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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Jan 08. 2019

<와호장룡>(2000)

 

<와호장룡>의 영문 제목인 'Crouching Tiger, Hidden Dragon'은 직역하면 '웅크린 호랑이와 숨은 용'이라는 뜻이다. 영화에 맞는 뜻으로 번역하면 '강호의 숨은 고수들' 정도가 될 것 같다. <와호장룡>은 두 개의 욕망이 주축이 되는데, 신세대와 구세대의 갈등이라고 하면 조금 비약이 심할 것 같고, 그 욕망은 강호의 오래된 고수인 리무바이(주윤발)와 무술에 관한 무한한 욕심과 갈망을 품고 있는 그의 다음 세대인 용(장쯔이) 두 사람으로 대변된다. 리무바이는 사랑하지만 맺어질 수 없는 운명을 가진 수련(양자경)에 대한 연모와 스승을 잃은 아픔을 품에 안은 채 강호를 떠날 결심을 하고, 그가 전해받은 천하 비검 청명검에 대한 욕심으로 용은 리무바이를 강호에 다시 불러내게 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영화에서 리무바이와 용, 그리고 용과 용을 사랑하던 남자 마적단의 호(장 첸) 이렇게 두 집단은 한꺼번에 엮이지 않고 각각의 에피소드를 통해 마치 복층구조를 이루듯 연출되는데, 이 두 집단이 가진 욕망, 즉 리무바이가 가진 침착함과 용이 가진 패기가 처음으로 맞붙는 장면이 바로 대나무 숲의 결투 씬이다. 이 결투 씬에서 아직 완전히 수련되지 않은 용은 리무바이에게 일방적으로 당한다. 리무바이는 바람을 타듯 자연스럽게 나무 위를 오르내리고, 용은 자신의 무게를 다스리지 못해 이리저리 휘청인다. 단순한 격투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용과 리무바이가 일 대 일, 그것도 대나무 숲 위에서 미끄러지듯 무술을 겨루는 용과 리무바이의 모습은 <와호장룡>에서 중심을 이루는 집단의 대립, 그리고 그들이 좀처럼 섞일 수 없는 세대와 갈망의 차이를 보여준다. 이 장면을 여러 번 보고 나서 나는 <와호장룡>의 '호'를 용으로, '용'을 리무바이로 이해하게 되었는데, 'Crouching Tiger, Hidden Dragon'이라는 제목이 내포하는 뜻은 어쩌면 영화 속에서 이 단 한 장면, 그리고 서로 다른 욕망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강호의 두 고수, 용과 리무바이를 각각 호랑이와 용으로 치환해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다시 <와호장룡>을 돌아볼 때마다 이들의 격투 장면은 영화밖에 위치한 또 하나의 러브스토리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태생과 환경이 달라 결코 섞일 수 없는 집단의 어긋난 운명이랄지, 그리고 마지막에 그것을 일부 품어 내리는 용의 결말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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