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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Aug 18. 2022

입에 재갈 물리기

지혜를 구하기

내가 속으로 다짐하였다.
"나의 길을 내가 지켜서, 내 혀로는 죄를 짓지 말아야지.
악한 자가 내 앞에 있는 동안에는, 나의 입에 재갈을 물려야지."

시편 39:1


어제 복지관 분관 선생님이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해서 자원봉사를 하러 갔다. 점심을 사주셔서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 월요일 회의시간에 나의 퇴사 소식을 들었던 쌤이 나에게 "왜 퇴사하냐."는 질문을 하셔서 긴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고 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중 하나는 그 전에 질문했던 퇴사의 이유에 대한 답변이었다. 

퇴사의 가장 큰 이유는 "계속 일을 해야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한 마디인데 쓸 데 없이 많은 말을 했다. 많은 말을 하다보니 사람에 대한 서운함도 이야기하게 되고 서운함을 느꼈던 그 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올라와 마음이 좋지 않았다. 


자원봉사를 하러 가기 전 퇴사와 관련해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겠다 다짐했는데 이넘의 입이 방정이다. 왜 성경에 "입에 재갈을 물리라."는 말씀이 있는지 다시 한 번 절실히 깨달았다. 

이미 숱하게 경험하고 반성했던 일인데 우둔함에서 비롯된 행동이 반복되고 그 반복은 후회를 불러왔다. 나를 이해해주고 공감해주기 원해 한 말이었지만 상대는 내가 아니기에 그 어떤 답답함도 해소해주지 못한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말은 자고로 들을 준비가 된 사람에게 해야한다. 나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마음과 귀를 열어 질문할 때 답해야 한다. 마음과 귀를 연 상태에서 들어도 다른 사람의 긴 이야기는 지루한 법인데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다다다다 해대면 상대는 피로하다. 


'입에 재갈을 물리라.'는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왜 네 입에 재갈을 물리라고 하셨을까.(시편 39편의 저자는 '내 입에 재갈을 물려야지'라고 했지만 나는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었다.) 

 

첫 째, 사람에게 말하는 대신 아바와 대화하라는 뜻이다. 

많은 이들이 답답한 일이 생기면 누군가에게 말을 하면서 답답함을 해소한다. 

사실 사람에게 하는 많은 말은 부족하다. 하면 할수록 나의 설명에 한계를 느끼고 어떤 말로도 나의 마음과 상황을 적확하게 표현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나는 열에 일곱은 사람에게 의미없고 무게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쏟아내곤 후회했다.  

입에 재갈을 물리고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으면 답답함은 커진다. 입을 닫으면 생각의 회로가 돌아가고 그러다보면 아바에게 말을 걸게 된다. 사람에게 말하기에 앞서 나의 마음을 아바 앞에 토해내게 되는 것이다. 그 말들은 아바와의 대화로 이어지고 그 대화는 곧 기도가 된다. 


두 번째, 지혜를 구하라는 말이다. 

기분 좋고 즐거운 대화는 여유가 있다. 반면 나의 억울함이나 불평을 토로할 때는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나의 말이 앞서게 된다. 

말이 앞서지 않게 내 입에 재갈을 물리고 묵상하는 것 자체가 지혜다. 사람 앞에서 막무가내로 입을 열기 전 한 번 더 생각하고 아바와 대화하고 기도하면 자연스럽게 지혜를 구하게 된다.  


내 입에 재갈을 물리지 못한 어제를 후회하며 오늘은 말씀을 읽으며 아바와의 시간을 늘려본다. 내일부터는 내 입에 재갈을 물리는 지혜를 실천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본다. 



석양이 드리운 저녁 조천의 어느 올레길 / 사람이 만들 수 없는 풍광. 자연 앞에서 피조물인 나는 한없이 겸손해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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