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 상을 두 번 수상한 네 번째 작가입니다.

니클의 소년들 _ 콜슨 화이트헤드

by 효리더


주인공 엘우드는 흑인 사회에 사는 평범한 흑인 학생이지만 주위 친구들과는 달리 ‘백인과 같은 행동을 한다’며 놀림감이 될 만큼 흑인 답지 않은(?) 행동을 일삼는 학생이다. 그리고 일찍이 마틴 루서 킹의 연설을 들으며 짐 크로 법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를 세우고 세상 돌아가는 논리 중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스스로 알아차릴 만큼 똑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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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우드는 굳건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한시도 잊지않으려 끊임없이 나아간다. 모든 차별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닌가 싶다.


엘우드의 성실한 학교생활을 옆에서 지켜봤던 고등학교 선생님의 추천으로 그토록 선망하던 대학 수업을 청강할 기회를 얻지만 고속도로에서 잘못 얻어 타게 된 도난차량으로 인해 인생이 180도 뒤바뀌어버린다. 엘우드의 성실한 꿈과 미래는 사회가 못 박아 놓은 편견과 차별로 인해 처참하게 짓밟힌 채 니클이라는 소년 교화 학교에 갇히게 된다. 니클이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는 바깥 사회의 인종차별의 정당성에 대한 의구심 따위는 한 톨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 같은 불량 학생을 모아 놓은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피부색에 따라먹는 음식, 입는 옷, 잠을 자는 곳, 하는 일 등 모든 것이 차별을 넘어 백인 선생들에 의해 노골적으로 분리된다. 엘우드는 혹독한 생활 속에서도 니클의 부당함에 대해서 끊임없이 저항하고 부조리함에 대해 반기를 든다. 그 속에서 우정을 쌓은 친구 터너는 엘우드의 니클에 대한 저항정신을 어리석고 요령 없는 순진함이라 평가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와 함께 니클에 대해서 저항한다. 마지막에 이 둘은 니클이라는 작은 지옥에서 도망쳐 나오지만 터너만 살아남는다. 터너는 니클의 엘우드에게서 물든 순수한 저항 정신을 기리기 위해 엘우드의 이름으로 엘우드의 남은 삶을 정직하게 살아내도록 노력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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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긴 자처럼 살고 있지만 아무도 모르는 사이 차별의 피해자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아무도 모르는 사이 내가 차별의 가해자 노릇을 잘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청소년 권장도서로 유명한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와 몇 년 전 보았던 영화 ‘헬프’가 떠올랐다. 니클의 소년들이라는 이 작품과 함께 미국의 흑인에 대한 차별을 주제로 한 문학과 영화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집권했던 미국에서 이런 역사 깊은 인종차별에 대한 주제가 퓰리처상을 받을 만큼 신선한 소재라는 것에 아시아인으로서 참으로 놀랍다. 언제인가부터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도 서방국가에서 유행해오던 페미니즘이라는 불편한 문화가 전파되었다. 그리고 근현대의 사회 문화 교육 내내 단일민족을 부르짖던 홍익인간 정신을 기반으로 한 단군의 자손들이 이제는 다문화 가정과 난민 문제에 대해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현대의 대한민국도 이제는 더 이상 단일민족이 아니게 되었고, 여성과 성소수자 그리고 해외 난민과 같은 신종 차별 문제에 대해 직면하게 된 현재의 상황 속에서 세계 제일의 강대국 미국이 아직까지도 흑백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베트남과 필리핀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을 대표하는 다국적 며느리들이 생기기 전 단일민족이었던 대한민국에서 해결하기 힘든 차별의 문제를 미국이라는 강대국에서도 골머리를 앓는 문제라 하니 오히려 위로가 되기도 한다. 또, 유럽이나 미국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에게서 심심찮게 들려오는 무차별적 아시아인에 대한 공격과 무시의 무시무시한 카더라 통신을 통해서 인종차별의 역사가 깊고 넓은 백인들도 차별 금지에 대한 국민의식이 단일민족정신에서 벗어난 지 반세기도 되지 않은 아시아인인 우리의 국민의식과 다를 바 없다는 것에서 위안을 얻기도 한다. 그들의 인종에 대한 여전한 무지함과 폭력성에 나의 미숙한 세계 평등의식에 면죄부를 받는 느낌이 든다.

KakaoTalk_20201210_002956477.jpg 맞다. 차별에 대항하는 것은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는 것처럼 살기 위해서 이다. 단 한순간이라도 사는 것처럼 살고자 투쟁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이나 세계는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넓은 땅덩이 미국의 문제가 이미 작은 땅덩어리임에도 불구하고 반으로 쪼개지기까지 한 대한민국의 문제인 것처럼 말이다. 미국이 'KEEP AMERICA GREAT'를 백날 외친다한들 그들의 인종문제에 관한 문학과 영화는 끊임없이 자극적인 주제로 인기를 끌 것이다. 지구에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종種이 살색을 흰색과 검은색 그리고 노란색으로 보는 것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MAKE THE WORLD GREAT’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고 극동의 작은 아시아인이 짐작해본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최초로 퓰리처상을 두 번 수상한 흑인 작가라 소개하는 것보다는 콜슨 화이트헤드라는 작가가 퓰리처 상을 두 번째로 수상한 네 번째 작가라 명명해 주는 것이 훨씬 더 멋진 지구인의 캐치프레이즈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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