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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Jan 01. 2024

이번주 넷플릭스 추천작-<종말에 대처하는 캐럴의 자세>

새해 첫날, 2024년의 첫 번째 월요일에 추천하는 오늘의 작품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종말에 대처하는 캐럴의 자세>. 원제는 'Carol & The End of the World'로 '캐롤과 세계의 종말'이라는 제목으로 스트리밍을 시작했으며, 지난 2023년 12월 중순부터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댄 구터만의 작품으로 바델 엔터테인먼트와 넷플릭스가 공동으로 제작 및 연출을 맡았고, 마사 켈리, 베스 그랜트, 로렌스 프레스먼 등 주로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나 혹은 코미디 드라마나 시리즈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미국 배우들이 주조연을으로 출연했다.


<종말에 대처하는 캐럴의 자세>는 2021년 연말에 흥행했던 아담 맥케이의 연출작 <돈 룩 업>과 비슷한 내용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그보다 훨씬 건조한 블랙코미디다. 행성 '케플러'가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것이 관측되었고, 이후 전 세계의 사람들은 행성과 정면 충돌 예정인 지구의 종말이 코앞에 닥쳤음을 실감하고 행성 충돌 전까지 하고 싶은 일을 전부 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 먹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쾌락과 꿈을 좇아, 평소에 하고 싶었지만 여러 이유로 하지 못했던 파격적인 일을 하며 종횡무진하는 가운데, 조용하고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인 40대 여성 '캐럴'은 딱히 할 일이 없이 하루하루를 보낸다. <종말에 대처하는 캐럴의 자세>는 미쳐 날뛰거나 헐벗은 사람들 사이에서 묵묵히 빨래를 하고 책을 읽고 장을 보고 요리를 하던 캐럴의 일상에서 출발하는 디스토피아 서사의 드라마다.


'종말'을 소재로 하는 많은 애니메이션 중, <종말에 대처하는 캐럴의 자세>는 아주 독보적인데 그 이유는 앞에서도 말했듯 죽음을 앞두고 사라지는 하루하루가 간절하지 않은, 무기력하고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아주 평범한 여성 '캐럴'을 주연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종말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종말을 앞둔 이 모든 난리법석이 불편하고, 종말을 알게 되기 이전과 다름 없는 일상을 살아가며 자신의 이런 일상을 보장받고 싶은 캐럴이라는 인물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곧 맞이하게 될 죽음을 대비한다. 댄 쿠터만은 이 작품이 "일상에 관한 러브레터로 다가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감독의 말을 충실히 따르는 캐럴은 남들에겐 지루하고 고루해보여도 자신만의 일상을 찾아가는 것에 대한 굳건한 의지와 신념을 가지고 하루를 살아간다. 감정 기복이 거의 없는 캐럴이, 하고 싶은 대로 뭐든 해 왔던 혈육과 대치하는 구조도 즐거웠고, 그 과정에서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하는 방법 같은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뭉클하고 꽤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표정 변화가 거의 없이, 놀라거나 슬퍼하는 기색을 남들에게 크게 드러내지 않은 채 묵묵히 추구하는 것을 해나가는 캐럴의 모습을 보며 오지 않을 먼 미래, 하지만 불현듯 당도할 수도 있는 종말의 미래에 대해 잠시 생각해봤다.


그렇다고 마냥 휴머니즘이 탑재된 드라마적인 요소만 즐비한 것은 아니다. 블랙코미디 장르를 표방하는 작품답게, 온화한 캐럴의 일상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사람들도 다수 등장하고, 평화로운 일상이 갑작스런 일로 무너지기도 하며, 위태위태한 순간들과 날 선 말들도 자주 오간다. 여러 신체 부위(...)가 등장하기 때문에 영상물 등급도 청소년 관람불가인데, 이 모든 요소의 가장 위에서 평정을 잡아주는 캐럴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금세 열 개의 에피소드를 정주행할 수 있다. 말하자면 '단짠'의 매력이 있는 애니메이션이라고 해야 할까.


더불어 감독이 K팝 팬이라는 사실을 자명하게 드러내는 씬스틸러 장면들이 등장하는데, 이 애니메이션을 정주행하게 된다면 그런 장면들이 어디에 배치되어있고, 어떤 음악과 섞이는지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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