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괜찮지가 않았다

어쩌다, 난임

by 단비

"수치 0.1로 비임신입니다. "


또 다시 마음이 무너졌다.


결혼 5년차인 작년부터 시험관 시술을 시작했다. 1차 이식 날 시댁식구들이 놀러오고 사회복지 현장실습도 시작했다. 백수였던 나는 갑자기 몰아친 일정에 피곤했고 매일 오후8시만 되면 곯아떨어졌다. 힘든 일정 탓에 시도했다는데 의의를 두었지만 시술 실패는 마음이 아렸다. 나만 있으면 된다는 남편의 위로가 마음에 닿았다. 괜찮았다.


2차 이식 때는 누구의 방문도 매일 출근해야하는 일정도 없었다. 매일 하던 요가조차 혹여나 배에 힘을 주면 무리가 되지 않을까 싶어 간단한 스트레칭만 반복했다.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해서 가끔 마당의 잡초를 뽑는 일과 집안 일 정도만 했다. 주일날 하던 교회학교 교사 사역도 계속해서 했다. 결과는 비임신. 더 조심했어야했나 이식 후 2주간의 시간을 곱씹어보았다.

결혼하면 아이가 생기는 건 당연한 줄 알았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이었구나를 깨닫는 순간 가슴이 저렸다. 엄마의 전화에, 시어머니의 전화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한시간 일찍 조퇴해서 온 남편과 치맥을 했다. 토닥여주는 남편이 있어 힘이 났다. 조금 더 둘이 보내라고 하시나보다. 며칠 지나 일상을 회복했다. 다시, 괜찮아졌다.


이번에는 달랐다.

냉동 시술이어서 생리 후 내 배에 매일 주사바늘을 찔러넣지 않아도 되었고 신선배아때만큼 병원에 자주가지 않아도 되었다. 다만 아침에 일어나 질정을 넣고 하루 세 번 같은 시간에 맞춰 약을 챙겨먹었다. 몸에 무리를 주지 않으려고 간단한 스트레칭만 하고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이식 후 나의 하루 일정은 물 마시기, 질정넣기, 밥먹기, 약먹기, 쉬기, 밥먹기, 약먹기, 쉬기, 밥먹기, 약먹기, 자기의 반복이었다. 마당에 잡초를 뽑는 일도, 설거지 외에는 집안 일도 하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꿈을 꾸셨다고 했다. 좋은 꿈이라며 이번에는 잘 될거라고 꿈 내용도 말씀해주셨다. 며칠 후 나도 꿈을 꾸었다. 큰 호랑이가 사자를 물리치고 아기 호랑이를 물고 하늘을 나는 꿈. 꿈 속에서 나는 축하를 받았다. 가족들도, 지인들도, 나의 시험관 시술 성공을 위해 기도했다. 기대치는 하늘을 뚫었고, 설레발을 치며 감사기도를 드렸다. 피검사 날이 다가와 결과가 궁금했지만 임신테스트를 하지 않고 바로 병원에 갔다. 이식 후 2주간의 시간보다 피를 뽑고 결과를 기다리는 반나절의 시간 동안이 더 피가 말랐다.


♬ 밤하늘 빛나는 수만가지 것들이 ~ 내 휴대폰 벨소리의 노래 한 구절이 채 울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조마조마. 여보세요. 네 OOO씨죠. 네. O산부인과인데 결과 나왔어요. 수치 0.1로 비임신입니다. 아...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수화기 건너편에서 말을 이어갔다. 이번에 냉동하셔서 바로 터지는 생리 둘째날에 오시면 그 때부터 약먹고 바로 시험관 시술 시작하실 수 있어요.

정신이 아득해졌다. 뭐라는거야.


수화기 너머 간호사의 말을 들으며 결심했다. 다시는 O산부인과에 가지 말아야겠다.

비임신 소식에 절망할 상대방의 마음은 아랑곳 없이 다음 시술을 이야기하는 간호사의 음성을 들으며 내가 ATM기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기분이 더럽고 불쾌했다.

다른 한 분의 간호사 선생님이 친절하시고 갈 때마다 잘 될거라고 응원해주셔서 그 분 덕에 O산부인과를 다니는 게 힘들지 않았었고 잘 되면 선물도 드려야겠다 생각했는데 비임신 소식을 전한 간호사의 전화 한 통화로 O산부인과에서의 다음은 사라졌다.


