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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랜들리 Jun 18. 2023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저는 이상형이 없어서요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초조해진다. 딱히 이상형이 없는 나는 ‘재미있는 사람’ 혹은 ‘나와 잘 맞는 사람’과 같은 재미없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 이상형이 확고한 사람들이 있다.


무쌍이 좋더라, 노래를 잘했으면 좋겠어.


정말 구체적이고 또렷한 이상형이다. 나도 진지하게 내 이상형에 대한 고민을 해봤지만, 도무지 결론이 나질 않는다.


내 외향적인 친구, 바지락이 있다. 거침없는 바지락은 친화력도 대단했지만, 사람을 흠칫 놀라게 하는 남다른 재치가 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매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듯하다.


바지락이 우리 집을 놀러 올 때마다 가던 집 근처 단골 편의점이 있다. 편의점에 갈 때마다 바지락은 편의점 아주머니에게 이런저런 말을 툭툭 하곤 했다.


사장님, 이거 맛있어요? 이건 뭐예요?


아주머니도 그런 친구가 싫진 않은지, 웃는 얼굴로 조심조심 대답을 해주곤 했다. ‘수고하세요!’ 시원스럽게 편의점을 나서는 바지락을 따라 나도 조용히 편의점을 나오곤 했다.


몇 주간 바지락이 집에 오지 않자, 어느 날 편의점 아주머니는 내게 말을 걸었다.


그 작은 친구, 요즘 안 오네요?

아, 네. 바쁘대요.


그게 나와 편의점 아주머니의 첫 대화이자 마지막 대화였다. 바지락이 아니었으면 우린 아마 평생 서로 말을 걸지 않았을 것이다.


어딜 가든 그랬다. 이런 반짝거림이 남았다. 이런 동네 편의점에서조차 숨겨지지 않는 그런 반짝거림. 한 땐 내가 이런 반짝임을 좋아했지. 봉투를 들고 편의점 문을 딸랑 열고 나가며 생각했다.


어딜 가든 왁자지껄하게 눈길을 끄는 사람. 내가 쓰는 어쭙잖은 가면이 아닌, 있는 그대로 어디든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사람. 그런 빛나는 외향성을 선망했었다.


나의 이상형은 외향적인 사람이었다. 부끄러움이 많고 내향적인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만 눈이 갔다. 그래서인지 잠깐 만났던 사람들 또한 외향적인 사람이었다. 같이 있다 보면 나도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은 우쭐한 기분도 들었다.


어떤 책에서 그런 문장을 본 적이 있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는 인격이 붕괴된다는. 난데없이 채식주의자가 되는가 하면 이전과는 다른 스타일의 옷과 구두를 사들이기도, 갑자기 와인 마니아가 되기도 한다고.


외향성은 맞지 않는 옷이었다. 내 외향성은 어딘가 어색했다. 사람들과 박수치며 한바탕 웃어대도 입가 경련이 멈추지 않았고, 함께 있을수록 더 외로워졌다. 첫 단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연달아 다른 생각들이 고개를 들었다. 정말, 외향적인 게 이상형이 맞아?


외향적인 사람은 내 이상형이었던 적이 없다. 사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건 내 이상향이었다. 분명 맞지 않은 옷이란 걸 알았지만, 애써 눈을 가려버렸다. 이상향이 되기 위해, 이상형이라며 박박 우기곤 노력했다. 이상형의 틀에 맞춰 ‘멋짐’을 재단해 버려서, 나는 결국 다른 멋짐을 보지 못했다.


‘이상형 찾기’식 연애가 끝난 후에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옆에서 경청하는 진중함이 매력적인 사람도 있었고, 조용하지만 누구보다 따듯하게 웃어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각자의 색깔과 온도가 멋질 수 있다는 걸, 멈춰 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런 생각이 든 이후로는 딱히 이상형을 찾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결국 이상형은 아직까지 결론이 안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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