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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탈 없이 무탈하면 그만

이수 04

by 프랜들리

조심조심.

아슬아슬했다. 양 페달을 힘차게 밟으면서도 속으로는 조심하라고 되뇌었다. 원체 이런 건 젬병이었다. 코어힘이라 해야 할지, 중심 잡기라 해야 할지.


호수 공원은 풀냄새가 진동했다. 갓 깎은 잔디. 매미 소리. 완연한 여름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광장 분수를 도는 동안 이수는 건너편 벤치에 앉아있었다.


두 바퀴를 다 돌 무렵, 어디선가 아이들이 자전거를 끌고 나타났다. 어쩌다 보니 무리에 섞여 광장 분수를 함께 빙빙 도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한 바퀴씩 돌 때마다 벤치에 앉은 이수가 보였다가 비껴갔다. 자전거도, 공원도, 어디선가 모여든 아이들도. 하나같이 생소해서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천천히 타!”

이제 막 자신감이 붙은 참이었다. 몇 바퀴 돌지도 않았는데 극성 엄마처럼 소리치는 게 어이가 없었다.


이수는 여태 자전거를 못 타는 성인은 너밖에 없다며 ‘어른의 자전거 타는 법’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세발자전거도 있을까?”

자전소 대여소에 걸린 바이크를 보고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서 그렇게 말했다.


“어른용은 없지”

이수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바퀴를 탈부착처럼 달아줄 수도 있지 “

내 말에 이수는 웃기만 했다. 결국 어른 자전거를 두대를 빌려 여길 온 것이다.


사전 연습을 마치고, 자전거 레일 쪽으로 갔다. 레일에는 스포티한 복장의 바이커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레일에 합류를 해도 될까 생각할 때쯤 이미 자전거에 탑승한 이수가 별말 없이 출발했다. 벌써? 그를 따라 허둥지둥 자전거를 타고 페달을 밟았다.


그가 종종 속도를 늦춰주긴 했지만 곧 격차는 벌어졌다. 어찌어찌 그를 따라잡아보려 했지만 그가 엄지 크기만큼 멀어지고 나서는 따라잡기를 포기했다.


햇살에 지열이 올라왔다. 목 뒤로 땀이 배어 가는 건 만져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몇 대의 자전거가 내 옆을 추월해 갔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레일 턱은 너무한 거 아닌가 싶었다. 속도 방지 턱을 건널 때마다 자전거가 통째로 덜컹거려 고역이었다.


그래. 애초에 운동 신경이 없는 게 문제다. 속도를 줄이거나 방향을 바꾼다든가 하는 것들. 그런 건 순발력이고, 운동 신경의 문제인데, 선천적으로 타고난 게 없다. 그렇다고 딱히 불편함을 느껴본 적은 없어서 그냥 그런대로 살뿐이다. 별 탈 없이 무탈하면 그만이다.


내 앞으로 걸어가는 노부부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방향을 틀거나 속도를 줄여야 하는데, 빠르게 닥쳐오고 있다는 공포감에 몸이 굳어버렸다. 결국 급하게 방향을 틀다 나무담장으로 고꾸라졌다.


담장에서 허우적거리던 내 팔을 누군가 쑥 하고 당겼다. 이수였다.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바지를 탈탈 털어주며 ‘넘어지며 배운다’느니 하는 몹시 아버지 같은 소릴 해댔다. 그가 내 앞에 있다는 안도감과 괜한 잔소리에 짜증이 교차했다. 강습은 그걸로 끝났다.


우리는 자전거를 반납하고, 공원을 걷기로 했다.

“아까 진짜 부딪힐 뻔했어”

“안 부딪혔잖아”

“자전거 너무 위험하지 않아?”

이수는 별 말이 없었다.


“이거, 국가에서 면허라도 발급해야 하는 거 아냐?”

‘너만 잘 타면 된다’고 하는 이수였다. 무릎이 따끔거렸는데 호들갑을 떨긴 싫어 조용히 그를 따라갔다.




공원에는 가족 단위로 잔디, 벤치 할 것 없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는 빨간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목청껏 지른 소리에 놀라기도 했다. 저 작은 몸 어디에서 에너지가 내뿜어지는 걸까 생각했다.


또 걷다 보니 정원사가 커다란 가위로 담장을 자르고 있었다. 바닥엔 잘려나간 가지와 풀이 뭉탱이 채로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작업을 더 가까이서 보려 했지만 이수가 손을 잡아끄는 바람에 순순히 그의 당김에 이끌렸다. 풀이 짓이겨진 냄새가 온 사방에 진동했다.


어릴 적 풀을 돌로 짓이기면 저런 냄새가 났다. 돌에 깡깡 나던 소리부터 청바지에 초록물이 배는 느낌까지 생생하다. 김치 놀이였던 것 같다. 그때 이수를 알았더라면, 같이 풀을 짓이기고 놀았을 텐데. 그때의 그도 지금처럼 자상했을까 싶지만은.


약간 비릿한 쇠냄새가 나는 것도 같다. 아까 난 상처도 이런 냄새가 났었는데. 스릉스릉하는 가위질 소리에 이상하게 그로테스크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 약간 살인 현장 같다”

그런 말을 한들 이수가 이해할리는 없었지만 그렇게 말해보았다. 대뜸 무슨 소리냐고 할 줄 았았는데 의외로 초연한 그였다. 이젠 그런 말을 해도 그러려니 하는 걸까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런 것 좀 그만 봐”

이수는 내가 공포 영화를 많이 봐서 그렇다 생각한다. 풀 냄새에 지친 나는 이수에게 더 가까이 붙었다.


"아, 붙지 말지"

그는 땀냄새가 난다며 싫어하지만, 나는 그 냄새가 좋았다.


이수가 겉옷을 벗으면 훅하고 나는 향이 있다. 살갗에서 나는 체향. 그는 그런 나를 ‘변태’라고 했다. 이수는 내가 그의 향수 냄새를 좋아하는 줄 알고 그 향수만 쓰는데, 사실 나는 그 향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언젠간 한번 말해야겠다, 싶었다.


우리는 계속 걸었다. 이수는 내 손을 쥐었다 놓았다 하는 장난을 치기도 했다. 간간히 ‘사진 찍어줄까’라든가 ‘조금 이따 뭐 먹을까’했지만, 나는 ‘아니’, ‘글쎄’라고 대답했다.


“오늘 왠지 아빠랑 데이트 온 기분이네”

그렇게 말해봤다. 덥고, 땀 흘린 이 상태로 사진을 찍겠다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너같이 말 안 듣는 딸 둔 적 없어”

이수는 그렇게 불평하곤 한 마디 덧붙였다.


“니가 내 딸이었음 매일 혼낼 거야. 그리고 군대 보낼 거야. 정신 좀 차리라고.”

영문도 모르고 군대를 가게 된 내가 상상이 가서 웃고 말았다. 벤치가 보여, 우리는 그곳에 앉아 물을 나눠마셨다.


“우리 저번에 갔던 냉모밀집 가자”

그렇게 말하며 그의 손을 꽉 쥐었다가 놓았다.


“나 지금 덥고 배고파. 거지된 기분”

"그래"

그도 내 손을 꽉 쥐었다가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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