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
누군가는 기분 나빠할 수 있지만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봤을 때 가장 즐거웠고 기억에 남는 순간은 적절한 궁상 한 스푼이 가미된 경우가 많았다.
무탈하고 나이스 하게만 흘러갔던 기억은 팍스 로마나 기간처럼 하나의 시절로만 기억될 뿐 좀처럼 하나의 장면으로 요약되기 어려웠다. 평안한 일상의 진폭 탓에 행복함을 감지하는 진동계조차 그 순간엔 휴면모드로 돌입했으리라
반대로 복잡한 상황이나 신경이 많이 쓰이는 경우엔
덩달아 마음 역시 요동치기 마련인데 이 경우엔 밀려드는 업무에 맞춰 진동을 감지하는 바늘은 부지런히 움직인다. 바늘은 쉬지 않고 각각의 장면들과 그에 따른 감정들까지도 세세하게 기록하고 또 느껴지게 한다.
특히나 궁상의 경우 평온한 현재를 기준으로 되돌아볼 땐 우디 앨런표 대책 없는 과거 낙관주의가 덧씌여진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따위 의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고 궁상 역시 트러플을 닮아 밸런스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더해져야 의미가 있고 풍미가 있다. 욕심이나 상황에 의해 과하게 추가된 경우엔 걷잡을 수 없다.
겨울날 추위에 떨며 서서 먹는 포장마차의 오뎅
‘이른 아침 수영 후에 먹는 초코우유’
무더운 여름에도 기어이 밖 벤치에 앉아 마시는 맥주 한 모금
어째 궁상이 더해지면 미묘하게 독보적인 맛이 난다.
더운 여름날 인쇄소 골목 안 인내심을 테스트하듯
부드럽다를 색상으로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것 같은 핑크빛의 두툼한 삼겹살, 한국인이라면 보자마자 침샘이 자극되는 김치의 익힘 정도
그리고 야외테이블에 켜진 부르스타는 궁상 한 스푼을 더한다.
이후 쾌적한 온도의 실내에서 동일한 메뉴를 먹었지만 어째 평온했던 탓인지 도통 기억에 남질 않는다.
*글과 잘 어울리는 Bruno major의 Nothing이란 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