬링 문>


오오 마티! 하고 주접을 한 번 세게 떨고 시작해본다. 나의 올해의 영화 베스트 1위는 마틴 스콜세지의 <플라워 킬링 문>. 80세의 나이로도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다니! <플라워 킬링 문>은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오세이지'들이 오클라호마에 도착한 백인들에게 살해당했던 사건인 '오세이지족 연쇄살인 사건'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영화 초반에는 스콜세지의 범작이라 생각했지만, 중후반을 넘어 엔딩에 다다라 거대한 망치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세 시간 반에 달하는 시간 동안 버릴 시퀀스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점,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엔딩 시퀀스로 풀어내는 실험적인 구조. 스필버그가 앞서 그랬듯 스콜세지 또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른바 거장만이 할 수 있는 변주를 보여주었던 올해 최고의 영화. 세 시간, 네 시간이 넘는다고하도라도 스콜세지의 영화는 언제나 놀랍다. 정말 오래도록 현역으로 뛰어주기를, 그의 영화를 보며 자란 팬의 하나로 간곡히 바라고 또 바란다.


그밖에 순위 안에서 많은 고민을 했던 영화 중 대표적으로는 <서울의 봄>이 있다. 이 글을 미리 작성하는 바로 지금은 <서울의 봄>이 930만 관객을 돌파한 시점이다. 실제로 이 글이 포스팅 되는 건 12월 마지막 주일 텐데, 그때의 성적이 자못 궁금해지는 영화다. <서울의 봄>이 서사나 연출적으로 역작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한국의 근현대사를 알고 혹은 그 격동의 시기를 지내온 한국인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실재가 있기에 이 영화가 주는 울림과 파급력은 상당하다. 어떤 부분은 완벽한 각색으로 가져가고 어떤 부분은 현실의 지점들을 그대로 답습한 장면들의 직조인데, 그런 점에서 김성수 감독의 선택은 놀랍다. 파워풀한 '아수라' 그 자체를 만들어내는 장르적 쾌감은 이미 증명했으나, <서울의 봄>은 그런 김성수의 전혀 다른 기점을 만들어준 영화 중 하나라고 해야 할까. 2시간 내내 '전두광'으로 분한 전두환의 모습을 견디는 것이 고역이었으나, 이 영화는 분명 한국영화사의 어떤 획을 그었다 싶은 생각이 영화를 관람하는 중간중간 들었다. 모쪼록 올해 두 번째 천만 영화이자 정우성 배우의 첫 번째 천만(놀랍게도 네...)영화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너와 나>와 <바빌론>


또다른 논외로는 조현철 배우의 첫 연출작인 <너와 나>와 데미언 셔젤의 신작 <바빌론>. <너와 나>는 부산국제영화제 공개 당시 보고 싶었는데 보지 못하고 개봉 이후에야 만난 영화로,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기이한 영화였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애틋한 감정과 화가 나는 감정 등 모든 것이 응집되어있었기에 몹시 좋았는데, 개인적으로는 몇 가지 불호의 지점들이 있었기에 순위로는 꼽지 못했다. 데미언 셔젤의 <바빌론>은 관람 당시에는 굉장히 인상 깊었으며 그의 역작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으나, <파벨만스>를 이후에 봐서인지 '영화에 관한 영화'에 대해 고민하는 지점이 다소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어 곱씹을 수록 더 밑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마고 로비를 보는 것이 내내 즐거웠고, 무성영화와 유성영화의 아주 심한 과도기적 면모를 다른 각도로 들여다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야, 이거 미친놈 아니야?" 싶은 순간들의 연속이라 보는 당시에는 굉장한 즐거움이 있던 영화였다.

그보다 더 멀리, 개인적으로 기억해두고 싶은 2023년의 어떤 순간은 <마이 샤이니 월드>였다. 올해 15주년을 맞은 샤이니의 다큐멘터리로, 커다란 화면에서 움직이는 종현을 본 순간들과 그때부터 터져나온 눈물의 순간들을 기록해두고 싶다. 다큐멘터리 연출 자체는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극도로 평범한 것이었으나 오랜 시간 샤이니를 지켜본 사람으로, 또한 국내 아이돌 중 샤이니가 최애인 팬으로 올해 최고의 순간 중 하나가 아닐 수 없었다. 그냥 그 존재 자체로, 올해의 한 켠에 적어두고 싶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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