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기다림의 연속

어쩌면, 기다림은 사랑

by 단비

작지만 나의 실천이 지구를 살리는 데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요즘 일상에서 플라스틱 쓰레기 줄이기를 위해 노력한다.

생수를 사 마시고 난 뒤 나오는 페트 쓰레기가 많아 고심하다가

냉동실에 쌓여있는 구찌뽕, 대추, 비트 등을 발견하고는 방법을 찾아냈다.

물 끓여 마시기.




비트를 넣고 끓인 물을 물통에 부었다.

얼른 냉장고에 넣어두려고

급한 마음에 완전히 식히지도 않은 채 부어버렸는데

아뿔싸.

내열 물통이 아니었다.

1리터나 들어가는 물통이라 아끼던 거였는데

금세 쪼그라들어 못쓰게 되어 버렸다.



"이번 생은 망했다." 를 외치고 장렬히 전사한 나의 물통. 미안하다 ㅜ.ㅜ



요즘 나오는 물병들이 대부분 내열 물통이라

이것도 당연히 8~90도 되는 온도는 너끈히 견디겠지 싶었다.


아끼던 물통이라 아까운 마음도 들었지만

이내 물통에게 미안해졌다.

무지한 주인 만나서

이번 생을 이렇게 마감하는구나.





기다리지 못해 물건을 망가뜨린 일은 또 있었다.


다진 마늘을 얼음통에 넣어 얼려둔다.

요리 재료로 쓰려면 꺼내 두었다가 조금 녹았을 때 빼내야 한다.

몇 분을 기다리지 못하고 젓가락을 넣어 다진 마늘을 빼내다

아끼던 젓가락을 부러뜨렸다.


가볍고 그립감이 좋아서 매 끼 식사 때마다 저것만 썼었는데. 쩝.



다진 마늘이 녹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억지로 꺼내려다가 똑 부러져버린 젓가락.






쪼그라든 물통과 부러진 젓가락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 아닐까.


끓는 물에 3분.

맛있는 한 끼를 위해 컵라면이 익어가는 시간을 기다린다.


약속.

누군가와의 만남,

그와 함께 채워갈 시간을 기대하며 상대를 기다린다.


임신부.

아이가 뱃속에서 10달 동안 무럭무럭 자라서

건강하게 만날 수 있기를 기다린다.


시험을 앞둔 이들.

접수일정을 기다리고

컴퓨터 앞에서 대기했다가 접수를 하고

공부하며 시험 D-day를 기다리고

시험을 치른 후에는 합격 발표를 기다린다.



지금,

우리 부부는 2세를 기다린다.


누군가는 아직 만나지 못한 인생의 반려자를 기다리고,

누군가는 말이 느린 아이와 함께 동요를 부를 날을 기다리며,

누군가는 사이비 종교에 빠진 동생이 가족과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길 기다린다.



짧고도 긴 인간의 삶.

찰나의 순간도,

그 찰나의 순간들이 모인 긴 시간들도

결국은 기다림이다.


어쩌면, 남아 있는 우리의 인생 역시

기다림의 연속일지 모른다.







기다림은

물리적인 시간이 흘러가는 것만을 뜻하진 않는다.


기대와 실망, 소망과 절망, 기쁨과 슬픔이 뒤섞여

기다림이라는 시간을 세밀하고도 촘촘하게 채운다.


기다림의 대상을 더 알아가기 위해 공부하고

때론 그 시간이 괴로워 신에게 빨리 내놓으라며

울부짖기도 한다.


결국 기다림의 시간 동안 더 이해하고

신이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며

다 알 수 없지만 믿고 싶어 진다.


그리하여 기다림의 본질은 사랑이다.








내가 아끼던 물통에 내열기능이 없는 걸 알았다면,

젓가락이 저렇게 부러질 걸 알았다면

나는 아마도 물통과 젓가락을 저리 보내지는 않았을 거다.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다가가야 한다.


나 때문에 '이번 생은 망한 물통'에게 배웠다.

기다림은 사랑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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