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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랜들리 Jun 13. 2023

오랜 로망에 대해 말하자면

선베드에 누워 바다 보기

만화 영화의 주인공들은 행복할 때 항상 선글라스를 끼고 선베드에 누워 있다. 파라솔이 꽂힌 무언가를 흡족한 표정으로 마시며. 그게 행복의 상징이라도 된다는 듯이.


그때부터 내 로망은 한결같이 ‘여름날, 선베드에 누워 바다를 보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도 이 로망은 변함이 없지만, 언제부터 단어를 하나둘씩 욱여넣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마약을 끊은 사람들은 죽는 순간까지 마약을 절제하며 산다. 그리고 그 절제의 고통은 죽어서야 비로소 끝난다고 한다.


나는 생각이 그렇다. 갖은 걱정과 생각으로 잠을 못 이루기도, 어떤 생각에 꽂혀 꼬리에 꼬리를 물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길을 잃어버린다.


예능 ‘아빠 어디 가’에서 성동일이 대답하지 않는 아들 준이를 혼냈다. 대답을 빨리하지 않는 것은 아빠의 말을 무시하는 예의 없는 행동이라며. 혼나던 준이는 겁먹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빠, 나는 생각하는 중이에요.


아, 나도 저렇게 얘기할걸. 저렇게 말해야 했는데. 감탄했다. 나도 바로 대답하지 못해서 혼나곤 했다. 잡생각이 많아 모든 것에 미묘한 브레이크가 걸렸다. 대답이 늦고, 메뉴 선정을 못 하고, 기다리던 신호등을 놓쳐 버렸다. 그리고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혼나던 준이처럼, 어릴 적 나처럼.


생각이 많아 에디슨처럼 전구를 발명하거나 J.K. 롤링같은 천재 소설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생각들이 폭주 기관차처럼 갈피를 못 잡고 머릿속을 이리저리 헤집는다. 그리고 결국 내가 혼자 지쳐버리고 만다. 생각들이 나를 갉아먹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다. 잠이 드는 순간까지 생각에 잠겨 헤어 나오지 못한다.


생각 없는 사람. 비난처럼 들리는 이 말은 내 간절한 로망이다. 멋진 풍경을 보며 온전히 풍경을 즐기는 사람. 눈만 감으면 잠이 온다는 사람. 행복을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느끼는 사람. 주저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간절하게.


여유롭게


‘20대에 안 하면 무조건 후회하는 것들’

‘30대가 되기 전에 꼭 해야 할 것들'


SNS 속 자극적인 썸네일을 차마 무시할 수 없다. 죽기 전에 꼭 봐야 영화도, 책들도 넘쳐나는 세상에 왜 이런 제목들로 20대의 속을 뒤집어 놓는 건지. 기분이 나빠져 애써 안 보려다가도 혹시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꼼꼼하게 체크한다.


돈도 모아야 하고, 틈틈이 연애와 운동도 안 할 수 없으며, 꾸준하게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20대. 그래서 ‘여유‘는 나에게 참 거리가 먼 로망이다.


취준생 시절, 친구가 내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

너는 원하는 회사를 들어가더라도, 누굴 만나도 크게 만족하지 않을 거 같아.


그 말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취업이 간절했던 나는 반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친구의 말에 반박할 수 없다.


출퇴근하는 것으로 만족하기에는 내가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 너무 많아서. 그리고 모두가 부러워하고 그리워하는 그 청춘의 시기가 지금이라면 나도 이 시기를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


어느 여름날, 아무 생각 없이, 여유롭게 선베드에 누워 바다를 볼 수 있을까


대학교 시절 가장 부족했던 물질적 여유, 직장인이 되어서야 느끼는 간절한 시간적 여유, 그리고 잡생각 없는 정서적인 여유까지. 모든 여유를 전부 획득하는 것이 나의 로망이다.


엄마가 챙겨준 도시락을 까먹을 때, 가장 맛있는 반찬을 마지막에 먹곤 했다. 내가 남겨둔 로망도 비슷하다. 마지막 순간을 상상하며 오래 묵혀두고 있다.


그런 날이 오면 나도 파라솔 막대를 꽂은 주스를 마시며 바다를 볼 예정인데, 기대하는 중이다.


내가 신이었다면 나는 청춘을 인생의 끝에 두었을 것이다 - 아나톨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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