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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 만한 조과장 Jan 01. 2022

잠재의식 속 내면의 아이와 만나며 배우는 것

지난 목요일 상담센터에서 마지막 상담을 받았다. 이전 두 번의 상담을 받으며 어느 정도 맘의 짐을 내려놓은 듯한 홀가분한 기분을 들었다. 사실 상담받기 이전에는 애써오며 살고 있었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힘들어하는 마음을 위로하기보다는 더 잘해야 한다는 욕구가 더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올해는 더 나를 무기력감에 빠져들게 했던 거 같다. 


그래도 2번의 상담을 받으며, 이런 감정들에 대해 고백하고 많이 토해내게 되었다. 그래서 상담 이후로는 '나 잘하고 있구나' 그리고 '많이 애썼구나'라는 생각들이 불편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상담이 만족스러워서 인지 2회 차 상담만 받아도 올해 상담으로 얻은 수 있는 건 다 얻은 느낌이 들었다. 3회 차 상담을 받으러 가는 길에 오늘 상담까지 꼭 받아야 하나라는 고민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3회 차 상담을 받으며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3회 차 상담은 2회 동안 상담을 받으며 변화된 내 모습에 대해 얘기를 하며 진행되었다. 우선 내가 몰랐던 감정을 직면했을 때 마음이 홀가분해졌다는 것과, 부모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내가 지키고 싶은 경계를 만들었을 때 부모님과의 사이가 더 편해졌다는 얘기를 했다. 상담사는 이러한 변화에 대해 칭찬을 해주시면서, 계속 글을 쓰며 내면을 들여다보고 이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표출하는 것도 재능이라고 전해주었다.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갈 때쯤 새롭게 주제를 바꿔 내 어린 시절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상담사: ㅇㅇ씨의 어린 시절 얘기를 들어보면 아버지의 병원생활, 어려웠던 집안 환경들이 어린 ㅇㅇ씨에게는 되게 힘들었을 거 같은데, 어린 시절 기억나는 힘든 순간들이 있을까요?


2회 상담을 진행하면서 나름 과거의 기억들과 그때의 감정들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회사생활, 가족과의 추억, 학창 시절 친구들과의 관계, 연애, 어릴 때 꿈들에 대해서는 막힘없이 말들이 나왔다. 하지만 문뜩 저 질문에 대해서는 쉽게 답이 나오지가 않았다. 그것은 말할 수가 없어서가 아닌 기억이 희미해져서 표현하기가 어려운 느낌이었다. 마치 바로 꺼낼 수 있는 기억이 아닌 어딘가에 묻혀있는 기억을 찾아내는 거 같았다.


잠시 생각을 한 후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방 안에 홀로 쪼그려 앉아 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때는 아버지 병원에 계시고 어머니는 병간호를 하여 할머니가 나와 동생을 챙겨주고 있을 때였다. 거실에서는 어린 동생이 할머니랑 다투다 울었고, 할머니는 한숨을 쉬며 신세 한탄 섞인 말들을 했다. 나는 홀로 책상에 앉아 영어단어를 외우고 있었고, 주변 사물은 기억이 나지 않아 깜깜하게 이미지화되었다.


다만 그때 내 감정에 대해서는 잘 설명이 되지 않았다. 단지 무언가를 해야 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이 있었을 거 같다고 말했다. 당시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시고 집안 상황도 안 좋아졌기에 어리지만 마음 한편이 무거웠던 기억이 든다. 이전에는 집에 친구들을 초대하여 레슬링도 하는 천진난만한 아이였지만, 집안 상황이 안 좋아지고 나서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지 않고 홀로 집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상담사 분은 내 이야기에 공감을 해주며, 본인도 어린 나이였지만 홀로 있을 동생에게 오빠로서의 역할, 부모님에게 걱정 안 끼치는 아들로서 역할을 하고 싶어 그런 행동을 보였을 거라 전해주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교에 입학하고 대학교에 진학했던 순간들을 떠올려 봤다. 그러면서 힘들어서 잊고 싶었던 기억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다 문뜩 대학교 1학년 때 잠깐 일했던 술집 알바가 떠올랐다.


