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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Jan 26. 2019

<행복>(2007)

 허진호의 영화를 보다 보면 썩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풀 샷이 등장하는 기이함을 목격할 수 있다. 굳이 TV 드라마의 내러티브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으레 샷과 리버스 샷이 기대되는 장면에서 허진호는 갑자기 멀찌감치 떨어져 인물들이 놓인 장소, 사건, 반응들과 거리두기를 시도한다. 많은 사람들이 허진호의 영화를 신파를 앞세운 드라마라 이야기하지만, 내가 허진호의 영화를 그냥 '신파'라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허진호의 영화에서 투 샷은 주인공들의 사건을 다룰 때 빈번하게 사용되지만 그는 두 사람을 한 화면에 담을 때, 그러니까 두 남녀가 손을 맞잡거나 감정의 나눔, 어떤 사건이나 행위를 앞세울 때 풀 샷을 사용하는 법의 거의 없다. 허진호의 풀 샷은 그래서 불길하고 불안한 징조로 보인다. 예를 들면 남녀의 불화 혹은 사고로 인해 두 사람 모두 서로를 떠나 다른 장소와 시간에 놓여있을 때라든지, 둘 중 하나에게 닥친 불안한 현실을 보여줄 때의 경우에는 어김없이 어색한 풀 샷이 등장한다. 인물이 속해있는 장소에 관한 설명은 거의 없고, 심지어 없어도 좋을 법한 장면들에 허진호는 풀 샷을 사용한다. 영화의 내러티브를 따라가다 보면 금방 놓치지 쉽지만 뒤돌아서 생각하게 하는 허진호의 미장센들이 바로 이 풀 샷들의 사용이다.



이러한 효과는 <행복>에서도 몇 번 드러난다. 재활원에서 만난 은희(임수정)와 영수(황정민)의 '사랑'을 담아내는 장면들은 대부분이 바스트나 풀 샷에서 시작해 미세하게 클로즈업을 시도한다. 하지만 은희와 영수의 불화, 두 사람의 흐트러지는 관계 이후의 풀 샷, 다시 말해 그들의 이별 이후 각각의 단독 샷을 보여줄 때의 카메라는 미동도 없이 픽스된 그대로의 상태로 관객들을 당황시킨다. 마치 지금까지의 장면들이 거짓이었고, 피할 수 없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듯한 굳건한 의지, 그 낯선 부동의 카메라가 갑자기 등장하게 된다. 때문에 허진호의 영화를 보고 나면 지금까지 지켜보아온 것이 '신파'인지 '환상'인지 종종 분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바로 위와 같은, 롱테이크를 잘라내 어울리지 않게 붙여 넣은 듯한 위화감이 느껴지는 장면을 마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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