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페미니즘_ 벨 훅스
코로나로 인해 망가졌던 2020년을 보내고 새해의 시작과 동시에 새로운 소식이 함께했다. 2019년부터 여러 논란이 있었던 낙태죄가 2021년 1월 1일이 시작함과 동시에 폐지가 되었다. 낙태죄가 폐지되었다 해서 완전한 낙태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도 임신 14주 이후의 낙태는 조건부 하에 가능하고, 미국에선 흔히 쓰이는 유산 유도제의 합법적 구매는 아직까지 불가능하다. 어떠한 입법적 절차와 결론이 만들어지지 않은 채 낙태가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모호하지만 올해의 시작은 우리나라를 살아가는 여자들에게는 또 다른 시작의 순간이기도 하다. 허울뿐인 결과일지언정 2021년 이후를 살아가는 나의 딸들에게도 새로운 시작일 것이다.
2020년의 마지막 독서모임 다섯 번째 책으로 벨 훅스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을 선정하고 나눔을 하고 난 후 이틀 뒤 낙태죄 폐지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여성인권과 임신 선택권과 임신중단권의 토론을 하고 난 뒤 이 소식을 접하고 나니 남의 일이고 여자의 수치라고만 생각했던 일이 나의 일이고 여자의 당당한 권리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여자라서 힘들었던 일들의 원인을 생각해보게 되었고 여자라서 무시하고 싶었던 일들에 대해 바로 보게 되었고 여자라서 당연시되었던 일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우리나라는‘메갈’과 ‘한남’으로 이분화되어 서로에 대한 멸시와 혐오를 기반한 페미니즘 구도인 듯 보인다. 82년생 김지영 책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여자 아이돌을 메갈로 대표되는 극단적 페미니스트라며 그녀의 남자 팬들은 엄청난 실망과 불만을 토로했다.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정작 아무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궁금해하지도 않으면서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스트와 연관된 그 어떠한 기미를 느끼는 순간 그것은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들에게도 가까이하기엔 부담스러운 것이 되어버렸다. 여자가 출산으로 인한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의 사용에 있어서는 남자들의 군 복무라는 적대적 카드로 정당한 사용을 거부당하고, 임심의 선택이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생명권이 우선시 되어 여성으로서의 사회적 권리를 박탈당하기도 한다. 이렇듯 모든 차별받는 약자와 소수들의 당연한 권리와 요구는 언제나 기득권의 최우선적 과제에 항상 밀려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19세기의 여자들은 교육의 기회, 투표권, 참정권도 갖지 못하며 남자들의 사회적 안정과 욕구 해소의 도구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21세기의 나와 같은 여자들은 19세기의 그녀들이 얻어준 교육과 투표권, 참정권을 가지고도 XX염색체로 선택됨에 수반되는 자연적인 일에 대한 배려를 공론화하기를 아직까지도 힘쓰고 있다. 2세기 동안의 노력으로 얻어낸 결과를 의도치 않게 XY 염색체로 선택된 그들은 당연한 권리처럼 사용한 게 얼마나 오래되었는가를 생각하면 허무하기 그지없다.
지구 상의 두 종류의 인간이 양쪽에 갈려 서로의 권리와 득실을 따지며 반목하는 것이 안타깝다. 현재의 페미니즘이 원하는 이상향은 여자만의 위한 이념 성취가 절대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나는 자연의 선택에 의해 한쪽에 서게 된 여자의 입장으로서 반대편에 대치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들의 기득권의 부당함에 대해 조목조목 따지고 싶지만, 지금 이 순간 함께하는 내가 선택한 XY 염색체이자 의도치 않게 나의 반대편에 서게 된 배우자와 아들은 사랑할 수밖에 없다. 내로남불처럼 내가 모르는 남자와 아들은 한남이고 내 배우자와 남편은 나와 함께 하기 때문에 한남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나의 배우자와 아들은 한남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이고, 본인의 아내이자 엄마가 페미니즘 책 한 권 읽고 여성의 인권을 외치며 딸들의 인권에만 집중하고 있다 오해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래서 딸도 아들도 다 가진 엄마로서 이 책은 나에게 페미니즘에서 더 나아가 에코페미니즘이라고 불리는 전 생명적 자유와 평등에 대해 일깨워준 책이기도 하다. 만약 내가 아들만 있었다면 내 아들의 군대와 취업과 결혼생활의 이득을 위해 초기 페미니스트들이 외쳤던 여성의 권리와 자유에는 눈을 가렸을지도 모른다. 나 또한 가부장제와 남아선호 사상에 찌들어 여자라서 잃는 것인 줄도 몰랐던 당연한 권리들이 셀 수 없이 많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내 딸의 취업과 출산과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잃지 않게 해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들이 많음을 깨닫기도 했다.
