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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Nov 27. 2018

자전거 출퇴근의 미학

자전거에 대하여

자전거로 출퇴근한 지 벌써 5년이 넘었다. 그간 자전거도 두 번 직장도 두 번 바뀌었지만 자전거로 직장을 오가는 일만은 변하지 않았다. 직장을 옮기며 출퇴근 거리에 변화가 생겨 아침에 일어나야 하는 시간을 조절해야 한다는 것만 바뀌었을 뿐 크게 변화는 없었다. 동선도 비슷한 동선, 집에 돌아오는 구간도 그대로. 자전거를 안전하게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싶다. 자전거를 사무실 안에 둘 수 없다면 아마 자전거를 바꿀 생각도,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꾸준히 할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날씨가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지거나 영상 35도 이상으로 올라가거나 상관없이 자전거로 직장을 오갔다. 주변에 자전거를 타지 않는 사람들은 가뜩이나 출근도 힘든데 어떻게 그렇게 매일 같이 자전거를 타느냐고 묻는다. 확실히 자전거로 출근을 한다는 건 힘든 일이긴 하다. 자전거를 타고나면 헬맷에 머리가 눌리기 마련이라 그 매무새를 다듬어야 할 시간도 필요하고 옷을 갈아입거나 씻을 시간도 필요하다. 겨울에는 껴입는 곳이 많아져서 그 옷들을 입고 벗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조금이라도 늦게 잠자리에 든 날은 아침이 되면 어찌나 그렇게 일어나기 힘든지, 일어나서 자전거 위에 오르기까지의 시간이 영겁 같게 느껴진다. 그날의 기온과 그날의 바람에 따라 쉽게 출근할 수 있는 날도, 출근길이 에베레스트를 넘는 것 같이 고단한 날도 있다. 반대로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기 위해서 친구들이나 직장동료들과의 저녁 약속을 취소해야 하는 소소한 아쉬움도 물론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모든 수 가지 귀찮음의 이유들은 자전거에 오르는 순간 자동적으로 사라진다. 안장에 엉덩이를 대고 페달에 발을 올리는 순간부터 좀 전의 게으름과 오늘 자전거 출근을 하지 않겠다는 온갖 이유들은 씻은 듯이 사라진다. 오늘의 날씨가 어떤지 오늘의 바람이 얼마나 시원하며 꽃은 언제 피고 지는지, 그 모든 순간들을 나는 자전거 출퇴근을 하며 주로 경험했다. 아침과 저녁 하루에 두 번, 자전거로 출퇴근을 해야만 알 수 있는 순간들을 한 번 경험하고 나면 쉽게 이를 버릴 수 없다. 


남들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거나 아침이 아니었으면 몰랐을 반가운 겨울 철새들을 마주하는 경험은, 자전거를 타며 만나는 소소한 피로들을 말끔하게 날려주는 인생의 명장면들이다. 좋은 영화에 중독되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그 영화를 다시 보기 위해 극장을 찾듯 말이다. 자전거 출퇴근도 일종의 중독과 같다. 


날이 쌀쌀해질 무렵부터 한강의 자출족(자전거 출퇴근족)들은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하는데, 봄과 여름에 매일 같은 시간에 마주하던 반가운 얼굴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바로 그 시기의 길이 나는 가장 좋다. 어깨를 마주하던 익명의 동료들이 하나 둘 사라지며 어느새 고개를 돌아보면 나만 숨 쉬고 있는 도로를 내달리는 것이 좋다. 가볍게 요동치는 나의 심장박동과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작은 숨소리에 나라는 존재가 '살아있음'을 재확인하게 되는 그 잠깐의 시간. 자전거로 통근하며 매일 아침마다 그 시간들을 쌓아가는 것의 재미는 다른 운동들이 주지 못하는 자전거 고유의 재미, '자전거 출퇴근의 미학'이다. 


이제는 흐린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출근길, 청담나들목.
뿌연 안개가 끼어도 미세먼지가 좀 있어도, 그래도 좋다. 퇴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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