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생각 지키기

어쨌든, 말씀

by 단비

화가 난다.


프렌즈타운을 깔아놓고 하루에 100판도 넘게 하릴없이 게임을 하면서 스스로 한심하다고 생각하는데도 멈추지 못하며 이 황금같은 여름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조목조목 말하고 누군가의 뒷담화라도 해서 풀지 않고 아침마다 짜증 섞인 한숨을 내뱉는 남편에게. 견디기 힘든 불쾌지수 최고치를 만드는 이 습하고 더운 날씨에. 심지어 아직 우리에게 아이를 허락해주지 않으시는, 로또 당첨도 안되게 해주시는 하나님에게까지.


왜 이렇게 화가 날까.


요즘 오전마다 tvn에서 '비밀의 숲 시즌 1'을 재방송해준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남편 출근 준비를 돕고, 20분 동안 홈요가를 하고 점심 전까지 비밀의 숲을 본다. 이후 점심을 차려 먹고 안방에 에어컨을 틀어 놓은 채 누워서 핸드폰 게임을 한다. 원래는 딱 다섯 판만 할 생각이었으나 30분 무제한 하트가 보상으로 주어지고 여러가지 아이템을 써서 한 판 한 판을 클리어 할 때마다 신이 나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게임을 한다. 어느새 두 세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이쯤 되면 현타가 온다. 나 대체 뭐하고 있는건가. 부랴부랴 설거지를 하고 방을 정리한다. 방에 계속 에어컨을 켜놓으니 전기세가 걱정되기도 하고 방에서는 집중도 되지 않아 짐을 챙겨 함덕에 새로 생긴 에이바우트 카페로 간다. 바다 뷰를 바라보며 잠시 멍 때리다 정신을 차리고 노트북을 연다. 브런치 작가로 등록 되었다. 아싸. 이제 일주일에 한 편씩 글을 올려야지. 내가 기획한 두 번째 테마의 프롤로그 글을 올린다. 어느덧 저녁 6시가 된다. 남편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간다. 남편이 오면 같이 저녁을 차려 먹고 다시 침대에 누워 프렌즈타운을 한다. 12시까지 tv를 보며 핸드폰 게임을 하다 잠이 든다.

이게 지난 며칠 간 나의 일과였다.


시간을 의미없이 흘려보내는 것 같아 내 시간에게 슬며시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가끔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온 몸에 힘을 뺀 채 쉬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정말이지 이건 쉬어도 너무 쉬었다.


오늘은 청소년부 수련회 답사를 가는 날이다. 함덕 루스트 플레이스에서 11시에 만나 점심을 먹고 수련회 회의를 하고 송당에 있는 펜션에 답사를 갔다가 애월에 있는 9.81파크에 가서 청소년부 아이들이 체험할 액티브 스포츠 중 한가지를 선체험하고 올 예정이다.

하루를 온전히 다른 일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제서야 내 시간이 아까워졌다. 모임 전에 잠깐이라도 나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남편 출근할 때 같이 나가서 글을 써야지.' 생각했다.


어제도, 오늘 아침에도 분명 "여보야 출근할 때 나도 같이 집에서 나갈거예요." 말했다. 난 일어나자마자 요가매트를 펴고 홈요가를 했고 남편은 7시 45분까지도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7시 45분. "여보야~" 부르니 짜증 섞인 목소리로 "왜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입을 다물었다. '또 회사 갈 생각에 스트레스 받는구나. 저러다 괜히 나한테 불똥 튀겠네.' "물 갖다 줄까요? 안경 닦아 줘요?" 물었는데도 아니라고 괜찮다고 했다. 그러다가 출근 직전 남편의 짜증이 폭발했다. "나 출근 준비 도와주고, 10 분 뒤에 나가면 안돼요?"


아니, 어제 오늘 같이 나갈거라고 두 번이나 말했는데 그 때는 아무 말도 안하고 있더니 이제 와서? 7시 45분에 이제 씻어야 할 것 같다고 불렀는데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하며 휴대폰만 보고 있더니 이제 와서? 5분만 일찍 준비하지. 그것도 아니면 준비 중에 "나 출근 준비 좀 도와주고 10분 뒤에 나가도 돼요?"라고 도움을 청하던지.