당시에는 학교에서 매칭 해주는 근로장학생 제도가 없었기에, 알바몬을 통해 알바를 구해야 했다. 과외도 잠시 했었지만 학업을 하며 스케줄을 맞추기 어려워 알바를 변경해야 했다. 동네 술집은 월급이 아닌 주급으로 정산을 해주었고, 시간도 어느 정도 유동적으로 할 수 있어 학교를 다니며 용돈 벌이 하기에 좋았다. 다만 동네 술집이다 보니 술 취한 어르신분들이 꼬장을 부리기도 했고 상대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하루는 손님 중 한 아저씨가 내게 담배 2갑을 사 오라고 했다. 당시 미성년자로 담배를 살 수가 없었지만. 술에 취한 손님 부탁을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사장님에게 부탁할 수도 없기에 어쩔 수 없이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에 계신 아주머니는 날 딱하게 생각하여 담배를 건네주었다. 손님은 사준 담배를 받고는 내 뒷주머니에 남은 잔돈을 꽂아주었다. 희미하긴 하지만 그 돈을 받고 집에 가 서글펐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한 기억까지 말하고 다시 초등학교 5학년의 내 모습이 떠올려봤다. 생각해보니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표면적으로 부모님의 부재로 인한 좌절과 분노도 있었으나, 그 내면에는 불안함과 무서움이 컸던 거 같다. 그렇게 생각하며 내 모습을 보니 한없이 작고 외로운 아이가 보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홀로 남겨지면 어떻게 하지 무서워하면서도 할 수 있는 건 방안에 들어가 공부하는 것뿐이었던 어린 모습이 보였다.


상담사는 내 이야기를 듣고는 그 어린아이가 실제로 행동할 수 있는 건 없었겠지만 많이 외롭고 불안했을 거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번듯한 어른으로 성장해 경제활동도 하고, 부모님께 걱정도 안 끼치는 내 모습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리고는 20년 전으로 돌아가 어린 시절 나에게 말을 걸 수 있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여러 고민 끝에  

"괜찮아질 거야"


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잘할 수 있어"라는 말보다 "괜찮아질 거야"는 말이 그 아이에게는 필요한 위로가 아녔을까 싶었다. 그런 말을 전하니 여러 생각에 눈물이 고이는 거 같았다.


상담사는 내게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여러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어 하는 욕구가 사실은 어린 시절 내가 가지지 못했던 좋은 어른의 모습으로부터 표출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홀로 방안에 있는 아이에게 따뜻함이 돼줄 수 있는 어른, 담배 심부름이 아닌 사회 속에서 싸울 수 있는 무기를 전해줄 어른이 필요해 잠재의식 속 내면의 자아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한 것이 아닐까라고 전해주었다. 


자연스럽게 커가며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했었다.  강단에 서서 강의하는 사람이 멋있어 보여서 그렇게 되고 싶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내 잠재의식 속 내면의 아이가 필요했던 모습이라 그렇게 되고 싶고 멋있어 보였던 것이 아녔을까. 그러한 욕구가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이 들자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잠재의식 속 내면의 아이를 만나며 3회 차 상담을 마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뇌는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 기억하게 되는 거 같다. 힘들고 아픈 기억들은 계속 간직하는 것보다 잊는 것이 살아가는데 편하기에 뇌는 까먹도록 진화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잊었다고 생각해서 그것이 내 삶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살아오면서 나는 잊었다고 생각하지만, 내 잠재의식 속 어딘가에서는 계속 영향을 주고 있을 수 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마지막 상담을 받으며 20년 전 아직도 방 안에서 홀로 외로워하고 있는 아이를 만나봤다. 상담사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잠재의식 속 어딘가에 내면의 아이가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가끔 어른스럽지 못한 충동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은, 잠재의식 속 내면의 아이가 튀어나오는 거라고 설명했다. 잠재의식 속 내면의 아이는 나이가 든다고 해서 같이 자리는 것이 아니라 계속 살피고 보살펴주어야 같이 성장한다고 한다.


나 또한 글을 쓰며 자주 돌아보려고 하지만  잠재의식 속 어린 내 모습까지는 잘 안 돌아봤다. 사실 잊고 지내 돌아보기도 어려웠다. 그 모습을 3회 차 상담을 마치면서 돌아보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 바쁘게 살고 지치게 되면 이 감정을 잊고 지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내 잠재의식 속에 있는 내면의 아이가 있다는 걸 알았으니 이제는 위로의 방식이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통해 각자마다 잘 살아가기 위해 선택한 성장의 방식이 있다. 각자마다 선택한 성장의 방식은 다르겠지만, 성장에는 고통이 수반되듯 어쩔 수 없이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어른이 되었지만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마음이 날 괴롭힌다면 잠재의식 속 내면의 아이를 한번 찾아가 보면 어떨까.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같이 어른이 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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