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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 만한 조과장 May 09. 2020

저는 공공기관 안전담당자입니다

업무담당자가 코로나 19를 겪고 느낀 점

조대리: 본부장님 ㅇㅇ원 생활 속 거리두기 대응지침 보고 드리겠습니다


본부장님: 그래그래, 이번에 만든 건 9판인가?


조대리: 아니요 리프레시하는 차원에서 [코로나 19 긴급 대응지침 9판]이 아니라 이제 [생활 속 거리두기 대응지침]으로 새로 시행하려고 합니다.


본부장님: 그래요 이제 코로나도 다 끝나가네, 결제 올리세요


2020년 2월. 코로나 바이러스가 국내에 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기관에서 안전담당을 맡고 있다는 이유로 코로나 대응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때는 알 수 없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이렇게  수십만의 사망자를 초래하는 무서운 바이러스인지, 내 업무가 장시간 싸우게 될 고된 업무인지는 말이다


코로나 대응 업무는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업무였다. 코로나 대응을 위해 기관차원에서도 자체 대응지침을 만들어야 했고, 나는 실무자로서 정부 지침이 나오거나 코로나 상황이 급변할 때마다 필요한 대응지침을 만들었다. 웃으게 소리로 '조대리 한 5판까지 만들어보자' 했던 것이 실제로는 8판까지 만들게 되었다.


코로나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정부 대응지침에 따라 새롭게 [생활 속 거리두기 대응지침]을 만들었다. 사실 만들었다는 것도 거창한 표현이고, 정부에서 내려온 대응지침을 기관 사정에 맞게 편집했다고 보면 될 거 같다. 문서에 9판이라고 붙이지 않았다는 건 더 이상의 지침을 만들지 않으리라는 의지도 조금 담겨있었다


지난 3개월은 매일매일새로웠던 거 같다. 재택근무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전  기관의 재택근무 방안을 마련해야 했고, 공적 마스크가 배포되기 전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불이 나게 찾아다녔다. 웃지 못할 사연도 있었다 체온계가  구하기 힘들었을 때는 전국에 있는 전자 마트에 전화를 돌려도 찾을 수가 없었다. 포기하는 찰나 그래도 지인들을 통해 겨우 3개를 구했는데, 배송지가 각각 미국, 서울, 경남 거창이었다. 체온계 3 총사를 내 책상에 모아 놨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공공기관의 업무들은 대부분 루틴 한 업무들이 많다. 정해진 예산과 프로세스 그리고 보통 전 담당자의 데이터들이 그룹웨어 축적되어 있다. 하지만 코로나처럼 전례 없는 재난상황은 내가 공공기관에서 통틀어 진행했던 업무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잊지 못할 코로나 대응 업무를 수행하며 크게 3가지 느낀 점이 있다


1. 일에 정답은 없다


첫 번째는 일에 정답은 없다는 점이다. 2월쯤 몇몇 IT기업과 대기업들이 재택근무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에 팀장님도 우리 기관도 재택근무를 해야 되지 않겠냐며 재택근무 방안을 고민해보라고 했다. 당시에는 정부 가이드라인도 내려온 게 없고, 공공기관 중에도 선제적으로 재택을 하는 곳이 없었기에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팀장님 지시에 머리를 쥐어 싸매자 '조대리 이런 일에는 정답은 없어 직원들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직접 방안을 만들어봐'라고 하셨다. 접근방식을 바꾸자 조금씩 실타래가 풀렸다. 우선 재택근무 대상을 정하고, 진행방식, 신청방법, 업무 지속 유지 방안 등 발생하는 시나리오들을 하나둘씩 머릿속에 그려나갔다


만들었던 초안을 가지고 팀장님과 논의하니 그럴싸한 재택근무 지침이 만들어졌다. 조금 엉성한 부분도 있었지만, 덕분에 타 공공기관에 비해서는 앞당겨 재택근무를 시행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메르스 사태 때 대응방안을 찾고 타기관 지침을 구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했더라면 신속한 대응지침을 만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업무에 있어 그동안 해오던 방식과 프로세스가 있다면 참고하는 게 안전한 접근법이다. 하지만 안전한 방법을 따르는 것이 상황에 따라 정답이 아닐 수 있다. 필요에 따라 새롭게 접근해야 될 때도 있고, 이전에 방식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그때는 정답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은 현명한 업무처리 방법은 아니라고 느꼈다.


2.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두 번째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반발짝 앞선 재택근무로 자녀 돌봄이 필요한 직원들과 임산부, 고위험군 등은 즉각 재택근무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외부 접촉 최소화를 위해 국내외 출장은 금지되었으며 내부에서도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체온 점검과 위생상태를 체크했다.


