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는 생리, 인도여행 중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가능하면 피하고 싶지만 반드시 언젠가는 만나게 될'. 철천지 원수에 대한 묘사나 일생일대의 숙원과제의 설명이 아니다. 여성이라면 한 달에 한 번 만나야만 하는, 귀찮고 짜증나는 '생리'에 관한 이야기다.
여행의 계획을 짤 때 여성들은 대체로 생리 기간을 염두에 두곤 한다. 생리주기 즈음 일어나는 몸의 변화와 통증들을 생각하면, 편히 쉬고 즐기자고 가는 여행에까지 그것들을 끌어 안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연휴나 짧은 주말의 여행 즈음이야 문제 없이 일상처럼 지나갈 수 있었지만, 처음으로 인도여행을 준비할 때는 생리를 대비하는 것 자체가 무척 곤욕이었다. 한 달은 족히 넘게 인도에 머물 예정인데 애써 그 기간을 피해서 간다고 해도 다음 생리는 반드시 찾아올 것이니 이에 대비해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할지 너무도 막막했기 때문이다. 인도는 일본이나 미국 같은 나라들과 달리 편의점이 제대로 되어 있지도 않을 것이고, 생리대를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마트 같은 것이 있을까? 갑자기 생리가 터졌는데 생리대를 구할 수 없는 시골에 있다면? 온갖 의문과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자세히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고, 가이드북들에는 굳이 인도에 가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이야기들만 널려 있으니 답답할 수 밖에 없었다.
나의 첫 번째 인도여행은 2개월로 계획되어 있었다. 생리주기에 맞추어 이동을 할 수는 없으니 루트는 짜고 싶은 대로 짜고, 생리대는 한국에서 그냥 가져가기로 결정했다. 데일리, 나이트 가려서 가져갈 처지가 아니었기에 그냥 일반 중형으로 최대한 여러 개를 넣었다. 생리대의 무게가 가볍다고는 하지만 '짐'이라는 것엔 변함이 없었다. 하루에 두 번 쓸 것을 예상하고 대충 생리대 낱개로 서른 개 정도를 배낭에 챙겨 넣으니 그 부피가 상당했다. 반 정도 줄여볼까도 생각했지만 인도에서 어떤 상황을 만나게 될 지 알 길이 없었고, 어차피 생리대는 1회용이니 가서 열심히 사용하고 버리며 짐을 비우기로 생각하니 마음이 좀 놓였다. 결과적으로 생리대를 남겨오지는 않았다.
처음 인도여행에서 생리를 겪어야 했을 때의 당혹감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생리통이 심해지면 무슨 약을 먹어야 하는지, 배낭에 이물질이 묻어서 생리대를 전부 버려야 한다면 어디서 구매할 수 있을지 누군가 조언을 해주었다면 그 당혹감과 불안감의 절반 정도는 덜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고작 '생리'지만 그래도 '생리'. 이것때문에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인도여행을 그르칠 수는 없다. 인도여행 준비에 앞서 생리라는 거대한 산이 발목을 잡고 뒷덜미를 끌어 당겨 고민인 사람들을 위해, 여행기간별로 이에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2, 3주 정도의 짧은 여행은 사실 생리주기를 피해서 가는 것이 제일 좋지만 만사가 내 뜻대로 되지 않으니 만일 이 기간에 생리가 겹친다면 평소 사용하던 생리대 그대로 챙겨가는 것을 추천한다. 짧은 여행이니, 일상에서 사용하던 것들을 챙겨가도 큰 짐이 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인도는 생리대 제조 기술이 그리 좋지 않아 한국으로 따지면 90년대 즈음에 유행했던 제품들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인도의 생리대는 한국의 제품보다 훨씬 두껍고 통풍도 잘 되지 않는다. 굳이 불편한 모험을 하고 싶지 않다면 몸에 익숙한 생리대를 챙겨가도록 하자.
평소 생리통이 너무 심해 병원을 갈 정도라면 먹던 약을 구비해가는 것이 좋다. 짧은 기간에 먼 거리를 여행하는 것이기에 생리가 겹치지 않으면 좋으니 미리 경구피임약 등을 먹으며 기간을 좀 조절하는 것도 추천한다. 하지만 평소 경구피임약을 먹지 않다가 갑자기 먹으면 호르몬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기에, 산부인과 진단을 받거나 여행 훨씬 전에 경험해보는 등의 과정이 필요하다.
생리대에 대한 고민에 빠져드는 것이 바로 이 시기다. 짐이 되어도 생리대를 싸서 가져갈 것인가 아니면 직접 가서 조달할 것인가. 예전과는 다르게 최근의 인도 중소형 마트들에서 다양한 생리대를 구비하고는 있지만 이런 마트들은 대도시들에 한정되어 있기에 원하는 물건을 찾을 수 없는 확률이 높다. 대도시를 제외한 인도의 외곽지역에는 대체로 여성용품이 제대로 유통되지 않기 때문에, 주요 도시를 제외한 지역을 방문하여 행여 생리대를 찾았다고 한들 유통기한이 지나있거나 손상이 되어 이물질이 침투해있을 확률이 무척 높다. 만일 생리대에 대한 기호가 확실하거나 다른 종류를 쓰면 트러블이 일어나거나 하는 사람이라면, 고민하지말고 몇 달 치를 한국에서 가져가도록 하자. 부피가 있어도 가볍기 때문에 그렇게 큰 짐이 되진 않는다.
