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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Dec 13. 2018

라이딩 중 '밀바'에 관해서

자전거에 대하여

자전거를 새로 바꾼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막 자전거에 열을 올리고 있을 무렵 처음 보는 사람들과 그룹 라이딩을 나간 적이 있었다. 평소 그룹으로 라이딩을 하기보다는 혼자 출, 퇴근 후 남산이나 북악 등의 정해진 운동코스를 돌고 집으로 돌아오거나 고난과 역경과 역풍을 이겨가며 장거리를 다녀오는 것을 선호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그룹 라이딩, 팀 라이딩은 아직까지 나에겐 미지의 세계였다. 친한 동생의 초대를 받아 참석한 이 그룹 라이딩의 리더는 모 피팅센터의 대표였고 MTB 선수이기도 했었기 때문에 자전거에 대한 기술이나 센스 등을 배울 수 있다는 일념 하에 12월의 초입, 찬 바람을 뚫고 라이딩에 참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날의 라이딩은 전반적으로 매우 좋았다. 당시 나에게 미지의 세계였던 그룹 라이딩에 대해서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룹의 리더는 그룹 라이딩에서 반드시 필요한 '로테이션'에 대해서 한 사람 한 사람 포지션을 바꿔가며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친구들과 라이딩에 나가거나 크고 작은 대회에 나갈 때도 나는 대체로 중간이나 끄트머리에 위치해 주행했기 때문에, 로테이션을 돌거나 선두에 설 수 있는 확률과 용기, 그리고 체력은 제로 확률이었다. 리더의 조언에 따라 라이딩을 하며 그룹 라이딩을 할 때에 내가 보완해야 할 점들을 스스로 돌아보게 만드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 하지만 라이딩 후반에 있었던 하나의 사건 때문에 그날의 라이딩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최악의 라이딩 중 하나가 되었다. 바로 '밀바' 때문이었다.


'밀바'는 '밀어주는 바이크', 다시 말해 '등 뒤에서 밀어주는 힘'에서 생겨난 단어다. 물론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쓰이지 않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쓰이는 자전거용 신조어다. 영어로는 'Push back riding effect' 혹은 'Push back effect' 정도가 적당한 번역이 될 것 같다. 내가 처음 밀바를 경험해 본 것은 로드 자전거를 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본격적인 라이딩을 할 때였는데, 남산타워를 찍고 북악 스카이웨이를 막 넘기 시작할 무렵으로 기억한다. 커브가 좀 있는 구간을 지나고 있었고, 힘이 달려 페달링을 꾸역꾸역 젖 먹던 힘까지 내고 있을 무렵, 뒤에서 그런 나를 지켜보던 친구가 다가와 슬쩍 등 뒤에 손을 대 밀바를 해주었다. 총 250km를 타야 하는 라이딩에서 100km 정도 타고난 후 낙타등에 지쳐 쓰러지기 직전에 받았던 밀바도 기억난다. 자신의 체력이 한계에 다다랐거나 터무니없이 높은 고도를 올라가면서 힘에 부칠 때 뒤에서 다가오는 구원과 밀바의 순간. 그 순간만은 자전거에 조그마한 모터를 단 듯 신나게 페달링을 재개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아주 잠깐 동안 이겠지만, 확실히 밀바는 체력이 방전되었을 때 커다란 도움이 된다.


