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20년 _ 오소희
마치 유튜브 강연 보듯이 술술 읽었다. 앉은 자리에서 2시간 반 동안 누군가와 수다 진탕 한 느낌으로 읽어 내려갔다. 코로나로 아이들과 그 어떤 때보다 부대끼며 지냈고 막내의 어린이집 입소로 오전의 자유시간의 1년 계획이 무참히 삭제되면서 한동안 우울과 좌절에 빠져 허우적대며 지냈다. 그렇게 번아웃과 비슷한 무기력한 매일이 지속되다 별안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 내가 툭 튀어나와 악을 지르며 반란을 일으켰다. 그래서 1년치 전화영어를 무작정 12개월 할부로 결재했다. 번아웃에서 갑자기 전화영화로 왜 튀어갔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육아 9년 동안 할거야 할거야 하다 아이들 학원비에 밀려 저 깊숙이 쳐 박혀 잊어 버렸던 것이 스트레스에 못 이겨 자기주장하며 터져 나왔다. 매월 10만원의 돈은 3개월 정도의 아이들 문화센터비용이 될 수도 있었고 조금만 더 보태면 피아노 배우고 싶어 하는 아이의 학원비가 될 수도 있었다. 다시한번 생각을 해봐도 나의 전화영어는 지금당장은 물론이고 향후 3년 정도는 세계 팬데믹 상황에서 써먹을 길 없는 그야말로 쌩뚱맞은 폭발물이다. 다만 그 어이없는 결정이 내 삶에 성냥만한 불씨가 되어주었다. 그 불씨는 아침에 일어나 가족의 밥을 차리고 빨리 등교와 출근을 시켜야하는 이유가 되었다. 예전처럼 기력이 다해 침대에 퍼져있는 대신에 부리나케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10시 반에 칼같이 전화하는 얼굴 모를 외국인에게 할 말을 미리 머릿속에 저장하느라 정신이 없다. 나의 속마음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저 아줌마 돈 쓰면서 왜 저런 일을 하나 궁금할 것이다. 나라도 그럴 것이고 지금 나도 내가 궁금하다. 이런 나에게 나도 모르는 내 안의 너무 많은 나를 알아주는 그런 책이 등장했다.
눈썹부터 그릴 것. 이 책에선 눈썹 그리는 행동이 모든 변화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안타깝게도 나는 평생 눈썹 그려본 적 없을 만큼 눈썹숱이 많다. 나에게 눈썹을 그리는 일은 전화영어 받는 일이다. 필리핀에 있는 외국인에게 전화가 온다는 초조함이 모든 행동력에 동기부여를 해준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이렇게 똥줄타게 초조하고 기다려지는 시간은 처음이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짧으면 3달 길면 3년까지 똑같은 일상의 무한반복 고리를 인내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내 아이라 할지라도 같은 일을 묵묵히 한다는 것은 사랑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그것도 돈이 나오는 일도 아니고 상장 하나 나오지 않는 일을 하는 나와 같은 엄마들에겐 그들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가려움이 있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가려웠던 곳을 정확하게 긁어주는 시원한 쾌감을 맛봤다. 흔한 자기계발서처럼 너도 나도 아는 흔한 그 시크릿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은 오히려 공감과 위로에 더 맞닿아 있다. 그리고 우리 할머니와 엄마와 나까지 살면서 보아왔던 여자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둘러보며 여자들이 살아온 삶의 평면도를 보여준다. 전반부엔 페미니즘시국선언으로 우리 존재 자체에 용기를 불어넣고 후반부엔 엄마들의 삶을 공감하고 어루만져 주는 것에서 나아가 방법론도 제시해준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산업역군형 남편 물리치는 방법이다. 이 책을 신혼 초에 알았더라면 지금과 같이 아이가 셋인 엄마가 되어있진 않았을 것이다. 아이가 삶의 이유가 되어주지만 그렇다고 내 인생의 전부인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내가 왜 세상이 말하는 이러한 나쁜 생각을 가진 모성이 부족한 엄마인지 설명해주고 이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며 내 생각을 지지하고 나아가 방법과 잔기술까지 알려주는 고마운 책이다. 그리고 똑같은 엄마인데 전업맘, 직장맘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고 엄마연대를 설명해줘서 더 감사했다. 사실 차별 속 약자이자 가장 연대해야 할 엄마인 여자들이 단순히 생활방식만 따져 양극에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도 안 되는 차별적 슬로건을 당당하게 우리 스스로가 버리고 연대하며 세상에 당당히 나가는 첫걸음이 되길 열렬히 바란다. 마지막으로 독후활동의 일환으로 여기 나오는 언니공동체 카페에 가입하고 승인을 기다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