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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Jan 28. 2019

<머니볼>(2011)

<머니볼>은 '야구'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스포츠 정신, 혹은 선수 개개인의 고독과 성장을 보여주는 영화는 아니다. <머니볼>은 그라운드 전광판의 스코어에 주목하는 관객들과 미디어 뒤에서 야구라는 스포츠를 조율하고 조정하는 구단주와 전략가들에 대한 영화다. 이 영화에는 흙바닥을 엉덩이로 뭉개며 고군분투하는 선수들도 없고, 박진감 넘치게 하늘을 가로지르는 야구공도 보이지 않는다. 책상과 간이 칠판, 그 위의 무수한 숫자들, 그리고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구단 단장과 그의 데이터 매니저의 이론과 분석들이 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최고의 야구영화'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머니볼>이 '스포츠'라면 으레 떠올릴법한 일반적인 감동과 기교를 무기로 삼고 있지 않다는 것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물론 이 영화의 원탑이라 해도 좋을 법한 '빌리'가 있다.



<머니볼>에서 구단 단장인 '빌리'역을 맡은 브래드 피트가 나오는 장면을 모두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중에서 가장 애착을 가지는 장면은 바로 이 부분이다. 모두의 질타를 받으며 구단을 갈아엎는 파격적인 선수 기용 이후 승승장구하던 오클랜드 구단의 마지막 경기 실적으로 인해 고민에 빠져 있는 빌리를 데이터 매니저 '피터'(조나 힐)가 조용히 비디오 룸에 앉힌다. 피터는 2루로 뛰는 걸 겁냈던 거구 포수 제레미 브라운의 경기를 보여준다. 홈런을 치고도 관성적으로 자리에 머물러 있던 그를 사람들이 일으켜 세워 달리게 하는 장면이다. 바닥에 얼굴을 붙이고 엎드려서 어리둥절해 있던 그를 보며 피터는 말을 붙인다. "이제 그는 깨닫게 되겠죠, 자기가 친 공이 펜스를 넘어갔다는 걸. 홈런을 치고서도 그걸 몰랐던 거죠." 이 장면을 보던 빌리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기가 막힌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역시 야구는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네." 빌리의 이 한 마디가 <머니볼>을 대변해주는 대사라고 회자되곤 하지만 이 장면의 진정한 백미는 그다음에 이어지는 피터의 대사다.


"비유로 보여준 거예요."


피터는 빌리의 영향이 야구계에 얼마나 긍정적인 반향을 일으켰는지, 그리고 자신이 이룬 것을 돌아보라며 제레미 브라운의 일화를 빌리에게 보여준다. 물론 그걸 모르진 않는다. 끝까지 공이 날아가는 곳을 바라보지 섣불리 배트를 집어던져 땅만 바라보고 있음을 자신도 알고 있다. '알아'라고 답하며 비디오 룸을 나가는 빌리는 뒤를 돌아 피터에게 말한다.


"피터, 너는 정말 좋은 친구야."


야구에 대한 특별한 지식이 없거나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머니볼>을 인상 깊게 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 장면에 있다. '이래서 야구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는 빌리의 이야기는 결국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많은 사람들의 '삶'에 대한 회고다. 빌리의 입에서 그 이야기를 끌어내는 피터는 스스로 홈런을 친 것을 모르고 1루에 머무는 빌리가 고개를 들어 펜스 밖으로 날아간 공을, 자신의 홈런을 직시하게 만든다. 관성에 기대어 놓치기 쉬운 삶의 소중한 순간들에 대한 조언을 넌지시 흘리는 마법 같은 장면. <머니볼>에서 가장 사랑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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