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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넷플릭스 추천작 - <정숙한 세일즈>

by 강민영

이번 주 추천작은 JTBC 주말 드라마였던 <정숙한 세일즈>. 현재는 티빙과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이며, 2016년에 방영되었던 영국 드라마 <Brief Encounters>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한국 드라마다. 김소연, 김성령, 김선영, 연우진, 이세희 등이 주연을 맡았고, 조웅 감독이 연출을, <막돼먹은 영애씨>와 <김비서가 왜 그럴까> 등 다수의 드라마를 집필한 최보림 작가가 각본을 맡았다. 12부작의 다소 짧은 호흡으로 기획된 코미디, 시대극, 로맨스 장르가 섞인 드라마로, 90년대를 레트로하게 다뤄내는 동시에 여성들의 케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라 방영 중에 꽤나 호평을 받았다.


<정숙한 세일즈>는 앞서 말한 대로 90년대, 그러니까 '성'에 대해 사회적으로 금기시하던 습관이 남아있는 시절에 '성인용품 방문 판매'를 하기 시작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수도권이나 서울 한복판도 아닌, 지방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 돌연 란제리, 슬립, 성인기구 등 다양한 성인 용품을 판매하기로 결심한 여성들의 이유는 '여권 신장 고취'나 '성 의식 해방' 같은 거창한 목적 때문이 아니다. 혼자 아이를 도맡아 키워야 하는 미혼모, 남편의 불륜을 목도해 이혼을 결심한 여자, 허덕이는 살림을 가까스로 일궈나가는 다둥이 엄마 등등 각각 사연은 다르지만 자신과 가족의 안정을 위해,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돈'을 벌고 싶어 시작한 일이다.


하고 많은 물품 중에 성인용품을 택하게 된 이유도 각각 다 다르지만, 뜻하지 않게 시대나 장소에서 훨씬 앞서 나간 이 물건들을 판매하게 되면서 정숙(김소연), 금희(김성령), 영복(김선영), 주리(이세희) 네 명의 여성들은 자립을 하게 되고 '일'을 함으로 인해 자존심과 자존감 또한 점차적으로 높게 쌓아 올리기 시작한다. 네 명의 여성들이 활동하는 무대가 시골인 만큼 무시할 수 없는 고착된 편견이 다방면으로 이들을 제압하려 들지만, 그럴 때마다 여러 방법으로 똘똘 뭉쳐 난관을 헤쳐가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레, 가끔씩 빵빵 터지는 개그와 함께 융합되어 편하고 즐겁게 볼 수 있다. 여성들의 자립과 더불어 마을 내에 숨겨져 있던 거대한 미스터리와 소소한 반전도 극이 진행되면서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는데, 여러 트랙과 다양한 사람들이 얽혀있는 만큼 산으로 흐르기 쉬운 서사지만, 잘 짜여지고 다져진 각본이 그렇게 흘러가지 않도록 촘촘하고도 단단히 중심을 잡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비슷한 시간대에 여성 국극이라는 소재, 그리고 엄청나게 호평을 받은 원작 '정년이'를 각색한 드라마 <정년이>가 방영되었으나, <정년이>는 원작의 흐름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 여성 서사가 주가 된다고 말하기는 애매해진 반면, <정숙한 세일즈>는 완벽하고 주체적인 여성상을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소소한 소망이나 욕망에서 시작한 판매업이 결과적으로 마을 내의 모든 여성들을 하나씩 해방시켜 나간다는 이야기에서 전달되는 통쾌함이 있다.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다면 심의를 신경 써서 조금 더 나가지 못한 채 어떤 틀 안에서만 머무르게 되었던 수위라고 해야 할까. 때문에 원작 드라마가 궁금해지는 지점이 제법 많았다. 그래도 킬링 타임이든 뭐든, 스무스하게 다가와 깊은 울림을 주는 드라마로는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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