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인 할리우드 This Changes Everything, 2018
나는 마블의 히어로물을 아주 좋아한다. 마블의 마케팅으로 노출이 많이 된 점도 있지만 DC의 배트맨이나 슈퍼맨보다 마블의 어벤져스는 좀 더 현실의 나와 비슷한 점이 많다. 그들은 초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자주 실수하고 서로 싸우며 그 속에서 유머를 잃지 않고 끝내는 성장하고 성공한다. 그 중 가장 애정하는 캐릭터는 아이언맨과 캡틴아메리카. 언제나 유쾌하고 아픔도 유머로 승화시키는 아이언맨과 완벽한 엉덩이를 가진 캡틴아메리카가 동시에 등장하는 어벤저스 시리즈는 유튜브 영화구매로 소장해놓고 아무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면 종종 틀어 히어로들이 깨고 부수는 장면으로 머릿속을 정화한다. 그런데 나는 왜 마블의 형제 중 여자형제들인 블랙위도우, 스칼렛 위치, 캡틴마블에게는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일까. 그들이야 말로 나와 가장 비슷한 성을 가진 히어로인데 나의 눈은 언제나 아이언맨의 유쾌함과 캡틴아메리카의 근육으로 향한다. 내가 그들을 보지 않은 것인지, 마블이 나에게 그들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은 것인지 도대체 계란이 먼저였는지 닭이 먼저였는지는 마블은 알지만 나는 모른다.
유튜브 세상을 탐험하다보면 나도 모르는 곳에 도착해있다. 내가 건너갔던 동영상들이 진정 나의 취향을 반영한 알고리즘지도로 항해를 해 나가는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유튜브에서 재즈 스트리밍 검색을 하고 나서는 정신 차리고보니 ‘우먼 인 할리우드’라는 다큐영화에 도착해 있었다. 2800원의 대여료를 내고 시작한 영화는 내가 알았지만 모르는 세상을 보여줬다. 미국의 할리우드 시장이 극동아시아의 아주 작은 나라에 사는 나의 가치관 형성에 아주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90년대 문화에 속해 있는 나는 초등학생 시절 디즈니 만화동산을 보기위해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난 경험을 가지고 있고, 중학교 때는 엑스맨 시리즈의 울버린이 첫 이상형이었고 고등학생 때는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 푹 빠져 오만과 편견, 센스 앤 센서빌리티, 브리짓 존스의 일기와 같은 로맨틱 영화 속 콜린 퍼스, 휴 그랜트로 대표되는 영국 오빠들을 흠모했고 대학 때는 영화관이라는 빠질 수 없는 데이트코스에 충실한 헐리우드 산업의 최고이자 최장, 최대 소비자였다. 헐리우드는 나에게 삶을 가르쳐주었다. 헐리우드가 가르쳐준 삶의 주인공은 백인이고 남자이며 이성애자임에도 그 공식에서 나는 철저히 순종하는 아주 쉬운 소비자였다.
내가 어렸을 때는 세계명작동화를 많이 접했다. 요즘 아이를 키워보니 불과 20년 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딸에게 공주가 주인공이고 백마 탄 왕자와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책과 영화는 빼고 보여주는 엄마들이 많아졌다. 나 또한 딸들에게 백설공주와 신데렐라와 같은 공주이야기는 자주 읽어주고 싶지 않다. 이렇게 된 데에도 헐리우드의 지분이 아주 클 것이다. 헐리우드는 어렸던 나에게 남성우월주의를 몰래 가르쳐 주었지만 30대에는 페미니즘도 알게 모르게 주입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한 해 영화관에 걸리는 영화의 80프로가 미국 헐리우드 영화이고 그 영화 속 주인공과 배역 대다수가 남자이며 심지어 제작자, 감독, 미술팀 등 영화 산업의 전반적 주축은 남성이라고 영화는 말해준다. 그 속에서 여성는 남자의 일을 도와주는 역할이고 그마저도 유리천장이라는 것을 통해 제지당한다고 한다. 여성들에게 따라다니는 유리천장이 영화업계에만 존재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다니는 직장이기도 할 것이고,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도, 내가 읽는 책에서도 여지없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몇 주 전에 읽었던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고 처음 든 생각이 있었다. 이렇게 까지 예민하게 사사건건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인생이 힘들지 않을까. 하지만 이 영화 마지막에 한 비평가는 말했다. 어렵지 않다고. 그리고 배우 나탈리 포트만이 말했다. 한명이 나서면 미친 여자 취급을 받지만 백 명이 나서면 부인할 수 없다고. 영화가 끝을 향해 달려가는 내내 내 머리 속에는 점점 부러움과 호기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내 가치관의 기준을 만드는 저 나라는 변화하고 있고 변화의 두려움을 함께 모여 이겨나가고 있다는 부러움. 그리고 이 작은 내 나라에는 저들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어디에 모여 함께하고 있는지에 대한 호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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