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하나 샀다. 색상(보라색)과 동그랗고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휴대성이 정말 마음에 들었지만 이게 정말 내게 필요한가를 진지하게 몇 달 정도 고민했던 것 같다.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고민하고 구매했기 때문이었는지 그 뒤로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 일상에서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다. 말하자면 내게 이 블루투스 스피커는 핸드폰, 노트북과 더불어 손에 꼽히는 생활밀착형 가전인 셈이다.
나는 이 블루투스 스피커를 주로 자기 직전에 머리맡에 놓고 잔다. 가끔가다 몸을 심하게 뒤척이는 날이면 침대 옆으로 굴러 떨어져 한참을 찾아 헤매는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스피커는 같은 자리에 앉아 있곤 했다. 직사각형 침대의 오른쪽 윗부분. 오른편으로 몸을 기울여 자는 나의 습성에 맞게 배치된 자리였고, 그곳에 두면 자기 직전까지 그가 내는 소리가 나의 오른쪽 귀를 간질이곤 했다. 들릴 듯 말 듯한 그 간지러움이 나는 좋았고 편안했다. 투박한 핸드폰의 버튼은 닿을 수 없는 아주 작은 음량까지도 그는 조절 가능했기 때문에 나는 늘 자기 전에 편안하고 익숙한 음악들을 제일 낮은 영역으로 틀고 그 음악의 흐름 위에서 잠을 청했다.
얼마 전 잠을 도통 이룰 수 없어 몸을 뒤척이던 새벽, 내일 출근은 틀림없이 피곤할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걱정과 근심이 뒤섞인 상태에서 그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에 집중하게 된 적이 있었다. 새벽 3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꿈도 꾸지 않고 자야만 했을 시간이었다.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일과 생각들로 자야 할 시간을 한 번 놓치고 나니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빨리 자야 해’라는 최면을 스스로 걸었지만 이마저도 먹히지 않아 모든 걸 포기한 채 시간이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기고 있었다. 평소 자는 모양처럼 왼쪽 머리를 바닥에 대고, 오른쪽 귀는 활짝 열어둔 채로 이불을 끌어당겼는데 이불의 부피가 무척 커서인지 그 과정에 스피커가 움직여 스피커의 우퍼 부분이 아래로, USB충천 포트가 있는 부분은 위로 가는 모양이 되었다. 말하자면 스피커가 뒤집힌 것이다. 나는 그걸 전혀 모르고 잠이 들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이불의 따듯함과 포근함, 뭐 그런 정서들을 억지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침대에 붙이고 있던 왼쪽 머리맡 저 아래에서 얕은 진동이 느껴졌고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는 스피커의 정수리에서 나는 진동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잔잔한 기타 팝을 틀어놓고 있었는데, 리드기타의 음색보다 리드기타의 뒤로 깔리는 굵직한 다른 선율들이 ‘음’이 아닌 ‘진동’으로 바뀌어 나의 온몸에 맞닿았다. 블루투스 스피커가 감지해내는 음역대에 기인한 진동의 소리가 내 침대 매트리스의 스프링들을 타고 나를 향해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가만히 침대에 왼쪽 귀를 붙이고 누워있으려니 그 소리와 선율들이 내 심장박동과 비슷하게 콩 하며 울리는 기분이 들었고 나는 곧 잠이 들었다. 새벽 3시 언저리까지 쌓였던 피로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직전에 얕게 흐르는 냇물 같은 진동 위에 누워있던 나의 몸은, 막 누군가를 몰래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 두근거리던 그 마음의 음색과 같은 빛을 띠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잠이 들고 나서도 혼자 노래를 부르며 트랙을 열심히 돌고 돌았을 새벽의 음악들과 거꾸로 놓인 채 밤을 지새웠을 블루투스 스피커. 잠을 이루지 못해 새벽 끝자락에서 뒤척이다가, 사랑하는 사람의 심장소리와 같은 진동을 온몸으로 느끼며 돌연 편안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었던 이유는 온밤을 홀로 노래하며 마라톤을 달리던 반복 재생의 노래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마라톤의 노래를 묵묵히 담아주며 물구나무서기를 계속해야 했던 블루투스 스피커 때문이었을까. 나는 둘 다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