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외국남자들과도 연애를 해 봤어?”
해외에 장기체류했던 시간이 제법 있었으니, 연애를 안 해 보았을 리 없다. 이렇게 물어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 뒤에 괄호치고 ‘외국남자들과도 자봤냐, 어떻든?’이 포함되어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사람들의 그 궁금증을 충족시켜준 적은 없다. 내 마음은 늘 괄호 속의 그 단어까지 도달되기 전에 대체로 닫혀버렸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 우연히 동아리에서 만나게 된 영국 남자애와 한 달 정도 간지러운 감정을 나눈 것을 ‘연애’라고 부를 수는 없으니, 따지고 보면 나는 외국인과는 두 번의 연애를 한 셈이 된다. 한국에서 만난 미국인 J는 여행자에서 직장인으로 전향하려 노력 중이었고 인도에서 만난 영국인 D는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하릴없는 여행자였다. 둘 다 시시하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끝나버린 연애였던 탓이 추억할 만한 것들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지만, D가 나에게 그래도 특별한 것은 외국인과의 연애에 대한 가능성을 그 이후로 영영 제로의 상태로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니까 그건, 정말 우연의 순간이었다.
전날 저녁 세상 모든 술을 탕진하겠다는 일념으로 미친 듯이 보드카를 퍼마시고 다음 날 오후께야 눈이 떠지던, 세상 숙취도 그런 숙취가 없을 날이었다. D는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궁금해서인지 아니면 해장이 하고 싶어서인지 숙소 문을 요란하게 쾅쾅 두드렸고, 나는 짜증이 섞인 추레한 표정으로 “그만해, 나 안 죽었어.”라며 D의 손을 잡아끌고 시내로 향했다. D는 아직 취해있는 것처럼 보였고 나 역시 온전히 몸을 가누기는 힘들었다. 언제쯤이면 이 몽롱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슈퍼에서 콜라와 과일을 샀고, 바다가 잘 보이는 모래사장에 털썩 주저앉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걱우걱 그것들을 먹기 시작했다. 그때 문득 D가 바다를 보며 말했다.
“저기 봐, 저기. 해가 진다.”
해를 등지고 있던 나는 반쯤 풀린 눈으로 뒤를 돌아봤고 그곳에 엄청나게 크고 아름다운 노을이 일렁이고 있었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저걸. 내가 살면서 보았던 모든 바다에서의 노을 중에 가장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던, 마치 자신이 바다의 왕이라도 되는 듯이 붉게 빛나고 있던 그 아라비아해의 한 자락을 보며 나는 넋을 잃었다. 그러니까 저걸, 뭐라고 하면 좋을까 저걸. 그때 D가 외쳤다.
“왓 어 브릴란트!”
아니야, 그 말이 아니야. 나는 D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 단어 말고, 다른 단어 있지 않아? 좀 더, 뭐랄까” D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말했다. “마블러스? 고져스? 어썸?” 아니 그런 것들 말고 조금 더 이렇게 가득 차는. 나는 손 앞에 놓인 모래들을 곱게 다듬으며 두 손으로 소복하게 안는 동작을 취했다.
“왓? 민, 너 아직도 취해있어?”
D는 나를 손가락질하며 깔깔 웃었고, “나도 그래!”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저걸 뭐라고 하면 좋을까. 네가 한 말 다 틀렸어, 그게 아니야. 저건 말이야,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저 노을은 그러니까,
‘찬란하다’
그래 그 말이 하고 싶었어, ‘찬란하다’는 말이. 딱 그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아 한참을 모래를 쥐었다 폈다 했다가 D의 웃음소리가 잦아들 때 즈음에야 떠올랐다. 아름답다는 말로 부족하고 멋지다는 표현은 전혀 어울리지 않고 놀랍다는 말은 너무 가벼운, 그래서 지금 딱 어울리는 단어 ‘찬란하다’란 말이야, D. 정확히 지금 딱 어울리는 그런 단어를 찾았다는 기쁨에 흠뻑 젖어 D에게 동의를 받고 싶었지만 그 순간 그와 나의 아득한 간극이 느껴져 그만두었다. 아무리 내가 ‘찬란’이라는 단어를 말해도 너는 ‘브릴란트’라는 단어로 내게 답하겠지. 아무리 내가 다른 단어들을 늘어놓고 있는 힘껏 ‘찬, 란’이라는 글자를 설명한다 해도 너는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겠지.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을테고 말이야. 그러니까 한글로 ‘찬란하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오래전부터 그것을 듣고 쓰고 자라며 한 눈에 확 하고 펼쳐지는 이 충만한 아름다움의 이미지를, 아마도 너는 공감할 수 없겠지.
내가 입을 닫고 마음을 닫아버린 것은 딱 그 순간부터였다. 내 마음속에 한글의 정자로 ‘찬란하다’라는 말이 울려 퍼진 바로 그 순간, 일생일대의 숙취를 느끼며 일생일대의 노을을 이국땅에서 맞이했던 바로 그 아주 잠깐의 순간. 나는 그 순간들의 연속을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그 뒤로 인도인과 만날 뻔한 적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힌디어에서 영어로, 한국어에서 영어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떨어져 나갈 수많은 단어들의 가루가 아까워 그 낭비를 그만두었다.
나는 한국남자가 좋다. 정확히는 '한국어를 쓰는 한국남자'가 좋다. '찬란하다'라는 말을 건넸을 때 각자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이미지가 적어도 한 줌이라도 존재할, '한국어'의 남자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