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순간

9와 숫자들 '연날리기' 초단편 노래 소설

by 강민영

진수는 어딘가 낯선 곳을 갈 때마자 연을 항상 챙겨가곤 했다. ‘연’을 ‘항상’ 가지고 다닌다면 좀 이상하지만, 여하튼 진수는 연 날리는 것을 게임이나 러닝만큼 좋아했다. 그는 1년 365일 바람이 불기를 기다렸으며 바람 부는 날이면 한 손에는 얼레를 한 손에는 연을 잡고 한강변을 뛰어다니곤 했다. 그런 진수와 진수의 연을, 희진은 벌써 3년째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하루 종일 집에 멍하게 앉아 있다가 산책시간이 되면 미친 듯이 현관으로 내달음질 치며 좋아하는 강아지 렉스를 보며, 희진은 진수와 진수의 연을 대입시키곤 했다. 산책이 저렇게 좋을까, 연날리기가 저렇게 좋을까 싶은 심정으로 말이다.


삿포로, 후쿠오카, 홍콩, 방콕 제법 다양한 나라들을 희진은 진수와 함께 여행했고 그때마다 진수는 조그마한 연과 연줄을 곱게 접어 가방에 챙기곤 했다. 여행 내내 비나 눈이 와서 연을 꺼내보지도 못했던 때도 있었지만 진수는 여행을 앞두고 늘 세면도구 챙기듯 연부터 챙겨 넣었다. 처음에 희진은 그런 진수의 연에 대한 애호가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진수는 바람과 바람에 날리는 연을 좋아하는 것일 뿐 연 때문에 희진과의 약속에 늦은 적도 기념일을 빼먹은 적도 없었으며, 연이냐 희진이냐를 택해야 할 기로에 선 적도 없었기 때문에 희진은 진수와 진수의 연들을 일상으로 받아들였다. 남자 친구 취미가 뭐냐는 지인들의 말에 ‘연날리기’라고 답하면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긴 했지만, 그런 건 희진보다 진수가 더 귀찮을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다.


하지만 희진은 진수가 이곳 네팔 히말라야까지 저 연과 얼레를 가져올 줄은 몰랐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떠나기 하루 전, 포카라에서 술을 한 잔 마시고 숙소로 들어가 짐을 재정비하던 중 희진은 진수가 가방에서 쓱 하고 꺼내는 연을 발견하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야, 박진수 진짜 대단하다. 여기까지 연을 가져온 거야?”


“그럼. 언제 또 네팔 올 지 모르는데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가면 연 날리고 싶어서. 내가 한국인 최초일지도 모르잖아, 안나푸르나에서 연 날리기.”


희진은 와아 크게 입을 벌려 진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짜 알아줘야 돼. 너 그거 날리기 전에 고산병 오고 막 등산하다 힘들고 그러면 어쩌려고?"


샐쭉한 표정으로 진수가 희진을 쏘아보며 말을 붙였다.


"어쩌긴 뭘 어째, 내려와서 날려야지."


브라보 박진수 너의 연에 대한 사랑은 정말 알아줘야 해, 희진은 짝짝 박수를 치며 남은 짐을 다시 챙기기 시작했고 진수는 배낭 가장 안쪽 구석 손이 닿지 않는 안전한 자리에 연을 곱게 접어 넣었다. 진수는 배낭 끄트머리에 스니커즈 몇 개를 채워 넣고 배낭 커버를 채우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나 베이스캠프에서 연 날리는 것 네가 뒤에서 잘 찍어줘야 해, 두고 봐 역사적인 순간이 될 거란 말이지!"


결국 이런 경우를 말이 씨가 되었다고 해야 할까, 진수는 결국 안나푸르나에서 연을 날리지 못했다. 바람도 적당히 불고 기온도 딱 좋고 하늘도 쨍하니 건기도 우기도 아닌 맑은 네팔의 날씨 그대로였지만 진수와 희진 둘 다 이 최적의 날씨 속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의 끝자락도 밟아보지 못했다. 포카라에서 출발해 이틀 째 되는 날부터 진수와 희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산증세가 밀려왔고, 그래도 꾸역꾸역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도착하기 직전인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까지는 도달했지만 고지를 불과 몇 백 미터 남겨두고 몰려오는 극심한 두통으로 인해 눈물을 머금고 하차해야 했다. 마차푸차레에서 바라보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는 손에 잡힐 만큼 가까워 용기를 내어 몇 발자국 떼어보기도 했으나 그럴 때마다 한층 심해지는 두통 때문에 희진과 진수는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었고 빠르게 하산을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측은하게 여긴 여행객들이 힘내라고, 다음엔 기회가 있을 거라고 도닥여주긴 했지만 별로 도움이 되진 못했다. 두 사람은 포카라를 떠나던 패기의 반에 반도 건지지 못한 채 오던 길을 그대로 밟으며 내려가야 했다.


