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기 구겐하임: 아트 애딕트 2015
미술과 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 구겐하임.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그 건축물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가치의 예술 작품이다. 안타깝게도 미국에 가본 적이 없어 사진으로만 그 멋진 자태를 알고 있을 뿐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지 않았더라면 구겐하임 미술관이 페기 구겐하임이 만든 줄 알았을 거다. 페기 구겐하임에 의한 미술관은 베네치아에 있는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이라고 한다. 물론,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도 페기 구겐하임의 삼촌 솔로몬 구겐하임이 건축했고 그의 컬렉터로 유명한 미술관이지만 후에 페기 구겐하임의 현대 미술 컬렉션 기부로 인해 더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유명인의 어린 시절은 거의 대부분 평탄하기 어려운 것 같다. 유복한 미국 유대인 이민 가정에서 태어나 경제적 어려움은 없었을지 몰라도 부모의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자란 것 같지는 않다. 아버지는 그 유명한 타이타닉 호를 타고 내연녀와 함께 여행을 즐기다 타이타닉 호 침몰과 함께 사망했다. 아버지가 내연녀와 배 타고 여행 다니다 사망한 걸 보았을 때 페기 구겐하임이 어머니에게 사랑 듬뿍 받고 자라지 않았음은 대충이라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부모의 사랑에 대해서는 거리두기 한 대신 언니와 친밀한 관계였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나 유명인에게 행복한 시간은 허락되지 않나 보다. 이 언니도 후에 아이를 낳다 젊은 나이에 사망해 페기 구겐하임의 곁에서 떠난다. 부모님의 유산으로 재력을 가진 젊은 사교계 여성으로 성장하고 21살엔 처음으로 예술과 아방가르드 미술을 접하고 파리로 건너가 여러 예술가, 작가, 영화감독과 친밀함을 유지하며 자신의 안목을 넓히는 계기를 만든다. 여기서 친밀함은 그냥 친구 정도가 아니라 만나면 반갑다고 뽀뽀 아니고 섹스하는 친밀함이다. 이 영화 속 인터뷰하는 페기 구겐하임은 자신의 인생은 사랑과 예술만 있었다고 천진난만하게 말한다. 미술사에서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법한 현대미술의 거장들이 영화에 대거 등장하고, 대부분의 인물들이 페기 구겐하임과 한 번쯤은 연이 닿았다고 한다. 막스 에른스트, 호안 미로, 몬드리안, 피카소, 뒤샹, 달리, 장 콕토, 잭슨 폴록, 키스 헤링 등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그들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페기 구겐하임이 예술가들을 위해 후원하는 일과 작품에 대한 애정을 보면 볼수록 마음 깊은 곳에서 존경스러움과 더불어 씁쓸함이 같이 느껴졌다. 페기 구겐하임이 예술 컬렉터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다기보다 그 시대의 예술가들과 예술 작품들이 페기 구겐하임을 이용해 지금 현재까지 살아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돈보다는 명예와 예술에 대한 넘치는 사랑을 인생의 목표로 살았다 하지만 그녀의 여자로서의 인생을 보았을 땐 그녀가 그렇게나 원하던 예술이 그녀를 아끼고 사랑해주진 않았던 것 같다.
첫 결혼에서는 본인이 더 부유하고 나은 조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작가인 남편에게 폭력과 지적 무시를 당한다. 그 폭력 아래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자를 찾지만 ‘그 시대에는 원래 그랬다’는 흔히 말하는 관습에 따라 아들과 생계비를 남편에게 넘기고 남은 딸과 함께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한다. 게다가 남편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생긴 아이는 수 없이 유산해야 하는 그 시대의 현실을 세월이 지나 할머니가 된 그녀는 또다시 ‘그땐 그랬지’식의 유머로 회한을 삼킨 듯 한 목소리로 인터뷰를 한다. 그리고 잘생기고 재능 있는 화가였던 막스 에른스트도 결국 그녀를 이용해 전쟁을 피해 살아남고 유명세와 사랑하는 여인을 얻는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곁에 남은 딸도 정신질환과 상대방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결혼으로 자살하면서 어머니 페기 구겐하임을 떠난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일생을 반려견 14마리와 함께 지내며 베네치아의 저택에서 생을 마감한다. 어마어마한 거장 예술작가와의 에피소드와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현대미술작품을 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사랑과 관심을 주는 대상은 그녀의 인생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녀의 인생을 한 여자의 일생으로 보기에는 그녀가 우리에게 남겨준 것이 너무나 많고 시공간과 상관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녀가 그렇게나 손에 쥐기 위해 불꽃 튀는 삶을 살았던 결과물들이 그녀가 존재하지 않는 지금 이 시간까지 더 큰 힘을 가지는 것을 보면 그녀의 삶 자체가 예술이었나 보다. 언젠가 나에게도 그녀가 남긴 유산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오길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