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글쓰기
2016년 4월. 무려 A4 열 장 분량의 인생 계획서를 작성 후 4년 간 몸 담았던 회사에 퇴사 의지를 밝혔다. 열 장 분량의 인생 계획서를 보신 과장님과 차장님은 차마 적극적으로 나의 퇴사를 말리지 못하셨다.
인생 계획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계획은 글쓰기였다. 그 해가 지나기 전에 책을 내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그로부터 4년. 끄적끄적 생각날 때마다 적은 글이 십여장밖에 되지 않는다. 매일 한 장씩만, 아니 한 줄 씩만 글을 썼어도 이것보단 낫겠다.
지난 4년 동안 우리는 서울에서 제주로 거처를 옮겨왔고 제주로 이주한 지 벌써 3년이 다 되어간다. 첫 해는 백수부부로 제주의 바다와 초록을 누리며 살았고, 두번째 해는 동네 복지관에 근무했다. 지금은 다시 백수로 2세를 위해 병원에 다니며 애쓰고 있다.
요즘 남편이 부쩍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한다. 샤워할 때마다 한숨이 늘었다. 저 한숨소리 나도 내 본 적이 있어 안다. 회사 가기 싫은거다. 물었더니 일이 재미없단다. 남편은 2년 동안 한 달에 150만원씩 받으며 교육,취 업, 창업 시켜주는 교육생을 모집해 교육시키고 관리하는 업무를 한다. 1기 100명, 2기 70명이 누적되어 업무량은 많아지는데 교육생들은 지각에, 농땡이에, 나랏돈 아까운 줄 모르고 프로그램을 이용만 하는 이들을 보며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는건가' 싶어 현타가 올 때가 많단다. 그런데 그 교육생들을 위해 업체에 인턴십을 알아보러 다니고 관련 행정업무를 해주려니 일이 재미있을리가 만무다. 백번 이해가 갔다. 그런 남편이 너무 안쓰러웠다. 육지에서는 정치기획을 하고 국회에 다니며 나라를 바꾸는 정책을 만드는데 힘썼고, 공공기관의 잘나가는 대리로 기관의 규정을 만들며 일했었는데 이 작은 기관에서 루틴한 업무를 하려니 좀이 쑤시는 것도 이해가 간다. 재미도 없고 배울 것도 없으면 그만두라고 괜찮다고 했다. 사실 대책 없이 무작정 그만두지 않을 사람이란 걸 알기에 호탕한 척 했는지도 모른다.
남편을 회사에 보내고 홈요가를 하고 간단한 아침을 먹으며 티비를 켠다. 놀면 뭐하니?에서 이효리가 나온다. 유재석, 이효리, 비. 한 때 시대를 주름잡던 사람들이 나와 그룹을 만들고 노래를 공모해 앨범을 낸다.' 다시 여름 바닷가'라는 곡을 타이틀로 내걸고 앨범을 냈다. 가사는 이효리가 쓰고 작곡은 남편인 이상순이 썼다고 했다. 순간 '돈 참 쉽게 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공평한 혜택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기존에 쌓았던 명예와 인지도로 다시 대중 앞에 나와서 쉽게 많은 돈을 버는구나'라는 생각과 매달 월급 받으려고 자괴감을 느끼며 일하는 남편 생각이 오버랩되서 화가 나고 속이 상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딱히 취업하고 싶은 곳도 없고 대학원 공부가 하고 싶은지도 잘 모르던 그 시절. 캄캄한 미래와 길이 보이지 않는 진로 때문에 머리를 쥐어짜고 지내던 무렵 티비만 틀면 이효리의 10 minutes가 흘러나왔다. 강풍기에 머리를 휘날리며 10분이면 남자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던 이효리를 보는데 나도 모르게 박탈감이 느껴졌다. 이후, 몇 달이 지나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고 졸업 후 정부 지정기관에 들어가 일을 했다.
