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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Dec 27. 2018

<지옥의 묵시록>(1979)


<지옥의 묵시록>의 첫 장면. 후텁지근한 호텔 방 침대에 널부러져 있는 윌라드 대위(마틴 쉰)의 모습. 이윽고 디졸브 되는 호텔 천정의 팬과 윌라드의 얼굴, 그리고 네이팜탄이 투하된 숲의 이미지, 그리고 어질러진 침대, 담배, 술. 이러한 다중 디졸브는 <지옥의 묵시록>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를 관객에게 친절히 알려주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전쟁, 즉 베트남전이 윌라드 대위의 삶에 얼마나 깊게 침투되어있으며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그를 괴롭혀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영화가 표방하는 '파국', 그야말로 'Apocalypse'가 이 7분 남짓의 짧은 시퀀스에 축약되어 있다. 시퀀스의 첫 번째 프레임부터 시종일관 지배적으로 등장하는 헬리콥터의 소리. 이 헬리콥터의 소리는 윌라드가 누워있는 방 안의 팬 소리와 맞물려 어떤 것이 현실이고 어떤 것이 환상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만든다. 공허하게 울리던 헬리콥터 소리, 시퀀스의 마지막에 다다라 침대에서 일어난 윌라드가 그것이 '실재'라는 것을 실감한다. 다중 디졸브와 헬리콥터/팬의 소음 사운드가 만들어낸 일종의 속임수다. 이윽고 이어지는 윌라드의 나래이션, 그리고 술에 취해 자해를 하며 울부짖는 호텔 방 안의 윌라드의 풀 샷과 페이드 아웃. 전쟁영화 역사상 이보다 더 빼어난 오프닝 시퀀스가 존재할까 싶은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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