내려가는 길 역시 하루 만에 갈 수 있는 거리는 당연히 아니었고, 이렇게 된 이상 산에서 좀 오래 있다 가자는 심상으로 등반 실패 후 첫 저녁을 데우랄리에서 묵었다. 100m 단위로 고도가 낮아질 때마다 희진과 진수가 느꼈던 고산 증세는 사라지기 시작했고, 둘은 곧 트레킹 초반과 같은 컨디션으로 돌아왔다. 기온도 확실히 따듯해져 한밤 중에도 춥지 않을 것 같았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두 사람은 침대에 널브러져서 각자가 겪은 고산증세에 대해 입이 마르듯 분노와, 토로와, 성토를 이어갔다.


"아니 어쩜 딱 거기서 머리가 아프냐고. 아 나, 진짜."

"근데 한 번 아프기 시작하니까 정말 미친 듯이 두통이 이어지더라. 진짜 너무 무서웠어."

"너도 그랬어? 어쩜 그렇게 증세가 똑같지."

"네가 괜찮았으면 위에 올라갔다가 오라고 하고 싶었는데 너 표정을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 나 죽네 나 죽소 하는 표정으로 서 있더라, 너."

"머리를 누가 돌로 콱콱 치는 것 같이 아팠는데 그럼 어떻게 해. 너도 만만치 않았어, 입술도 파래져가지고 막."


진수와 희진은 한참 동안 수다를 늘어놓다가 둘이 눈이 마주치자 쿡, 하고 웃음을 지었다. 네팔까지 와서 안나푸르나에 올라가지 못한 건 아쉽지만 안나푸르나 부여잡고 죽을 수는 없으니까 그만하면 됐어. 이제 안나푸르나를 보고 내려오는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할 것들을 데우랄리에서 하자. 두 사람은 자리를 고쳐 앉고, 이곳에서 남들이 하지 않을 만한 경험이 무엇일지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지도 않는 아이디어들이 쏟아졌다. 물구나무서기, 차가운 물로 샤워하기, 달밤에 롯지 한 복판에서 요가하기, 맨발로 눈 밟기 등등 웃자고 한 이야기가 진지하게 이어질 때 즈음 진수가 불현듯 아! 하고 소리 질렀다.


"왜 그래? 무슨 좋은 생각났어?" 희진이 다급히 물었다.


"연. 연 날리자. 한 밤 중에 별 보면서. 어제저녁에 보니까 밤에 별이 너무 많아서 환할 정도더라. 그럴 때 연을 날리면 근사할 거야."


진수의 초롱초롱한 눈을 보며 희진은 또 연이냐, 한숨을 푹 내쉬었지만 진수의 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여기까지 연을 가져 올 사람도 없을뿐더러 패잔병처럼 이곳에서 사흘을 내리 머무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무엇보다 근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좀 부려나? 희진은 창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진수는 패잔병을 구한 본진의 영웅이라도 된 듯 의기양양한 태도로 능숙하게 연을 배낭에서 꺼내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두고 봐, 역사적인 순간일 거란 말이지!


산 위에서 해는 금세 기울어졌고 칠흑으로 뒤덮인 밤이 빠르게 찾아옴과 동시에, 진수의 말처럼 별들이 밤하늘을 수놓기 시작했다. 정상만을 바라보며 올라갔기에 매일 저녁만 되면 피로에 절어 곯아떨어진 두 사람은 그제야 여유롭게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절대 보지 못할 하늘. 미세먼지도 피해 간다는 이 아름다운 안나푸르나 히말라야 산맥의 놀라울 정도로 찬란한 별밤. 진수는 별을 바라보며 조용히 얼레를 풀고 연을 올렸고 마침 강한 바람이 한 차례 훅 하고 불어와 진수의 연이 가볍고 쉽게 하늘을 향해 날기 시작했다. 희진은 처음으로 부스럭부스럭거리는 연의 소리가 듣기 좋다는 생각을 했다.


"너는 왜 그렇게 연을 좋아해? 심지어 네팔에까지 가져 올 정도로 말이야."


진수는 잠시 희진을 바라보며 고민하다 말했다.


"연은 앞뒤로 빠르게 움직이잖아. 360도 움직이는 것도 180도 움직이는 것도 쉬운 일이잖아."


진수는 다시 얼레를 풀었다 감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희진은 의자를 끌어 진수의 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얼레의 실이 보일 듯 말 듯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바람에 날리는 연을 보고 있으면 아등바등 사는 게 다 소용없다 싶거든. 저렇게 앞뒤가 마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움직이고 흘러가고 휘둘리는 걸 보고 있으면 다 부질없고 다 매 한 가지다 싶은 생각이 들거든. 그리 대단할 것도 없이 말이야."


진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람이 반대방향으로 불기 시작했다. 진수는 예삿일도 아니라는 듯 빠른 속도로 얼레와 연줄을 조율하며 연을 반대방향으로 이동시켰다. 희진은 또다시 팽팽하게 올려 붙은 연의 실 자락을 보며 역시 이건 그 누구도 하지 못할 경험이라고, 이런 경험을 하는 건 고산증세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한 진수와 진수의 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조용히 카메라를 들었다.


찰칵, 소리와 함께 진수는 활짝 웃음을 지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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