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_ 김지혜
첫째 아이가 처음으로 초등학교 입학하고 하교 할 때면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오늘은 친구들과 재미있었냐며 매일 물었다. 그러면 아이의 입에선 ‘몰라’라는 가슴 내려앉는 말만 되돌아왔다. 성의 없는 대답에 대한 서운함보다는 아이가 따돌림이라도 당할까하는 괜한 노파심에 잔소리만 길어졌었다. 초등입학 즈음 이사를 온 이유로 아이는 유치원 친구도 같은 학원 친구도 없어 관계의 끄나풀을 찾기 힘들어했다. 하교 후 놀이터에서 놀아도 같은 유치원 졸업생끼리 무리가 형성되는 분위기 속에서 아이 뿐만 아니라 엄마인 나도 곤혹스러웠다. 매번 내 아이가 먼저 다가가 말 한마디 던져야 간신히 그 날 하루는 놀이터에서 놀 수 있었다. 한번은 용기 내었지만 계속되는 들이대기는 아이한테 스트레스로 다가왔던지, 기어코는 친구와 노는 것보다 혼자 노는 게 좋다는 어마무시한 말이 나오고야 말았다. 특단의 조치로 엄마가 친구 번호 따주는 유난스러운 부모노릇을 감행하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 아이도 동네친구, 학교친구, 학원친구가 점점 쌓이면서 여기저기 조그만 무리를 만들게 되었다. 8살에게도 속한다는 것은 인생의 행복을 결정짓는 큰 의미를 가진다.
첫째 아이 초등입학 전까지는 남편의 직장 근처 작은 신도시에서 세 아이를 키웠다. 그 때 우리 동네는 공장단지근처였고 아파트만 가득한 신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논과 밭이 넓은 곳이었다. 둘째와 셋째 아이는 그 곳의 유일한 산부인과에서 낳았다. 둘째 아이 출산했을 때는 신생아 수유실에 앉아있으면 5명 중 2명은 외국인 산모와 같이 젖을 내놓고 수유를 했다. 2년 후 셋째 출산 때는 정말 신기하게도 나 혼자 한국인이고 다양한 국적의 산모들을 만났다. 마치 내가 한국이 아니라 저 멀리 동남아나 중국, 러시아 어디에서 출산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내가 살았던 아파트 옆에 있는 큰 공원에서 가을쯤이면 시에서 하는 다문화 축제를 구경할 수 있었고, 한 달에 한번은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노동자 가족들이 모여 축구경기하고 도시락 먹는 것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주말이면 공원을 지나가다 구경하며 각각의 나라 사람들이 먹는 음식도 얻어먹기도 하고 그들의 어린 아이들과 섞여 같이 공차기 놀이도 하고 우리가 연 날리는 걸 같이 구경하며 놀기도 했다. 또 둘째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한 반에 두, 세명 정도의 다문화 아이들이 있었다. 그래서 어린이집 체육대회 행사에서 아직 한국말이 서툴고 쑥스러워 우리들의 무리에 끼지 못해 저 멀리서 떨어져 있던 그 가족들이 생각난다. 그때 나도 우리도 그들에게 함께하자 손 내밀지 않았고 그들도 굳이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첫째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이라는 문제가 다가오자 나는 점점 불편한 마음이 커져갔다. 내 아이가 배정될 초등학교는 많게는 3분의 1정도가 엄마나 아빠 중 한 사람이 혹은 부모 모두 동남아계, 중국계, 러시아계인인 자녀들이 함께 있었다. 어린이집을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었고 주말마다 공원에서 스쳐지나갔지만 나는 갑자기 그 사실에 불만이었다. 무엇이라 정확하게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지만 계속해서 ‘이래서는 안 돼’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래서 입학 전 몇 달 동안 남편에게 나의 이 불편한 마음을 공유했고 우리 가족은 경제적 부담과 남편의 출퇴근 시간의 희생을 안고서 5년 동안 살던 곳을 떠나왔다. 만약 그 다문화 가정들이 백인 가정이었다면 나는 그 곳을 떠나왔을까. 지금도 멀지 않은 그 곳을 가끔 찾아가 익숙한 곳을 걷다보면 정확하게 설명이 안 되는 죄책감과 내 안의 깊숙한 속물적 모습이 연기 피우듯 스믈스믈 올라오는 것이 느껴진다.
이 책의 1부를 채 다 읽지 못한 시점부터 나는 예리한 송곳에 맨 살을 찔린 것 마냥 마음이 아픈 통증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처했던 상황과 내가 느꼈던 불편한 마음이 저절로 떠올랐다.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내가 차별받고 차별했던 일들이 생각난 것은 아니다. 과거의 내가 받은 차별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됐기 때문에 잊어버리고 있었다. 과거의 내가 한 차별을 무시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도망쳤기 때문에 더 이상 곱씹으며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차별은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사소한 것에서부터 눈에 확연히 보여 도망칠 수 없는 거대한 것까지 그 종류도 논쟁도 다양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아픔은 내가 했던 차별 자체에 대한 부끄러움도 있지만 오히려 명백한 차별을 하면서도 차별이라 깨닫지 못한 것에 대한 회초리를 맞은 것 같은 아픔이었다. 그리고 내가 우리에 속할 때는 얼마나 극단적으로 그들을 이해하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나 정도면 차별주의자는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한 톨의 배려조차 없는 무의미함인지 깨닫고는 마음 한가운데 큰 돌덩이를 올려놓은 것 마냥 과거의 일들이 버거웠다.
나는 앞으로도 이전과 같이 차별 당할 것이고 누군가를 차별 할 지도 모른다. 내가 ‘우리’일 때와 ‘그들’일 때는 매 순간 엎치락 뒤치락 그 위치가 변할 것이고, 그 속에서 차별이라는 것은 유치한 문제가 되기도 하고 혼자 해결하지 못할 만큼 엄중한 문제가 되기도 할 것이다. 이 책을 읽었다면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부끄러움이나 책임을 조금이라도 느꼈다면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자기검열을 하며 일상을 되짚어 볼 것이고 무던하고 불편함 없던 삶에서 예민한 삶으로 전환될 것 같다. 나에게 이 책은 그렇다. 일상의 사소하고 작은 일에도 하나하나 세세하게 따져가며 한걸음 내딛게 만드는 책이다. 도덕책에나 나올 법한 슬로건으로서의 말 한마디가 아니라 내 가슴과 이성에 꽂히는 그런 책이다. 앞서 얘기했던 나의 예시는 차별이라고 말하기엔 터무니없을 정도로 가볍지만 사소하니까 무심코 지나치던 습관대로 무거운 차별마저도 느끼지 못하고 지나쳐버린 듯하다. 그래서 나에겐 이 책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기적절했다. 더 나아가 혼자만의 반성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연대에 대한 필요성 또한 느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책임 전가를 위한 연대가 아니라 개인의 역량부족으로 인한 연대의 필요성을 말하고 싶다. 연대의 힘이 개인의 반성을 더 빠른 속도로 그리고 더 넓게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만약 귀여운 노란 오리 일러스트에 끌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면 책을 덮을 즈음엔 자기반성과 연대의식이라는 철학적이고 사회적 의미까지 되새기게 하는 힘을 가진 무서운 책이다. 나에겐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