매일 아침 출근 준비를 도와주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라 감사한 일이 되어야 한다.

감정을 폭발시키 듯 짜증내며 나가는 남편 뒤통수에 대고 나도 참지 않고 퍼부었다. "아 진짜 성격 지랄맞네."


평소에는 다정하게 뽀뽀하며 얼른 다녀오라고 인사하며 출근시켰는데 오늘 남편은 현관문을 쾅 닫고, 나는 나가보지도 않았다. 남편이 출근한 후 창문을 닫고 스위치를 끄고 마스크와 휴대폰 충전기를 챙겨서 나오느라 나는 결국 남편 출근 후 10분 뒤에 에이바우트로 출발했다.


좀처럼 화가 가라앉지 않는다. 나에게, 남편에게, 애꿎은 날씨에게, 심지어 하나님에게까지 화를 내고 있는 중이다.


남편에게 장문의 톡을 보낸다.


Screenshot_20200814-095437_KakaoTalk[1].jpg


↑ 남편에게 보낸 장문의 톡. 난 평소에는 여보야라고 부르다가 화가 나면 지수씨라고 이름을 부른다.



그래. 난 잘못한 게 없어. 아주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따졌다고 생각하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주파수 지직거리듯 시끄럽고 불편한 걸까.



이 타이밍에 성경 구절 하나가 문득 떠오른다.

아놔. 이 시점에? 끝까지 화도 못내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아니, 사람이 그게 가능해?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모든 일에 내 성격이 앞서는데 기도와 간구라..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이미 가진 것도 아니고 앞으로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남편에게 먼저 투덜거리게 되던걸.

그리하면. 꼭 그렇게 해야하는거지? 좋아 패쓰. 그리고 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이면 다 주시려나? 그런데 평강?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너희가 구한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고?


난 이 말씀을 곱씹으 때마다 적지 않은 충격을 받곤 한다.

정말이지 인생의 진리를 알고 계신 분이구나.


남편이 스트레스 받으며 일하는 것이 속상하고 그 때문에 아침마다 내뱉는 짜증섞인 한숨을 듣는 것이 화가 난다. 몇 주째 로또를 사고 있지만 5,000원권 한 번 된 것을 제외하고는 당췌 맞질 않는다.

배란유도제부터 시험관까지 2세를 위한 노력에도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많이 울었고 원망도 했다.

하지만 돈이 많다고, 아이가 있다고 모두가 평안하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평안과 행복은 환경과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과 생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다 맞다고 생각하며 한껏 자만하려는 순간마다 나를 낮추시는 깨달음을 주신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늘 남편의 평안과 화이팅을 위해 기도해야지. 남편에게 다시 사과의 메세지를 보내야지. 그리고 기다려 봐야지. 나의 마음과 생각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이 날 난 남편에게 다시 사과의 메세지를 보냈고, 답사 전 화해의 통화를 했다.

나는 답사라 쓰고 소풍이라 읽은 청소년부 답사를 즐겁게 다녀왔다.


다음 날 남편과 나는 말복 기념으로 삼계탕을 먹고 카페에 가서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 마음이 어떤지에 대해. 주변 환경이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각자의 마음 중심을 살펴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각자의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나의 마음과 생각은 100% 평안해지지는 않았다. 계속 꿀렁거린다. 지금 이 방향이 맞는지 계속 질문한다. 계속 걸어가도 되는지 질문한다. 질문만으로도 해답을 얻을 때가 있고,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것이 아주 많은 일에 정답이 된다는 것은 조금 알 것 같다.

마음과 생각을 돌아보고 지키며 이 걸음이 맞는지 질문하며 천천히 한 걸음씩 내딛으려 한다. 이 한걸음에는 나의 글쓰기가 아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느리지만 제대로 된 방향으로 그리고 꾸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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