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외수정(시험관 아기) 시술이란 채취된 난자와 정자를 체외에서 수정시켜 배아를 생성하고 자궁 내에 이식하는 시술을 말한다.
우리는 난임부부이다.
처음에는 '난임'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다가왔다. 마치 부부 중 누군가에게 혹은 둘 다에게 문제가 있어서 아이가 생기지 않는 부부를 말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난임의 이유 중 그런 경우도 있지만 결혼 후 피임 없이 1년 간 아이가 생기지 않는 부부들은 다 난임부부라 통칭한다고 한다.
우리는 결혼 5년 8개월 차 부부이다. 아직 아이가 없고 작년부터 시험관을 시작했다.
난임 전문병원에서 검사를 받아 본 결과 나도 남편도 임신에 지장을 줄만한 아무런 제약도 없었다. 난자 나이도 현재 나이보다 7살 정도 어렸고 정자 개수나 활동성도 좋았다.
제주도에서 시험관 신선 2차, 냉동 1차까지 시도했지만 결과는 다 비임신.
시험관 시술의 과정은 지난하다.
매 달 자연임신을 시도해보고 이번 달엔 생리가 터지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생리가 터지면 실망하는 마음을 뒤로한 채 보건소로 달려간다. 난임 지원신청서를 발급받기 위해서다.
난임 지원신청서를 발급받으려면 먼저 난임 전문병원에서 난임진단서를 받아 보건소에 제출해야 한다. 건강보험료 납부금액에 따라 지원금액이 달라지는데 우리는 현재 남편 외벌이라 최대 지원금액을 받을 수 있다. 시험관 신선 1~4차까지는 110만 원 지원을 받는다.
난임 전문병원은 생리 2~3일 차에 방문해야 한다.
생리 2~3일 차에 병원을 방문해 질초음파 검사를 한다. 그날부터 난소를 자극하는 호르몬 주사를 맞으며 난포를 성장시킨다. 이를 과배란 유도라 한다. 보통 5일 정도 맞는다. 매일 병원에 방문할 수 없으니 주사를 받아서 매일 아침 같은 시간 내가 내 배에 주사를 찔러 넣는다.
처음에는 내 배에 내가 주사를 찔러 넣는다는 게 너무 무서웠다. 숨이 쉬어지지 않고 어떤 주사는 아프기도 해서 맞고 나면 누워있어야 했다. 피하지방에 맞는 주사라 그런지 나의 경우에는 주사 맞는 기간 동안 아랫배가 많이 나온다. 의연하게 생각하면 얼마든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인데 생전 처음 내가 내 배에 주사를 찔러 넣는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우울이 급습한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남들은 잘만 생기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건가 싶기도 하고..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가기 시작해서 마음이 요동친다.
5일 정도 지나 다시 병원을 방문한다. 질 초음파를 통해 난포가 잘 자라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난자를 채취할 만큼의 크기가 자라지 않았으면 다시 얼마간 주사를 더 처방해준다.
다시 의사 선생님이 오라고 하는 날짜에 병원을 방문한다. 질 초음파 검사로 난자를 채취할 만큼의 크기가 된다 싶을 날짜에 난자 채취일을 정한다.
난자 채취일에 남편도 같이 방문해 정자를 채취한다. 난자는 질을 통해 긴 주사로 채취하는데 많이 아파서 보통 마취를 한 후 채취를 한다. 난자 채취 후에는 마취가 깨어날 때까지 약 한 시간 정도를 병실에 누워있다가 나온다. 피를 많이 흘리기 때문에 포카리스웨트 같이 체내 성분과 비슷한 이온음료를 많이 마셔주라고 한다.
이후 병원에서는 채취한 난자와 정자를 배양한다. 보통 3일~5일 배양을 하는데 병원마다 배양 시스템의 차이가 있다. 굳이 대기시간도 길고 먼 곳에 있는 병원까지 찾아가는 이유는 주로 이 때문이다.
이식 또한 난임 전문병원마다 차이가 있다. 좋은 배아 시스템에서 최상의 배아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배아의 상태와 의사의 기술에 따라 이식 후 착상 성공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배양 후 3일 혹은 5일 뒤 자궁에 배아를 이식한다.
이식 날도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야 한다. 일명 굴욕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통해 의사 선생님이 질을 통과해 자궁으로 배아를 이식하는 과정을 지켜본다.
신선 1,2차 때는 수월하게 진행되었는데 냉동 1차 때는 피가 너무 많이 흘러서 이식 후 한 시간 정도를 누워있다 나왔다. 아마도 이때 다시는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모른다.
이식 후 2주간 잘 먹고 잘 쉬며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 시간 동안정말이지 피를 말린다.
그 2주라는 시간 동안 나는 이미 배아가 내 몸속에 있음을 알고 있는 임신부가 된다. 움직여도 되는지 이걸 먹어도 되는지 운동은 어느 정도 해야 하는지 일거수일투족이 다 신경이 쓰인다. 나는 이식 후 과하게 활동도 해봤고 약간 움직여도 봤고 정말 침대 붙박이만도 해봤다. 정답은 없다. 아니 알 수가 없다. 세 번 다 비임신이었기 때문에.
피 말리는 2주가 지나면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받는다. 피를 뽑고 결과를 기다리는 반나절은 이식 후 피검사를 받기까지 2주의 시간보다 더디 흐른다.
제주도에서 신선 2차, 냉동 1차까지 한 뒤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내 배에 주사를 찔러 넣는 일은 다시 하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이식 후 피 말리는 시간 뒤 비임신이라는 절망적인 통보를 듣고 이후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두려웠다. 다시 안 하고 싶었다.
우리 둘만 있으면 된다는 남편과 달리 친정 부모님과 동생은 한 번 더를 권했다.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아무래도 제주도와 육지의 시설과 기술은 차이가 있을 테니 육지에 나와서 한 번만 더 해보지 않겠냐는 거였다. 동생네도 시험관 아기 시술을 통해 쌍둥이를 얻었다. 병원을 옮긴 뒤 성공했던 터라 성공한 병원을 추천해주었고 무엇보다 나의 마음과 상황을 잘 알기에 동생의 추천이 시험관 아기 시술을 다시 시도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제주도에서 할 만큼 해봤으니 육지에서도 해보자 라는 마음이 들었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남편과 의논 후 혹시 자연임신이 안되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한 번만 더 해보자고 육지행을 결심했다. 육지에서의 체외수정을 권하신 부모님은 육지에 오게 되면 기꺼이 춘천집에 있으라며 운전기사를 자처하셨다.
지난달 산부인과에 가서 날을 받고 자연임신을 시도했다. 비교적 생리주기가 정확한 편이라 하루 정도 늦어진 생리에 기대도 했건만 그저께 새벽 생리가 터졌다. 아침 9시에 바로 평촌마리아 예약을 하고 보건소로 향했다.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고 보건소에서 난임 지원신청서를 받고 한 달 간의 짐을 쌌다.
결혼 후 가장 긴 시간 동안 남편과 떨어져 있게 되었다. 남편은 너무 오래 떨어져 있는다며 왔다 갔다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해보자고 했다. 하지만 너무 무리는 말라며 주니어 단비를 위해 참을 수 있다고 해줬다.
아침 출근길에 나를 공항까지 데려다주고 출근했다. 비행기 타려는데 톡이 왔다. '아가, 벌써부터 보고 싶어요.'(남편은 나를 '아가'라고 부른다.) 괜히 코 끝이 찡해졌다. 나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