강원도에 위치한 배후령 정상으로 가는 길, 욕에 욕을 하며 올라갔다. 이런 곳에선 좀 필요할 지도


앞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서. 당시 그룹 라이딩 중에 이 밀바에 대한 아주 좋지 못한 경험을 했다. 일단 밀바를 해주는 사람은 밀바를 당하는 상대방의 주행 방식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어야만 한다. 어떤 습관으로 스타트와 브레이킹을 하는지, 조향은 자유롭게 할 수 있는지, 어떤 부분이 취약점인지 등을 대략적으로라도 가늠해낼 수 있는 센스가 있어야만 한다. 실제로 한강에서 한 라이더가 다른 라이더의 등을 밀어주다가 둘이 바퀴가 꼬여서 엎어지는 것을 보고 기겁한 적이 있다. 주행속도가 빨랐다면 분명 큰 사고로 이어졌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 정말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에 대체로 밀바를 하는 사람들은 소위 자타공인 자전거를 '잘 탄다'는 범주에 있는 사람들이어야만 한다.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의 체중과 힘을 어느 정도 감내해야 하기 때문에, 그걸 견딜 만한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타인을 보호하고도 남을, 안정적인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날 나에게 '밀바'를 한 사람은 위에서 말한 그 어떤 조건에도 해당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일단 라이딩에 앞서 반말과 존대를 섞어가며 처음 보는 사람들을 대했던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중년의 남자였다. 당시 나는 생리 전 증후군(PMS)으로 인해 컨디션이 저조한 상태였으나 어떻게든 팩에 붙어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업힐은 항상 그룹주행이 아닌 자신의 역량대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파워와 컨디션이 난조였던 나는 업힐이 시작되자마자 뒤로 살짝 빠졌다. 그래도 당시 주행코스였던 남한산성은 업힐과 평지가 섞여 있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쉬면서 나름의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었던 구간이었다. 그 와중에, 그 중년의 남자가 말 한마디 없이 갑자기 나에게 '밀바'를 한 것이다. 그것도 업힐이 아닌 평지구간에서 말이다.


딱 보기에도 안정적인 주행을 하지 못한다 판단되는 사람이 아무런 말도 없이 막무가내로 등에 손을 얹고 밀고 들어오는 행동은 정말 기분이 나빴고, 당시에도 기분이 나빴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무엇보다 그 남자는 함께 그룹 라이딩에 참가한 남자 지인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은 채 나와 그룹 내의 몇몇 여성들에게만 그 '밀바'를 시전하고 있었고, 나는 그것이 무척 짜증 났다. 그냥 봐도 여기저기 추근덕 거리고 싶은 마음에 라이딩에 참여한 것 같았는데,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 여자들에게만 본인의 주행 라인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밀바를 하고 다니는 그 행태를 보니 그 라이딩에 참석했던 것 자체가 후회될 지경이었다. 그 사람 하나로 인해 그날의 라이딩에 대한 감상은 100에서 0으로 돌아갔고, 나는 두 번 다시 그 정기 라이딩에 참석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밀바의 장점은 나도 잘 알고 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밀바는 업힐이나 체력 고갈 상황에서 의도치 않은 동아줄, 예약하지 않은 도움닫기를 밟는 것처럼 정말 많은 힘이 된다. 그 힘을 나에게 나누어 사람은 내가 드는 힘보다 훨씬 많은 힘을 나와 자신, 그러니까 밀바를 받는 사람과 밀바를 하는 스스로에게 분산하여 쓰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위와 같은 황당한 경우를 겪고 나서 나는 더 이상 밀바의 순기능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저건 성추행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본인을 제대로 알고, 자신의 주행 스타일 또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 옆에서는 걱정할 것이 없다. 하지만 꽤 많은 라이더들이 남은커녕 본인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남을 도우려는 생각부터 가지곤 한다. 이를테면 저 중년 아저씨처럼 처음 보는 사람에게 업힐도 아닌 평지에서, 앞사람과의 간격을 지키고 있는 와중에 밀바를 해서 그 템포를 박살 내는 행동, 그 와중에 본인은 밀바 이후 비틀거리면서 갑자기 힘 빠진 주행을 해서 뒤에 오는 사람을 위협하는 행위를 반복하는, 예의도 센스도 전무한 사람들 말이다.


이런 일을 겪은 뒤로, 등 뒤에 와서 무턱대고 밀어주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아주 강하고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나는 됐고, 네 자신이나 살피며 갈 길 가시라"고 말이다. 도움이랍시고 전혀 상관없는 사람을 억지로 끌어당겨 이것저것 해가 되는 것들만 얹어준다면 그걸 과연 선의라고 할 수 있을까. 특히나 자전거 위에서 하는 행동들은 나뿐만 아니라 타인을 엄청난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주의하며 주행을 시작해야 한다. 일상생활에서도 갑자기 모르는 사람과 어깨동무를 하거나 포옹을 하는 등의 행동은 상상도 못 할 일 아닌가. 자전거 위의 세계도 그와 다를 것 없다.


밀바의 바람직한 예. 초장거리 그룹라이딩에서, 리더들이 지친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물론 양해를 구하는 건 기본.
밀바를 할 때는 상대방을 안정적으로 밀어줄 수 있을만큼의 힘과 체력, 조향능력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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