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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Jan 15. 2019

<39계단>(1935)


히치콕은 항상 영화의 오프닝을 강조했다. 그는 영화의 오프닝은 확실하게 관객을 매혹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히치콕은 한 인터뷰에서 오프닝 시퀀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영화가 줄 수 있는 놀람과 재미는 첫 장면에서 거의 결정된다.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은 영화를 보아줄 인내심 있는 관객은 그리 많지 않다.” 실제로 히치콕은 많은 영화들에서 가장 경제적인 방법의 오프닝을 보여주곤 했다. 가장 유명한 <싸이코>의 오프닝에서 히치콕은 ‘피닉스’라는 도시 이름에 이어 사건이 발생하는 날짜와 시간까지 자막에 넣어 친절히 관객들에게 설명했다. <이창>의 하이앵글에서 클로즈업으로 점차 가까워지는 창문 틈, <새>에서 불현듯 새의 공격을 받는 여주인공의 원 샷을 보여주며 만들어진 사건에 관객들이 좀 더 쉽고 편하게 점핑하는 징검다리 역할의 장치들을 배치했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셀즈닉 형제와 작업했던 첫 번째 영화 <레베카>는 히치콕이 처음으로 각본에 크게 관여하지 않은 영화였다. 하지만 <레베카>에서도 히치콕은 오프닝과 클로징 시퀀스에서만큼은 자신의 연출 스타일을 확고하게 내세웠다.


 <39계단>의 오프닝 시퀀스는 히치콕의 영화들 중 다소 이질적이다. 다른 영화들에 비해 미스터리적 정서가 강하게 깔려있기 때문이다. <39계단>은 ‘Music Hall’이라는 장소를 텍스트로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긴 하지만, 이 ‘Music Hall'로 들어가는 남자, 즉 사건의 중심에 놓인 주인공의 모습을 명확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재빠르게 티켓을 사고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는 남자의 앞모습은 영화가 시작된 지 몇 분 후에야 비로소 드러난다. <39계단>의 오프닝 씬이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정보는 '누군가 들어갔다'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관객들이 이 짧은 장면의 분할을 통해 '누군가'를 '주인공'으로 인식하게 된다. 바로 시퀀스 말미에 보이는 남자의 등, 갑자기 공연장에 들어앉은 남자의 오프 바스트 샷이 틸트 인 되는 샷 때문이다. <39계단>의 주를 이루는 불길한 사건, 어찌 보면 <오인>과 같은 주인공의 기구한 로드무비가 펼쳐질 것이라는 암시는 <39계단>의 오프닝 장면, 불안정한 사선으로 그림자 진 신체의 분할 샷으로 인해 완성된다. 몇 초 되지 않는 짧은 순간이지만 살인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로프> 이후 가장 인상적이라 생각될 정도로 효과적인 오프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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