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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랜들리 May 27. 2023

온통 금빛모래였던 사막에서

도시 2_이집트, 바하레이야 사막에서

파울로 코엘료의 책 연금술사를 읽다 보면 이집트의 바하레이야 사막이 가고 싶어 진다. 예전에는 사막을 머리카락을 헤집어놓는 모래 바람과 지독한 더위만이 있는. 별 볼 일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메마른 바람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하는 듯하다.


내가 갔던 바하레이야 사막에는 흑사막, 백사막 그리고 크리스털 사막이 있었다. 흑사막은 뾰족뾰족 신기하게 생긴 검은 철광석들이 깔려 검은 언덕처럼 보이는 곳이다. 소문으로는 관광객들이 하나둘 주워가다 보니 전과 같은 ‘흑'사막의 느낌이 많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길. 한인들의 집 장식장 한편에서 이 철광석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니.


흑사막에서 조금 벗어나면 완전히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이곳은 백사막. 새하얀 모래와 기이한 버섯바위들이 듬성듬성 세워져 있는 이곳은 어느 SF영화에서 본 화성 같다. 물 한 방울조차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이곳은 몇 만 년 전 바다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의 바위는 물에 깎여 버섯모양의 기이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고 한다.


엄마는 그런 이야기를 해줄 때마다 벅찬 듯한 목소리로 '정말 멋지고 신기하지 않니'라고 물어봤다. 과연.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서사라고 생각했다. 멋진 풍경에 걸맞은 완벽한 스토리. 관광객들이 끊기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관광객들은 자신의 키보다 큰 새하얀 바위 사이사이로 다니며, 마음에 드는 바위를 골라 사진을 찍곤 했다.


바하레이야 사막의 숨겨진 마지막 장소는 크리스털 산. 정말 그 이름에 걸맞게 산 전체가 크리스털로 반짝인다. 상아색의 가공되지 않은 크리스털은 뿌연 듯 반짝이는 오묘한 빛깔을 보인다. 연금술사의 주인공 산티아고가 결정적인 판별을 위해 지니고 다니던 두 개의 돌, 우림과 둠밈 중 하나가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실제로 가공되지 않은 크리스털은 가치가 없기 때문에 한몫을 챙겨보겠다는 사람은 없다. 관광객들이 기념으로 작은 원석 덩어리를 한두 개 챙겨갈 뿐이다. 그럼에도 비싼 보석이라는 인식 때문인지, 어릴 적 남자아이들이 자기 얼굴만 한 원석 덩어리를 낑낑 들고 버스에 타곤 했다.


이름 없는 사막언덕에서

관광객들이 찾는 흑사막, 백사막, 크리스털 산 사이에는 고운 모래와 캄신(모래바람)이 만들어낸 사막언덕들이 있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사막언덕이지만 나는 이 이름 없는 사막언덕을 꽤 좋아한다. 차 밖을 나오면 뜨거운 바람이 휭 하고 불고, 땀에 절여진 목 뒤편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신발을 벗으라고 말하진 않지만 모두가 신발을 벗는다. 바람이 모래언덕에 빚은 물결모양과 모래 곡선을 보면 누구든 올라가지 않을 수 없다. 맨발로 따듯한 모래를 밟고 성큼성큼 사막 언덕을 올라간다. 올라갈수록 발은 푹푹 꺼지고 지나간 자리에는 오목한 발자국이 남는다.


모든 것이 모래인 이곳은 다른 세상의 장소처럼 느껴진다. 멀리 보이는 지평선마저 금빛 모래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 대화도 어렵고 날아드는 모래에 눈을 뜨기도 버겁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고요하게 느껴진다. 누군가가 '이 곳 사람들은 누구보다 마음이 넓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이유를 사막에서 알 수 있었다. 넓은 곳에서는 마음도 넓어지는 듯하다.


뜨끈한 모래에 누워있으면 벨벳 같은 쿠션감과 후끈한 바람에 안긴 듯한 느낌이 든다. 어릴 때는 이곳에서 데굴데굴 구르기 놀이도 했었다. 아빠는 내가 어릴 적 위험한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무서운 사막 아저씨들이 잡아가서 얼굴만 내놓은 채 모래에 묻는다’라고 겁을 준 적이 있다.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집으로 돌아오면 고운 모래가 신발에서 우수수 떨어지고 반짝거리는 금색 모래 잔재가 남는다. 열심히 털어내도 일주일간은 신발을 신을 때마다 까끌거리는 끈적한 모래 입자가 느껴지는데 사막의 여운이 남아 왠지 그 느낌이 싫지 않다.


우리들 중 누군가가 아주 대단한 용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러한 사막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여행은 시시각각 엄청난 고난의 연속일 거예요 –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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