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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랜들리 Jul 03. 2023

나는 즐겜이 하고 싶은데

그게 어려워

‘아빠, 미네랄이 없잖아’

‘쟤가 놀고 있어, 일 시켜야지’


어릴 적,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하던 아빠의 뒤에서 열심히 게임을 관전했다. 하는 방법도 잘 모르면서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웬만한 드라마보다 열심히 아빠의 플레이를 봤다. 옆에 앉아 모니터를 가리키며 시어머니처럼 훈수를 두기도 했다.


스타크래프트는 우주를 배경으로 3 종족이(테란, 저그, 프로토스) 전쟁을 벌이는 전략게임이다. 세 종족 중 하나를 골라 자원을 모아 건물을 짓고, 군대를 만들어 적을 파괴하면 승리한다.



아빠는 생긴 것이 징그럽다는 이유로, 저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반면, 나는 저그를 좋아했다. 퉤퉤 하고 초록 침을 뱉으며 적에게 달려드는 그 악당 같은 자태가 마음에 들었다. 뭐랄까, 조금 더 본능적이었다.


(프로토스가 으윽-하는 멋진 용사 소리(?)와 함께 파란 불이 되어 죽는다면, 저그는 끼야아악-하는 소리와 함께 빨간 피를 흩뿌리며 끈적하게 죽는다.)


아빠는 게임을 잘했다. 적재적소에 미네랄을 사용하여 빠르게 몸집을 키우고, 군대를 만들어 정확하게 적진을 들쑤셨다. 반면 나는 쓸데없는 곳에 미네랄을 펑펑 쓰다 적에게 발각되어 잡아 먹히곤 했다.


그래서인지 아빠가 게임에 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가끔 아빠가 게임에 지는 날이면 내가 다 속상해서 주저앉아 투덜거리곤 했다.


‘그러게, 아까 쳐들어갔어야지!’


말도 안 되는 억울함을 토로하며. 아빠는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덤덤하게 말하곤 했다.


‘다시 하면 되지’.


그 말이 너무 태연하고 어이가 없어 헛웃음만 나왔다.


한 때는 롤(리그 오브 레전드)에 빠져 살았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피시방으로 달려가 몇 시간씩 게임을 하다 수업 시간에 졸곤 했다.


피시방의 기둥 하나를 세웠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돈과 시간을 썼지만 그만큼 잘하진 못했다. 그래서 팀의 과녁이 되어 욕을 한 바가지 먹고 낙오되기도 했다.


팀 협동 게임이라는 취지가 무색하게도 유저들은 하단의 작은 채팅창을 통해 남을 탓하기 바빴다. 처음 게임을 시작하는 신입 유저에게는 더욱 매몰찼다. 즐거운 게임을 위해 실력을 키우기보다, 욕을 먹지 않기 위해 실력을 키우는 꼴이었다.


‘다시 하면 되지’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군가는 화살을 맞아야 게임이 끝났다. 대학교 팀별 과제도 이보다 쉽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게임에 싫증을 느껴 그만두게 되었다.


판타지 속 게임 세상도 지극히 현실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손해를 보진 않을까 전전긍긍하기도, 귀찮은 일은 누군가에게 떠넘겨 버리기도, 반대로 내가 떠밀리기도 하며. 그럴 때면 이른바 현타가 오기도 한다. 내가 지금 왜 게임을 하고 있는 거지.


게임 속 내가 바라는 작은 판타지가 있다면, 적으로부터 서로의 등을 지켜주는 멋진 팀을 만나는 것. ‘다시 하면 되지’라고 말하던 아빠만큼만 즐기면서.


게임 속 세상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즐거웠으면 좋겠다. 현실을 피해 오는 사람들이 게임에서만큼은 숨을 쉴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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