이러한 대응 조치에 대부분 직원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었다. 하지만 일부 직원들은 강력한 대응 조치에 사업팀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거라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데 무작정 출장을 가지 말라고 하면 되나요', '일이 많은데 순환적으로 강제 재택근무를 하고, 경영지원팀에서 체크도 해야 합니까'등이었다. 


나와 팀장님은 이 방식이 직원들 안전을 위해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을 했다. 불만 있는 직원들의 요소를 고려했지만, 직원들 안전에 방점을 두기 위해서는 최선의 조치였다. 만약 다른 의견들을 반영했다면, 또 다른 직원들의 볼멘소리가 있었을 것이다. 정답이 없다는 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모두를 만족시키는 방법은 없다고 느꼈다. 당사자와 수혜자의 의견을 반영하고 논의하는 절차는 필요하지만, 최선의 결정을 하더라도 불만을 가질 사람은 알고리즘 디폴트 값처럼 반드시 존재한다. 그러니 불만을 가지는 사람 때문에 실망하지도 말고 너무 자책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3. 큰 일을 해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마지막은 큰 일을 해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는 점이다.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지자, 본부장님이 한동안 고생했다며 술을 사주셨다. 코로나 대응으로 매일 야근하며 보냈기에 그날 마시는 술은 참 달았다. 칭찬도 받았고, 고생했다며 문자를 보내주는 직원들도 있었다. 그동안 고생이 조금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분도 그날 며칠로 끝이었다. 다음날 출근을 하면 다시 내 자리에는 처리하지 못한 업무들이 쌓여있었다. 모두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바빴고, 회사는 나 없이도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미생에서 사기를 저질렀던 박 과장(김희원)이 잠깐 생각이 나기도 하고, 장그레 모습과 내가 빙의되기도 하였다


어찌 보면 일에 방향을 제시해주는 건 팀장님이었고, 업무에 책임은 본부장님을 비롯한 여러 직원들이 함께 지고 있었다. 내가 큰 일을 해냈다고 말하기도 부끄럽다. 하지만 어려운 일을 잘 처내면 여러 사람들의 인정과 보상이 따를 거라는 생각이 있었던 거 같다. 그런 게 없다는 걸 알았을 때 다른 업무가 손에 잡히지를 않았다.


그런 생각은 힘든 회사생활에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지만, 보상받고자 하는 욕심이 목표가 되면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내 노고를 언젠가는 회사가 알아주겠지는 착각이다. 그리고 직원들도 그런 이유로 존재하지 않는다. 본연 업무는 충실히 하되, 회사생활이란 긴 마라톤을 끌고 갈 체력은 항상 구비해야 된다고 느꼈다.  


회사 업무를 통해 느낀 점들을 돌아보니 인생에 중요한 결정들도 비슷한 거 같다고 느꼈다. 내 결정에 정답은 없을 것이며 내 결정에 실망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원하는 목표에 도달했다고 해서 생각했던 보상이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회사와 나를 분리하여 지내려고 노력하지만, 가끔 회사일을 통해서 살아가는 자세나 방법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코로나가 한창 바빴을 때 매일 12시가 넘어 집에 들어갔다. 초과수당도 못 받고 일하는 건 질색하였지만, 코로나 대응 때는 어쩔 수 없이 야근하는 일이 잦았다. 어머니는 내가 과로로 쓰러지지는 않을까 늦은 시간까지 나를 기다리곤 했다. 몸도 피로하고 이렇게 일하는 게 뭔가 싶을 때 어머니 얼굴을 보면 그런 티를 낼 수 없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조금 일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다 문뜩 미생에서 장그레가 어머니를 생각하며 독백하는 대사가 떠올랐다. '잊지 말자 나는 어머니의 자부심이다. 모자라고 부족한 자식이 아니다'  부모님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일하는 건 아니지만, 업무 후 부모님을 생각하면 뭉클한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회사일에 의미를 좀 더 부여하자면 나의 성장과 더불어 부모님의 자부심이 아닌가 싶다. 일이 조금 지칠 때 저 대사를 읇조리며 3개월 간 코로나 업무의 느낀 점을 마친다


2020.5.11

연휴기간 동안 발생한 이태원 코로나 확산으로 인하여 일일 확진자 수가 또 증가하고 있습니다. 제 업무도 아직 끝나지 않은 거 같네요.. 더 이상의 사망자 없이 코로나가 하루빨리 한국에서 떠나기를 간곡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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