정부 지정기관에서 3년간 일하다 연구사 공부를 하겠다고 노량진으로 갔다. 나는 스터디공부보다 바로 옆에 있는 역인 용산의 영화관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다. 그 때 영화제 관객심사위원에 뽑혔는데 막상 되고나니 덜컥 겁이 났다. 공부 안하고 이래도 되나 싶어 거절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영화 평론 쪽으로 진로를 바꿨어야 했다. 어쨌든 난 시험에 연거푸 떨어지고 공부는 내 길이 아니구나를 절감한 채 고향으로 내려왔다. 또 다시 막막해진 내 미래로 밤을 지새우던 당시 최진실과 안재환의 자살 뉴스까지 이슈가 되어 내면이 바닥을 치던 시절. 예능 프로그램 '패밀리가 떴다'에서 이효리는 친근한 옆 집 언니 이미지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아 진짜 어쩜 내 인생 바닥의 시절마다 전성기를 누리고 있냐. 꼴보기 싫었다. 그래도 패밀리가 떴다는 매 주 열심히 봤던 기억이 난다.
난 이후 울산의 정부 지정기관으로 취업을 했고, 다시 서울로 이직을 해서 정말이지 열일하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직딩으로 열일하며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다시 사랑을 하는 동안 이효리는 유기견을 위해 봉사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후원하는 멋진 언니가 되어 있었고 결혼도 했다. 나보다 이효리가 먼저 결혼을 했다는 것도 충격이었다. 이효리보다는 내가 먼저 결혼할 줄 알았는데.
결혼 후 서울에서 2년을 보내고 남편과 제주로의 이주를 계획하고 준비하던 시절 효리네 민박이 나왔다. 아놔. 제주 땅 값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에게 힐링이 되고 제주의 자연을 소개한 프로그램이었지만 정작 제주도민들은 좋아하지 않았던 프로그램. 나 역시도 왜 지금 저걸 찍어서 쓰레기 감당 안되는 제주 땅에 관광객 증가시키고 땅값을 올려놓냐며 투덜거렸다. '이효리 나랑 참 안맞아' 하며.
그런데 이번에 남편의 에피소드와 맞물려 싹쓰리에 이효리가 나왔으니 또 다시 고깝게 보인 것이다.
처음 데뷔부터 마음에 안들었다. 남들은 몇 년간 연습생으로 고생하며 데뷔하는데 연습생 시절 없이 핑클로 데뷔해 처음부터 뜨고 나서 하고 싶은 음악하며 광고까지 섭렵하고 쉽게 돈을 버는 것 같아 보였다. 분명 나랑 다른 거고 나는 내 인생을 살면 되는건데 왠지 계속 거슬렸다.
거슬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다른 의미로는 질투도 될 수 있고 자극과 도전도 될 수 있겠다.
나도 안다. 물론 운이 아주 좋기도 했지만 무대에서 저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브라운관에 보여지지 않겠지만 피,땀,눈물을 흘려 오랜 시간 연습을 한다는 걸. 노래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컬 트레이닝도 하고 그동안 받았던 스트레스와 쉼을 위해 제주에서 요가를 통해 몸과 마음을 수련하고 긴 시간을 보냈다는 걸.
마음 한구석에서는 나도 이효리를 응원하고 있다. 앞으로도 사고치지 않고 소박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한 여자로, 동년배의 멋진 연예인으로 계속 살아주기를.
고백하자면 나의 정확한 마음은 질투에 가깝다. 나랑 같은 나이인데 젊은 나이에 부와 인지도를 쌓고, 좋은 일에 동참하고, 잘 맞는 남편 만나서 알콩달콩 잘 살고. 아, 물론 내 남편이 훨씬 멋있다. 얼굴도 잘 생겼고 마음도 멋있고 나랑도 죽이 잘맞고 나의 병맛 개그도 잘 받아준다. 병맛지랄과 함께 알콩달콩 햄볶는다.
다만 요즘 힘들어하는 남편을 보면서 속상했고, 싹쓰리로 나와 돈 벌어다 주는 이효리를 이상순이 참 좋아하겠다라는 마음이 들어 남편에게 그렇게 해주지 못하는 나를 보며 괜히 심통이 났다.
이번에는 그냥 글써야지 생각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옮겨야겠다 싶었다. 남편이 하고 싶은 일 하며 살 수 있도록 글쓰고 책내고 인세 받아서 남편이 회사에서 월급받으며 살지 않아도 되게 남편을 백수로 만들어 줘야겠다 결심했다.
남편 백수만들기 프로젝트. 남편 백수 만들려고 글쓰는 아내 업무 오늘부터 시작.
성공한다면 이효리에게도 감사하는 글을 한 편 써줘야지. 같은 제주에 사니 내가 책을 내고 작가가 되면 한 번 만나 나의 이런 속이야기를 하며 친구가 되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