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스틸컷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민영 Jan 12. 2019

<쓰리 타임즈>(2005)

허우 샤오시엔의 많은 영화들 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 <쓰리 타임즈>. <쓰리 타임즈>의 원제는 <최호적시광>, 즉 '가장 좋은 순간',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뜻한다. 영화는 세 가지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는데 순서대로 <연애몽>(戀愛夢), <자유몽>(自由夢), <청춘몽>(靑春夢)의 이야기로 나열된다. 각각의 이야기에 '몽(夢)'이 붙은 것은 에피소드들이 보여주는 각개의 아름다운 순간들이 꿈처럼 흘러가고 사라져 가는 애틋함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1960년대의 사랑, 1910년대, 2000년대의 사랑이 모토가 되는 <쓰리 타임즈>는  시대상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동시에 사랑을 향한 두 남녀의 머뭇거림을 아름답게 묘사했다. 다가가고 싶지만 다가가지 못하는 마음, 표현하고 싶지만 드러내지 못하는 사랑의 결정적인 순간, 그리고 쉽게 놓쳐버리고 마는 순간들을 처연하게 그려내고 있다. 


 세 가지 에피소드를 모두 고르게 좋아하지만 에피소드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연애몽>에 있다. 군인 신분의 남자는 휴가 중 우연히 당구장에서 일하는 여자를 만나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된다. 복귀 후에도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워가고, 다음 휴가 때 다시 당구장에 들른 남자는 여자가 갑자기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남자는 그녀를 찾아 나서고 그런 남자의 눈 앞에 신기루처럼 여자가 등장한다. <연애몽>의 마지막,  잡힐 듯 잡히지 않게 조심스레 감정을 주고받던 두 남녀의 사랑이 마침내 시작되는 장면. 마법 같은 비가 내리고 수줍음이 무르익을 무렵 두 남녀는 그제야 손을 잡는다. 아날로그의 풋풋함으로 쌓아오던 남녀의 손이 맞잡아지는 바로 그 순간, 'Rain and tears'가 흘러나온다. 이 아름다운 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지만 두 사람의 따스한 온기, 그리고 <연애몽> 전반에 걸쳐 사용되는 포커스 아웃과 인의 반복은 <자유몽>과 <청춘몽>이 지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난 후에 다시금 <연애몽>으로 되돌아 가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다. <연애몽>의 마지막은 그야말로 '최호적시광', 영화적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황홀한 순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39계단>(193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