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과 책 한 권만 있다면
술, 자취, 밤늦게 집 가기
어른이 돼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중 가장 좋은 것은 커피였다.
중학교 시절, 내가 간 첫 카페는 ‘Costa coffee’였다.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그곳에 발칵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을 땐, 커피콩 볶는 냄새와 끈적한 시럽 냄새가 진하게 났다. 어른들의 장소에 함부로 들어선 느낌이었다.
벽에 붙은 빼곡한 커피 메뉴는 당황스러웠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던 것이 어렴풋하게 기억이 난다. 손바닥만 한 큰 커피잔에 담긴 뜨거운 커피는 생각보다 맛이 없었고, 왠지 모를 죄책감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아마 라테였을 것이다.
이후 나는 프랜차이즈 카페부터 작은 개인 카페까지, 몇 년간 다양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용돈벌이부터 공부, 그리고 식사 해결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카페에서 보냈다. 이를 본 친구는 ‘카페에서 번 돈, 카페에 다 쓴다’라고 농담할 정도였다. 지금까지도 누군가 어디냐고 물어보면 매번 카페라고 말할 정도로 카페 홀릭이다. 노트북과 책 한 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었다.
테이블이 몇 개 없는 아담한 동네 카페부터 복작복작한 역세권 프랜차이즈 카페까지, 카페라면 다 좋아하지만, 사실 자주 가는 단골 카페는 몇 군데 없다. 카페에 대한 사랑이 크고 깊은 만큼, 자주 가는 단골 카페를 정하는 나만의 기준이 있다.
하나, 위치가 좋은 카페. 안경과 모자를 장착한 부스스한 몰골로 가도 될 만큼 적당한 거리의 카페여야 한다. 아무리 가까워도 역세권 카페는 피하는 편인데 역 주변의 카페는 멀끔한 손님들이 많아,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둘, 커피의 맛. 나는 소위 ‘신맛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카페를 발견하더라도 날카로운 신맛이 느껴지는 커피를 마시면 왠지 그 카페를 피하게 된다. ‘신맛 커피’를 좋아하는 내 친구는 입안을 청량하게 해주는 느낌이 좋다고 한다.
친구와 나는 가끔 이 주제로 열변을 토하는데, 서로 짧은 커피 지식으로 ‘내 커피가 더 맛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나는 친구를 ‘식초 커피를 좋아하는 사이코’라고 하고, 친구는 나를 ‘커피 맛을 모르는 커알못’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대화는 항상 ‘서로 존중하자’며 끝난다. 누구 하나 설득되지 않은 채로. 산미는 커피를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라지만 씁쓸한 커피에 익숙한 나로서 ‘신맛 커피’는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맛이다.
셋, 이왕이면 조명이 밝지 않은 카페. 따뜻한 온도의 오렌지색 조명이 좋다. 형광등을 켠 듯 흰색으로 도배된 모델 하우스 느낌이 나는 카페들이 있다. 그것 또한 카페 나름의 매력이라고 생각하지만, 단골로 가기에는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안경과 모자를 장착한 부스스한 몰골’로는 도저히 갈 수 없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건 ‘공간’. 카공족 중 한 사람으로, 공간이 좁은 카페는 눈치가 보인다. 어떠한 눈치도 보지 않고 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쾌적한 공간의 카페라면 밝은 조명, 신맛 커피라도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넓은 카페는 대부분 나와 같은 카공족도, 벽마다 콘센트도 많은 편이라 좋다.
대학생 때부터 줄곧 자취하며 빈번하게 이사를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내 집 주변에는 ‘단골 카페 조건’을 충족하는 카페들이 항상 있었다. 그리고 이사를 하며 내 활동 반경과 함께 단골 카페가 바뀔 때면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요즘 그 손님 안 오네’라고 생각할 단골 카페 직원에게 인사를 못 한 것이 괜히 아쉽기도, 그리고 앞으로 자주 가게 될 카페를 미리 점찍으며 설레기도 한다.
지금도 나는 단골 카페에서 이 글을 적는 중이다.
(이곳의 마스코트 개, 릴리가 나를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