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차원적인 차별에 대해
'오, 재외국민이야?'
나는 한국어가 유창하다고 생각했다. 외국에서 태어난 재외국민 치고. 하지만 역시 한국에서 20년 이상을 산 현지인들을 속일 수는 없었다. 더듬거리는 습관과 이상한 단어 선택에 대학 동기들은 나를 신기하게 보곤 했다. 재외국민이야.라는 말을 듣자마자 아, 그래서.라고 수긍을 했다.
물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너무 치졸한 사람이라 그런 것이 속상했다. 내성적인 성격에 말주변이 없다고 생각하기보다, 외국에서 오래 생활을 해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기이한 시선을 받을 때도 있었다. 분명 친절하지만, 한국 관광을 온 외국인을 대하는 가이드와 같은 친절함으로 대하는 사람들. 재외국민에게 친절을 베푸는 자기 모습에 취한 듯, 한국의 문화와 단어를 하나하나 설명해 주는 사람들.
사실 그런 힘겨운 대화는 외국에도 있었다. 남한에서 왔는지, 북한에서 왔는지를 물어보곤, 이 곳의 관광 명소들을 나열하던 택시 아저씨와의 대화와 비슷했다. (적당히 알려주고 적당히 숨기면 됐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못한 건, 내 실수나 잘못에 따라다니는 말이었다.
외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한국을 온 내게 대학교의 술 문화나 선배 문화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붙임성이 좋지도, 깍듯하지도 않았던 나는 한 두 살 차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동기들에게 말을 놓아 버리기도, 높여 부르기도 했다. 그래서 몇몇 선배나 동기에게 미움을 받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항상 딸려 나오는 말은 내 외국 생활과 한국 생활을 비교하는 말들이었다.
'니가 외국 생활을 오래 해서 잘 모르나 본데, '
'한국에서는 그렇게 하면 안 돼.'
내 실수를 바로잡아 주기 위하는 안타까운 마음일 수도, 혹은 그저 연설을 위한 발판 같은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크게 다른 말이 아니었다. 결국 모든 실수와 잘못의 근원지는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들렸다.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를 어리숙하고 미숙하게 만들어 차별하는 말들이 싫었다.
내가 ‘외국’에서 살다 와 실수를 한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실수를 한 것일 수도 있는데. 그것은 내 유일한 특징으로 자리 잡아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외국에서의 차별은 눈을 찢어 보이는 등의 일차원적인 차별이었다면, 이곳의 차별은 뭐랄까. 조금 더 고차원적이었다.
나는 ‘뭘 잘 모르는 한국 초보’였다. 외국인이라기에는 너무 한국인이었고, 한국인이라기엔 어딘가 어수룩했다. 내가 태어난 곳에서도 외국인 취급을 받았는데, 한국에서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이 억울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학교 앞 치킨 집에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펑펑 울었다.
재외국민.
외국 생활을 오래 한 내게 달린 그 타이틀은 ‘해외파’라는 인식이 담긴 괜찮은 타이틀인 줄 알았다. 그 말속에 ‘부모 잘 만나 고생 안 한 사람’,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는 뼈가 있는 줄 모르고.
이렇게 당할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소심한 반항을 하기 시작했다. 내 유일한 재외국민 타이틀을 역으로 이용했다. 불리한 상황에서는 ‘외국인 찬스’를 썼다. 듣기 싫은 말에는 이해하지 못한 척. ‘아, 내가 재외국민이라,’ 라며 넉살 좋게 핑곗거리로 쓰곤 했다. 자동차 뒤 초보운전 딱지처럼. 그렇게 외국인 딱지를 뗐다 붙였다 하며 한국 생활에 적응해 갔다.
시간이 흘러, 한국살이에 적응한 지금, 이제 ‘외국인 찬스’는 퇴색되어 버린 지 오래다. 나는 그 카드를 제대로 썼을까. 아니 쓰지 않는 게 좋았을까. 내가 초보 딱지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던 시절, 한국에 대한 내 감상은 복잡 미묘하다. 차선을 양보해 주거나 천천히 차를 몰아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경적을 울리며 텃세를 부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시절, 이렇게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해 본다.
한국 초보예요. 텃세는 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