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비 Oct 30. 2022

오해하지 말고 들어

상처를 흘려보내는 법


"오해하지 말고 들어." 

이 말로 시작하는 대부분의 말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겠다는 작정의 말이다.


어제는 작은 아주버니의 결혼식이었다. 금요일 육지로 가서 시어머니 댁에서 하루를 자고 토요일 일찍 집에서 나섰다. 12시 결혼식이었는데 8시 반까지 신도림에 가야 했다. 안산에 사는 큰 아주버니가 7시에 인천에 사는 어머니를 모시러 오면서 우리 부부를 같이 태워갔다.


남편은 5분만, 10분만이 습관인 사람이다. 집에서도 나는 아침에 일어나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고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요가를 할 때까지 남편은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같이 운동을 하고 싶어 요가 매트를 하나 더 구입해놨는데 내가 번갈아 돌려쓰고 있다. 요즈음 신경 쓸 일이 많아 피곤하기도 하겠지만 결혼 전부터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된 올빼미 유형인데 회사를 다녀야 하니 겨우 출근형 인간으로 사는 유형의 사람이다.

정말 숱하게 "일찍 일어나서 나랑 같이 아침운동도 하고 집안 청소도 같이 하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했지만 쉽게 바뀌진 않는다. 아직 잔소리를 놓진 못했지만 그냥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인가 보다 인정하려고 노력하고 사는 중이다.


금요일 인천 도착 후 아주버니 결혼식 때문에 챙겨간 셔츠를 다리려고 남편이 시어머니에게 다리미 있냐고 물었다. 시어머니는 다리미를 챙겨주시며 지금 다리라고 하셨고 남편은 "나중에"라고 말했다. 시어머니는 뭘 나중에냐며 바로바로 해 버릇하라고 하셨고 남편은 구시렁거리며 셔츠를 다렸다. 시어머니는 "왜 저렇게 게으름을 피울까. 나는 안 그러는데. 쟤 아버지가 저랬어." 하셨다.


어제 아침에도 인천 집에서 출발 전 가는 차 안에서 먹을 김밥을 사 오라며 시어머니는 남편을 김밥천국으로 보내셨다. 뛰라고 하며 계속 닦달하시는 시어머니 때문에 남편은 마음이 상한 듯 보였다.


작년에 혼한 큰 아주버니는 열네 살 어린 신부를 맞았다. 나보다 열두 살이 어리다. 지난주 시어머니로부터 큰동서 임신소식을 들었다.

"어머니가 한시름 놓으셨겠어요. 됐어요."라고 말씀드렸다. 시어머니는

"한시름은 무슨. 각자 너네들만 잘 살면 돼." 

하셨다.


전화를 끊었는데 축하와는 별개로 눈물이 났다. 네 번째 시험관 성공했지만 5주 5일 차에 자궁외 임신으로 하늘나라 보내준 녀석이 생각이 나서였다.

첫 번째 시험관 배아 이식 날 시댁 식구들(시어머니, 큰 아주버니, 결혼 전 큰동서까지)이 와서 일주일 있다 간 일이 스쳐 지나가며 그때 힘들지 않았다면 성공했을까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지난 일이어 소용없는 생각이었는데 원망의 마음이 올라와 당황스러웠다. 다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괜찮아지지 않았었나 보다고 내 마음을 마주한 일이어서. 둘이 그냥 잘살자고 다짐했었는데 아직 마음 한편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미련 같은 게 남아 있었나 보다.


그날 남편은 조퇴해서 나와 저녁을 함께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남편이 밥 먹으며 카톡 소리가 날 때마다 칼답을 여러 번 보내서 이럴 거면 굳이 왜 조퇴까지 하고 왔냐고 타박을 하긴 했지만 조퇴까지 하고 와서 나를 토닥여주는 그 마음이 고마웠다. 그날 또 이야기했었다. 우리 둘이 잘 살자고. 괜찮아지진 않겠지만 그 마음 그대로 안고 살자고. 대신 아이 없이 우리 둘만 있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며 살아보자고.


나에게 늘 살갑게 대해 주시고 명절날도 공항까지 여러 번 태워다 주셔서 내가 많이 고마워하고 애정 하는 작은 아주버니 결혼식인데 육지에 가기가 싫었다. 작은 아주버니 결혼은 정말이지 너무 큰 경사이고 당연하게 기쁜 일인데 임신한 큰동서를 마주하면 축하와 별개로 내 마음이 어려워져 표정관리가 안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서서였다. 그래도 가야 하니 마음을 다잡고 결혼도 임신도 즐거운 마음으로 축하해주기로 하고 간 자리였다.


차에 타서 큰동서에게 임신 축하한다고 인사하고 김밥을 먹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말씀하셨다.