특별히 생리대를 타는 유형이 아니라면 현지에서 충분히 조달이 가능하다. 델리, 뭄바이, 첸나이, 꼴까타, 벵갈루루 등 한 주의 대표를 이루는 도시들에는 한국에서 유통되는 상품들도 많다ㅡ심지어 팬티라이너도 있다!ㅡ. 크기나 종류별로도 고를 수 있고 영국 제조사의 탐폰 등도 싼 값에 구할 수 있어 어떤 사람들은 출국 전에 델리의 드럭스토어를 쓸어 오기도 한다. 생리대 제품에 벌레가 끼어있다거나 하는 사건도 생기긴 하지만 주로 외곽 도시 낙후된 지방 등에서 발생하는 사건이고, 대형 마트에서 유통되는 제품들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니 안심해도 좋다.
인도의 생리대는 가격에 따라 천차만별이니 대도시의 큰 마켓이나 드럭스토어들을 만난다면 생리대를 입맛에 맞는 것으로 구매하도록 하자. 만일 반 년 이상을 인도에서 보내야 하는 일정이라면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서 적어도 2, 3개월치의 생리대는 구비해두도록 하자. 오늘은 델리에 있더라도 내일은 마날리 산골짜기에 있을 수도 있다. 인도에는 24시간 편의점도 없고 한국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지하철역의 생리대 자판기도 없다. 장기여행자는 생리대가 눈에 들어왔을 때 무조건 사두어야 한다. 이 때는 그 자리를 벗어나면 기회가 없다는 심정으로 돈을 아끼지 않는 편이 좋다.
자주 먹던 진통제 등 통증 관련 비상약이 떨어졌을 경우엔, 근처 약국으로 가서 'Head Pain' 혹은 'Headache'에 해당하는 약을 달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생리통에 해당하는 'Menstrual pain'라고 설명하면 이 증상 자체를 모르거나 혹은 안다고 해도 정확히 생리통에 해당하는 약을 가지고 있는 곳이 많지 않다. 때문에 가끔씩 전문약사가 아니라 그냥 상점 개념으로 운영하는 시골의 약국들에서는 이에 대해 감기약 처방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pain'이 심하다고 이야기하도록 하자.
어떤 생리용품을 가져가든 개인의 자유지만 위생상의 이유로 절대 추천하고 싶지 않은 생리용품이 있다. 바로 '면생리대'와 '생리컵'이다. 나는 일반생리대를 쓰지 않고 면생리대를 몇 년 째 쓰고 있지만, 인도에 있을 때 만큼은 면생리대를 포기해야 했다. 면생리대의 부피가 크다는 이유도 한 몫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빨래 때문이었다. 면생리대는 건강에 좋은 대신 관리가 조금 귀찮은데, 한국에서는 그럭저럭 버틸 수 있는 그 귀찮음의 손질을 여행 중에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생리대의 핏물을 빼려면 물에 오래 담궈두거나 주기적으로 삶아주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빨래를 삶아가며 여행을 할 수도 없을 뿐더러 생리대를 담궈두어야 하는 물의 청결도를 가늠하기 힘들다. 인도의 물 대부분은 석회질이 포함되어 있으니 당연히 면생리대 자체를 상하게 하는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위와 비슷한 이유로 생리컵도 좋지 않다. 편하긴 하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생리컵을 씻어야 하는 물의 상태를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깨끗한 세척이 불가하다. 인도의 물이 전부 청결도가 낮은 것은 아니지만 필터를 걸러 정화되는 물이 어떤 것인지 판단하면서 여행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런 곳에서는 일회용으로 쓰고 버릴 수 있는 생리대가 더 적합하다는 것이다. 생리컵을 세척하기 위해 생수를 들고 다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사막을 여행한다거나 트레킹 중인 상황에서는 무척 난감할 것이다.
2018년 여름을 기점으로 인도 정부는 생리대에 대한 세금을 폐지했다. 나뭇잎을 생리대 대신으로 쓰던 시골마을을 예로 들어 '공장에서 생산된 기존의 생리대는 사치품'이라는 주장 아래 유지되어 온 생리대에 대한 세금 부과는 인도 시민단체들의 격렬한 저항으로 삭제된 것이다. 인도여성들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생리대에 대한 세금이 사라진 것은 여행자의 입장에서도 환호할 일이다. 세금에 대한 압박 때문에 생리대를 사기 주저했던 사람들은 이제 적극적으로 생리대를 소비할 것이고 수요가 증가하면 공급도 함께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인도의 여성용품 시장, 특히 '생리대'에 대한 소비는 크게 증가하고 있지는 않다. 생리대 자체가 원체 폭넓게 공급되던 제품이 아니었던 이유도 있겠지만 오랜 시간 천과 잎에 길들여져 왔던 인도 대다수의 여성들에게 생리대의 벽은 아직 높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낮은 가격에 양질의 생리대를 제공하기 위한 중소기업들의 고군분투가 이제 막 시작된 셈이니 앞으로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생리에 대한 걱정 없이 인도를 여행할 날은 없겠지만 적어도 '생리대'에 대한 걱정 없이 인도를 여행할 날은 곧 오게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