전화통화 후 온 몸이 땅 속 깊이 꺼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남편에게 톡을 보내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동생도 여러번의 시험관 시술로 작년에 쌍둥이를 낳았다. 그 마음을 아는 녀석이기에 감사히 전화를 받았는데 괜찮다며 다음엔 수도권에 와서 해보라고 했다. 무슨 말인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난 괜찮지가 않아. 지금은 그냥 위로가 필요한 시간이야.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았다. 몸보다 마음의 힘이 없었다. 누가 내 심정을 알까. 우리처럼 아가를 기다리는 이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 들어갔다. 누군가의 글을 읽으며 같이 울고 나의 이야기를 댓글로 달며 위로를 받았다. 이게 내 눈이야 싶을 정도로 팅팅. 너무 울어서 머리가 지끈. 울다 죽을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가 되어서야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울음을 멈추었다. 그래도 퇴근한 남편을 보니 다시 눈물이 나왔다. 남편 품에 안겨 마지막으로 울고 다시 일상을 시작해야지. 창피한 줄도 모르고 집 앞 대로변에서 대성통곡을 했다.


그 날 밤부터 온몸에 에너지와 기력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생각났다.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가 다 말라 돌아가신 예수님. 물론 나는 그 고통을 알지 못한다. 그 마음 또한 알지 못한다. 좀처럼 회복이 되지 않아 생각했다. 삼일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나의 몸도 마음도 바닥을 치고 올라가면 좋으련만.


한 주를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바닥으로 꺼지는 몸과 마음을 제멋대로 두었다. 티비를 켜놓고 하릴없이 멍 때리고 아무것도 아닌 드라마의 대사에 눈물을 쏟아냈다.


괜찮냐고 물어보는 이들이 종종 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괜찮아지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냥 그 때 그 때 마음이 추스러들거나 왈칵하거나의 문제이다. 절대 괜찮다는 단어를 쓸 수 없는 결코 괜찮아지지 않는 사건이다.


세번째 시술 실패 십 여일 후 고향친구가 가족과 함께 제주에 놀러왔다. 나의 시험관 실패 소식을 듣고 가족 여행 중에 특별히 시간을 내어 우리집에 방문해주었다. 바쁜 스케줄 가운데 우리집에 들러 얼굴보고 이야기 나누고 집을 나서기 전 목회자 남편이 기도도 해주었다. 현관을 나서면서 친구가 힘내라고 다 지나간다고 말하는데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지 싶었다. 그 전까지 정말 고마웠는데.


누군가의 상황과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아니, 설사 헤아려진다 하더라도

많은 말보다 침묵이 더 깊은 위로가 된다.

괜찮다고 다 지나간다고 힘내라고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네기보다

조용히 곁에 앉아 손을 잡고 함께 울어주는 것이

더 짙은 위로가 된다.

그저 같이 아파해주는 것.

그것보다 큰 위로는 없다.


생각해보니 첫 번째 시도 실패에도, 두 번째 시도 실패에도 나는 괜찮지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배아였지만 나는 생명을 품었고 2주 동안 엄마였다. 세 번이나 아이를 잃었는데 어찌 괜찮을 수가 있겠는가. 연이은 시도와 실패는 트라우마를 낳는다. 예민과 우울이 급습한다. 생각은 한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지 않은 모든 경우의 수들을 현실로 가져와 두려움과 공포 속에 스스로를 가둔다.


다행히도 지금은 하루에 한 번 꼴로만 울컥 내지는 왈칵거린다. 해야할 집안일들이 보이고 읽고 싶은 책도, 보고 싶은 영화도 다시 생겼다. 남편과 양가 가족들의 지지가 힘이 되어 주었다.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내게 이 봄도 큰 위로가 되어 주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겨울이었는데, 황량한 가지만 남아있던 마당을 어슬렁대며 보았던 것이 어제 같았는데 어느덧 나무에 연두색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노랗고 하얀 꽃들이 피어났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봄은 반드시 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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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를 뿌리지 않았는데 우리집 마당 여기저기에 피어난 예쁜 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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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씨앗을 뿌린 곳에는 꽃이 거의 피지 않았는데 씨앗을 뿌리지도 않은 우리집 마당 여기저기에 꽃이 피어났다. 꽃들을 보며 문득 다시 깨달았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정말이지 세상에 많이 없구나. 물 주는 이는 아볼로이나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다. 계획은 사람이 세울지라도 그 일을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다. 라는 성경구절들이 떠올랐다. 자연과 함께하며 주시는 마음. 인간은 피조물일수밖에 없구나 였다.


나는 오늘부터 온 몸에 힘을 빼는 연습을 하려한다. 아등바등 대신 흘러가는대로. 최선의 노력을 하지만 결과는 맡기는걸로. 지치지 않았으면 한다.

작은 것에 기뻐하며 함께 걷기. 헐레벌떡 뛰어가다가 또 다시 넘어지고 다치지 말고 천천히 한 걸음씩 꾸준하게 걸어가길. 자칫 돌부리에 걸리더라도 한 사람이 냉큼 잡아줄 수 있게 손 잡고 천천히.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피조물들의 오늘을 응원한다.

또한 아이를 기다리는 세상의 모든 예비 부모들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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