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쓸 만한 조과장 Jun 05. 2023

퍼져도 되지만 오래가지는 말자

6월의 짧은 연휴를 맞이하여 홀로 당진으로 드라이브를 떠났다.


당진 신평면에 작은 항구에서 홀로 길을 거닐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해 봤다. 뭐 사람도 없는 곳에 굳이 거기까지 가서 할 필요가 있냐 싶겠지만, 익숙한 곳보다는 익숙하지 않은 곳이, 사람이 붐비는 곳보다는 한적한 곳이 더 생각을 정리하기 좋다고 생각했다.


 일상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일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큰 것은 내 힘든 시간을 함께한 연인과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한 것이고, 다른 것들은 강의나 부업, 이직 준비들이 계획대로 잘 안 되는 문제들이다. 막상 상황이 닥치니, 책을 읽고 자기 계발을 하는 것도 도저히 의욕적으로 해쳐갈 힘이 안 났다.


그래서 이렇게 혼자 고민하는 건 아닌 거 같아 하나 둘 비슷한 사람인들은 만나 얘기를 나눴다. 주변인들의 조언은 크게 두부류로 나뉘었다.


1. 퍼져도 괜찮다. 네가 괜찮아질 때까지 퍼져있어라

2. 퍼져있지 마라. 더 사람들 만나고 그러면서 지내라


첫 번째 조언을 받아들여봤다. 집에서 혼자 유튜브도 내내 보고, 배달 안 좋아하는데 배달도 계속 시켜 먹어보고, 쉬는 날에 계획 없이 퍼질러 자고, 누워서 핸드폰 게임만 주야장천 해봤다. '힘드니까 이 정도는 괜찮아'. '이렇게 하다 보니 회복이 될 거야. '이렇게 지낼만해' 등 스스로 행동을 합리화하며 보내기는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행복하지가 않았다. 아무리 몸이 편하고 좋은걸 하도 정말로 행복하지가 않았다. 게으름과 나태함 그 이상도 아닌 상황에서는 내가 그동안 살아오고 지내온 삶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마하트마 간디가 한 얘기 중에 이런 말이 있다.

게으름은 즐겁지만 괴로운 상태다. 우리는 행복지기 위해 무엇인가 하고 있어야 한다

나는 이 말이 무척이나 공감이 됐다.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선택들을 골라서 했기 때문이다. 힘든데 뭔가를 억지로 당장 시작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그 친구들의 조언을 그리 오래 품고 가지는 않기로 했다.


2번 조언을 원치는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계속 마주하게 됐다. 그저께는 회사 동기들과 1박으로 놀러 가게 되었다. 가까운 펜션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못다 한 얘기들을 나누고 게임을 하고 다음날에 해장을 하고 카페를 가고 나름 최근 들어 가장 즐거운 시간을 보낸 거 같다.


하지만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에서도 나에게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마냥 불편함이 찾아왔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재미를 느끼기에는 나는 온전히 마음의 회복이 안된 것이다. 원래는 주변인들 말에도 공감을 잘해주고 분위기에 잘 맞춰갔지만, 함께 있는 시간이 길수록 스스로가 불편해졌다.


"바쁘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문제는 무엇 때문에 바쁜가 이다"

사람들을 만나고 어울리며 지내는 것은 시간이 빨리 가지만, 문제를 수면아래에 놔두고 지내는 것과 같다. 수면아래에 있는 문제를 끄집어내고 풀어야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  혼자 감정을 느끼고, 지금 서있는 위치, 당면한 문제, 얻고 싶은 것 등을 글로 다 표현하지는 못해도 스스로 곰곰이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홀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한 문장이

"퍼져도 되지만 오래가지는 말자"


이다. 돌아보니 행복했지만 번아웃이 올만큼 심적으로 바쁘게 달려온 나날들이 많았다. 스스로 내 상태를 만족하지 못했고, 남과 비교하지 말라고 후배들에게는 얘기했지만 스스로는 절대 그러지 못했다. 누군가와 지켜야 할 약속, 조직, 가족, 연인 간의 지켜야 할 책임과 의무들이 항상 내게는 있었다.


그것을 당연히 감당하고 헤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을 좀 더 길게 봤을 때 나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는지, 감당하기 위해 마음이 준비되었는지 미쳐 많이 생각해보지는 못했던 거 같다. 그런 것이 어느새 나를 많이 짓누르고 있었나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그런 것 또한 내 성격의 단점이나 고칠 점이 아닌지도 생각해 봤다. 그래서 조금은 내려놓고 지내기로 했다. 대신 너무 처지지 않게 내 맘이 이끌려가는 거 중심으로 하나둘 풀어가 보기로 했다. 내 위주의 모임도 만들어보고, 자존감도 회복해 보고, 그러다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자연스레 만나자고 말이다.


최근 4년을 돌아보니, 삶이라는 게 약간 주식이나 코인같이 그래프라는 게 존재하는 거 같다.  나를 예를 들면.


2019년 고난의 시기, 잘 풀릴 거 같은 인생이 계획대로 안된다.

2020년 극복의 시기, 그래도 방법을 찾고 하나둘씩 풀어간다

2021년 성장의 시기, 고난의 시기보다 더 나은 나를 마주한다.

2022년 휴식의 시기, 그동안 해왔던 일들의 절정을 찍고 잠시 쉬어간다


이런 거다.


그러게 다시 2023년이 왔다. 스스로 지금이 고난의 시기고 앞으로 극복과 성장의 시기가 있다고 말하려면, 이후에 일들은 내 노력의 시간과 삶의 방향에 달려있다. 운도 계획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좀 더 나은 나를 마주하기 위해, 주변에 휩쓸리지 않고 묵묵하게 걸어가기를 조심스레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돌이켜보니 행복해지고 싶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