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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Dec 30. 2018

<인생은 아름다워>(1997)


 나치의 탄압으로 유태인 수용소에 수감된 귀도(로베르토 베니니)는 아내에게 자신과 아들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묘책을 연구한다. 목숨을 걸고 수용소 방송 본부에 몰래 잠입한 귀도는 어딘가에서 방송을 듣고 있을 아내를 향해 사랑이 가득 담긴 쾌활한 메시지를 보낸다.  


"안녕하세요, 공주님!

나는 어젯밤에 당신 꿈을 꾸었습니다.

당신은 내가 좋아하는 핑크 슈트를 입고 있었지요.

당신과 나는 온종일 저녁 늦도록 함께 다니며 아름다운 것들을 나누었지요.

당신은 내 모든 것이며 당신은 내 생각의 전부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이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아들에게 자신들의 운명과 수용소의 참상을 알리고 싶지 않았던 귀도는 아들 조슈아에게 수용소에 갇혀있는 악몽과 같은 시간을 먼저 1000점을 따는 사람이 승리하는, 일종의 '게임'이라 이야기한다. 나치 장군의 말을 통역해야 하는 순간에도, 귀도는 조슈아를 위해 게임의 규칙을 이야기하는 듯 명랑하고 유머러스하게 여러 가지 속임수를 부린다. 아빠의 말을 철썩 같이 믿은 아이는, '오래 숨어 있어야 한다'라고 전달받은 아빠의 규칙을 따라 창고 구석에 발이 저리도록 숨어 있던 끝에 연합군에 의해 구조된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전쟁의 참상을 그린 기승전결 뚜렷한 휴머니즘 영화다. 이 영화는 두 가지 상반되는 내러티브를 통해 현실과 환상의 명백한 대조를 보여준다. 귀도의 눈과 조슈아의 눈에 비친 현실은 결코 합쳐질 수 없다. 조슈아가 자신이 겪은 사건이 '게임'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는 순간은 영화의 마지막, 그것도 성인이 된 조슈아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할 때뿐이다. 독일어를 듣는 아버지와 듣지 못하는 아들. 1000점을 먼저 따서 탱크를 상으로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들과 눈 앞에 직시한 까마득한 고통을 실감하는 아버지. 두 사람을 잇는 유일한 연결고리는 아버지 귀도의 슬랩스틱이다. 채플린, 키튼의 환영을 불러일으키는 전반부의 희극들. 아들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유머를 버리지 않으려 애쓰는 아버지의 사랑, 위험을 무릅쓰고 사랑하는 아내에게 있는 힘껏 내지르는 저 찬란한 단어들. 지금도 기분이 나쁠 때마다 이따금씩 <인생은 아름다워> 속 귀도의 고백 장면을 생각하면 입가에 절로 웃음이 번진다. 평생토록 잊히지 않을 아름다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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