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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랜들리 May 29. 2023

꼰대와 선배에게 배운 인생 조언은

요란한 빈 수레가 되지 않길 바라며

제목부터 진부한 자기 개발서들이 있다. ‘주식, 당신도 할 수 있다’, ‘상위 1%의 공부법’과 같은 뻔한 제목의 책들. 그 내용도 노력해야 성공한다는 말처럼 크게 와닿지 않는 당연한 말뿐. ‘이것만 따른다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이것이 성공으로 가기 위한 단 하나의 길이다.’라고 명령하듯 조언한다.


재미있게도 이런 책의 특징은 ‘이대로 책을 덮어버려도 상관없다. 단,’하고 시작하는 협박식 문구가 책 속에 틈틈이 박혀 있다는 점. 그런 문구를 보면 나는 책을 덮어버릴 수밖에 없다. 내가 생각하는 꼰대는 그런 류의 책 같다.


어느 대학 꼰대의 충고

대학교 때, 그런 선배가 있었다. 모두가 기피하지만 정작 자신은 주류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선배. 한 때는 누군가가 선배의 언변과 재치 있는 단면만 보고 칭찬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선배다움에 흠뻑 취해 있는 사람이었다. 선배라는 무기로 후배들에게 술을 강요하고, 알 수 없는 조언과 충고로 술자리를 무겁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꼰대의 정석이었다.


내가 후배들과 술자리를 갖기로 한 어느 날이었다. 그는 ‘내 선배’라는 핑계로 후배들과의 술자리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날도 그는 어김없이 후배들에게 그의 선배다움을 휘둘렀다. 술자리가 끝난 건 막차도 끊기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다. 그가 2차 술자리를 모집했지만, 가겠다는 후배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빠지는 후배들을 차마 잡을 수 없던 선배는 나를 근처 술집에 데리고 갔다.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난 그는 ‘요즘 애들은 예의가 없다’느니, ‘네가 물러서 너를 선배로 보지 않는 것’이라느니, 내게 선배로서의 기강을 짚어주며 술잔을 들이켰다.


아마 그 선배는 지금도 모를 것이다. 후배들은 이미 2차 술자리 장소를 정해 카톡 방에 공지를 띄우곤, 그 방에서 불이 나도록 그 선배를 욕하고 있었다는 걸.


부족한 것이 많은 나는 훌륭한 선배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충고나 조언이랍시고 눈치 없이 떠드는 선배는 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당시 그 선배가 나에게 열변을 토하며 말해준 조언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선배를 통해 사회생활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배웠다.


빈 수레가 요란하지 말 것. 그 수레가 비었다는 사실을 누군가 알아채는 순간, 나는 끝없이 추해질 테니.


어느 회사 선배의 조언

조언이 다 부질없다는 말은 아니다. 조언과 충고는 참고가 될 뿐, 피와 살이 되는 것들은 직접 부딪히며 터득하기도, 누군가를 보며 배우기도 한다.


자신의 업무 분야에서만큼은 자신 있는 어떤 회사 선배가 있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선배는 자신의 생각과 주장에 거침이 없다. 동시에 상대의 의견을 주의 깊게 들어주며 공감하는 넓은 마음을 지녔는데, 그런 선배를 볼 때면 아이러니하단 생각이 든다. 말하기를 너무 좋아하면 대부분 경청에 약할 수밖에 없으니.


선배와 오전 미팅을 들어간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선배는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내세웠지만 타 부서의 직원이 선배의 의견을 지적하고 반론하였다. 자신의 분야에선 누구보다 빠삭한 선배에겐 기분이 나쁠 법도 한 말이었다. 잠깐의 정적이 있었다.


“아, 제가 잘못 생각했네요. 좋은 방법이에요. 그렇게 합시다.”


선배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고 그 자리에서 인정하였다. 너무나도 산뜻하고 쉽게. 그리고는 되려 상대의 의견을 칭찬하고는 경청하는 것이었다. 내 주장을 반박하는 말에는 항상 반론하기 바빴던 나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이 분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타 부서 직원의 말은 당연히 틀렸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바로 편협한 꼰대였던 것이다.


어디든 내 말에 반박하거나 싫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넘어서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나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자기 객관화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객관화는 내 부족함을 인정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니 앞서고 싶다면 언제나 겸손할 것. 그리고 인정할 것. 선배는 아무런 말없이 내게 충고해 주었다.


어른이 되면 눈은 어두워지겠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편협한 삶을 살진 않겠다. 약해진 청력으로 잘 듣진 못하겠지만 항상 귀를 열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따듯한 사람이 되겠다. - 박광수의 참 잘했어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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