나는 케이크와 커다란 꽃다발을 선물 받으며 부모님의 월경 축하파티로 첫 생리를 시작했다. 내 주위의 친구들 중에서도 월경 축하파티를 받은 친구들은 몇 명 없다. 그리고 첫 생리부터 지금까지 생리대 이외의 다른 어떠한 용품을 사용해본 적이 없다. 셋째 아이를 출산한 후에 우연히 인터넷과 여러 매체에서 생리컵이라는 경악스러운 생리용품을 처음 접했다. 탐폰과 비슷하지만 ‘저게 여자의 질에 들어갈 수 있을까’ 궁금증을 유발할 만한 크기의 실리콘 요물을 직접 질 깊숙이 넣어 신세계를 경험했다는 신여성들의 증언을 들으며 나는 절대로 못할 일이라 그녀들을 경외하게 되었다. 참고로 나는 생리컵 크기의 세배 정도 되는 머리를 가진 아이 셋을 자연분만으로 출산해본 여자다. 종합해 보면 나는 신세대 부모에 의해 월경 축하파티라는 새로운 기념을 받았지만 세상에 생리용품은 생리대밖에 없는 줄 알았고 세 아이를 자연분만으로 낳았지만 실리콘 생리컵은 두려워하는 논리적이지 않은 두려움 가득한 이상한 여자이다.
내가 초경을 하던 때에도 탐폰이 있었지만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들이 생리대 사용을 암묵적으로 권했던 것은 지금 딸을 가진 부모가 되니 그 의중이 이해가 된다. 여러 이유 중 하나를 고백해보자면, 나의 딸이 어린 나이에 자신의 몸에 있는 성기의 존재를 깨닫고 성생활을 즐거움을 누려야 할 시기보다 앞서 알게 되어 자칫 잘못 오·남용되는 것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었을까 예상해본다. 평생을 사회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살아온 엄마가 사춘기를 시작하게 될 딸이 점점 초경의 시기에 가까워져서 성교육을 코앞에 앞두니 여러 가지 생각으로 고민이 많다. 요즘의 성교육 자료는 내가 배웠던 20년 전보다 비약적으로 발전해 있다. 그 당시 10대였던 내가 학교나 엄마에게 배웠던 성교육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어떠한 비유와 은유 없이 있는 사실 그대로 알려주라 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며칠 전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접한 ‘피의 연대기’라는 다큐는 생리컵은 사실 별 것 아니며 단순히 여자로서 자연적으로 겪게 되는 생리를 좀 더 여성의 몸에 중점을 두고 선택하는 편의용품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현재의 나는 양적으로 풍부하고 엄청난 수위의 성교육 방법론과 내가 해보지도 않은 다양한 생리용품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딸에게 설명해야 할지 마음을 정하고 있지 못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또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만약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여학생의 성기와 성생활에 대해 ‘순결을 잃는다’와 같은 가부장적 사상을 가지지 않고 현재의 성교육 수준과 다양한 생리용품의 선택 가능성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면, 나의 성생활과 생리용품의 선택에 있어서 나는 두려움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배제하고 선택의 자유를 가질 수 있었을까. 또 만약 성이라는 주제에 관해 처음 맞이할 내 딸에게 어떠한 고정관념과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하고 선택 가능성을 쥐어 준다면, 내 딸은 앞으로의 사회에서 여자가 아닌 XX염색체를 가진 인간으로서 본인의 자유와 권리를 만끽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물론 성교육 방식의 변화 하나만으로 남녀의 인권을 동등하게 하기 위한 제도가 만들어지거나 새로운 세대의 인권에 대한 사고방식 자체가 180도 변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과거의 페미니스트들이 200년을 엎치락뒤치락하며 얻은 세상이 지금의 세상이다. 그들이 처음부터 불합리한 세상을 한 번에 전복시키지 못한 것처럼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티끌모아 결국 티끌이겠지만, 꾸준하고 포기하지 않고 연대한 티끌의 세상이 완성되고 있는 중일 것이다. 이 책이 머나먼 미국 땅에서 돌다가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 살며 집안 살림하는 나에게 도달하여 앞으로 나의 미래와 내 딸의 미래에 대해 고민을 시작하게 된 것처럼 세상은 아주 천천히 하지만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으로 변화될 것이다. 그래서 아주 진부한 표현이지만 나는 티끌이 변화의 주인공들이라 믿는다. 그 한 걸음이 나라는 개인의 인식에서의 변화에서 시작되어 다음 세대에게 전달되고 그들이 성장해 계속해서 논의된다면 지금 한 발자국이 그리 작지만은 않을 것이다. 나와 내 배우자, 내 딸, 내 아들 그리고 세상의 모든 딸과 아들이 두 종족이 아니라 하나의 사람으로 사는 날이 오늘도 한 뼘씩 가까워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