큰동서에게는

"입덧도 안 하고 김밥도 잘 먹네. 기특하다 야"

하시고 나에게는

"OO아, 오해하지 말고 들어. 너네가 얘가 없어서 그래. 빽빽이가 울고 정신없이 급박한 상황이 안돼서 OO 쟤가 저렇게 느긋한 거야. 얘가 생기고 빨리빨리 뭘 해야 하고 그러면 저렇게 느긋할 수가 없어." 하셨다.

'엥? 갑자기? 뭐지? 아이 셋 있었던 아버님 성격을 남편이 닮은 거라고 어제 말씀하시지 않았나? 저 논리면 세상에 모든 아빠들은 다 빠릿빠릿해야 하는 거 아닌가? 둘만 잘 살면 된다고 하시더니 그냥 말 뿐이셨던 건가?'

정말 그 짧은 순간 동안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남편은 화가 난 듯 보였고 큰 아주버니와 큰동서는 조용했다. 남편이 입을 열면 분위기 안 좋아질 것 같았다. 내가 잽싸게 말했다.

"그냥 저희는 느긋하게 살게요. 하하."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그렇게 넘어갔다. 내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생채기를 남기고.


네 번째 시험관 성공 후 자궁외 임신인 걸 알게 돼서 왼쪽 나팔관 절제 수술을 했을 때도 오해할 말씀을 하셨다. 나와의 통화에서 고생했다 수고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냐는 말 대신 "괜찮다. 이해한다."라고 하셨다. 무슨 말씀이시지? 뭐가 괜찮은 거지? 난 뭘 이해받아야 하는 거지?

작은 아주버니가 요즘은 아이 없이 둘이 잘 사는 사람도 많다고 했는데 시어머니가 그래도 얘는 하나 있어야지 하셨다던 말씀도 하셨다. 무슨 그런 이야기를 수술받은 며느리한테 하시지 싶었다. 오히려 나와 직접 통화하지 않았던 작은 아주버니가 고마웠다.

남편은 그런 어머니를 속상해하면서도 표현이 서툴러서일 거라고 그런 의도가 아니셨을 거라고 한다. 나도 그런 의도가 아니길 바란다.


별다른 간섭 없이 우리를 편하게 해주시고 뭐 하나라도 챙겨주시고 싶어하시는 건 감사하지만 가끔 상처가 되는 말을 하실 때는 마음에 생채기가 훅훅 난다.


어제의 "오해하지 말고 들어."는 오해의 여지가 있는 말이 아니라 그냥 상처가 되는 말이었다.


잊어버리고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잘 보내고 집으로 왔다. 시어머니는 먼 곳에 사는 우리를 생각해 이것저것 들려 보내고 싶어 하셨다. 솔직히 그런 마음보다 배려있는 말, 다른 이들 앞에서 인정하는 말 한마디가 더 고마울 것 같다.



난 나를 향한 타인의 말이나 평판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다. 물론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이라 많은 사람이 날 좋아해 주고 잘한다고 해주면 좋다. 난 더 나은 사람인데 더 잘하는 사람인데 그만큼의 애정을 받지 못하면 인정받기 위해 어느 정도의 노력을 하지만 나라는 사람 자체를 싫어하면 나도 싫다. 굳이 날 좋아하지 않는 사람까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까지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다. 그게 내가 나를 사랑하고 나를 보호하는 방법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이면 그걸로 족하다.


하지만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 내가 노력했지만 이루지 못하는 것, 나도 아픔으로 남아있는 부분을 내 탓으로 돌리는 듯한 말과 행동을 듣고 보는 건 상처다.

그런 상처를 흘려보내는 법을 나는 아직 잘 몰라서 혼자 있던  또 그 말들이 내 마음을 찔러댔다. 남이면 그냥 쌍욕하고 날 몰라서 그러는구나 무시해버리면 되지만 시어머니는 사랑하는 남편의 어머니다. 싫어하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는데, 나에게 말로 상처 주지 않으셨으면 좋겠는데 하는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 마음이 아직 남아있다. 그래서 상처받은 말들이 가시처럼 걸리고 어떻게 하면 흉터가 남지 않게 잘 빼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


하지만 앞으로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나는 속상함 대신 관계를 조용히 정리하게 될 것 같다. 척을 두지는 않겠지만 그냥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진심을 건네지 않을 것 같다. 나만이 내 마음을 지킬 수 있으니까.


말이나 행동은 그 사람의 평소 생각을 반영한다. 반복이 된다면 그건 단순한 실수나 표현의 서툶이 아니다. 그냥 그 사람의 마음인 거다.


'오해하지 말고 들으라'는 말 치고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는 말은 없고, '다 너 생각해서 하는 것'이라는 말들은 그 '너'가 고맙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상처를 흘려보내는 법은 글을 쓰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마음을 정리하는 것인 것 같아 아침부터 휴대폰을 들고 한참이나 끄적여본다.


만개하고 있는 미니 국화 /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자연이 치유해준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백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