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제국이 만든 우주 자이로드롭
앞서 설명한 우주비행기들, <스페이스쉽 투>와 <링스>는 날개가 있다. 모두 로켓 엔진을 장착했지만, 대기권 내에서는 양력을 활용한 글라이딩 비행을 한다. 역사상 인류가 사용한 우주선 중에서 날개를 사용한 형태는 몇 가지가 있는데, 특히 미국의 우주왕복선이 대표적이다. 최초로 성층권을 돌파한 시험 비행체 X-15 역시 로켓 엔진을 장착한 비행기 형태였다. 지금은 미공군의 무인 우주비행체인 X-37이 계보를 잇고 있다.
우주에서 날개는 필요 없다.
날개라는 것은 고도 20km 미만에서나 사용할 수 있다. 진공상태에서는 거추장스럽고, 특히 대기권 재진입시에 넓은 표면적으로 인해서 구조적 안정성에 걸림돌이 된다. 우주왕복선은 커다란 날개를 포함하여 하부에 엄청난 내열 타일을 잔뜩 깔아놨지만, 결국 그로 인해서 <콜롬비아호 : 최초의 우주왕복선>이 대기권 재진입 중에 산화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었다.
스페이스쉽 투와 링스는 자체 추진력 만으로 수직 상승하지 못한다. 약간 비스듬하게 포물선 궤도로 상승했다가 그대로 추락하는 형태인 것이다. 이런 궤도는 <서브 오비탈>이라 불리는, 탄도미사일 포물선 궤도에 속하는 편이다. 발사 지점에서 약간 떨어진 곳으로 추락한다. 물론 날개를 이용해서 어느 정도 방향을 바꿔 되돌아올 수도 있다. 문제는 역시 날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권 비행기와 우주선을 혼합한 형태는 기술적으로 복잡해진다. 최근 NASA는 국제 우주정거장에 우주비행사들을 운송하는 민간 위탁사업에서 날개를 가진 글라이딩 방식의 또 다른 우주비행기, <드림체이서>를 탈락시켰다. 우주선에 관해서 가장 경험이 많은 NASA 조차도 이제는 날개를 가진 우주선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아이러니 하지만 <드림체이서>역시 시험비행 중에 활주로에서 바퀴가 부러지는 사고로 안전성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켰었다.
NASA는 앞으로 날개를 가진 우주선을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민간 우주업체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기술력에서도 관심을 끌고 있는 업체는 딱 셋이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가 설립한 <블루 오리진>,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 그리고 기존 군산복합체의 일원에 속했던 <오비탈 ATK>라는 곳이다. 이 중에서 오비탈 ATK는 논외로 한다. 이들은 미정부를 상대로 하는 관급 용역에 장점이 있으며, 그 배경을 따지면 거대 군산복합체인 보잉과 록히드마틴, 이와 연계된 기존의 우주 산업계가 얽혀 있어서 민간 우주여행 상품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스페이스X는 지금 한창 바쁘다. 사장님이 달에도 우주여행객 보내고, 화성에 식민지 건설한다고 기술력을 수십 년 당겨서 개발 중이라 지구 근처의 우주관광 상품에는 집중할 겨를이 없어 보인다.
스페이스X는 몇몇 외계인들을 잡아놓고 공밀레 중이라는 루머가 있다.
믿거나 말거나.
블루 오리진은 국내에선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듯싶다. 그러나 블루 오리진은 스페이스X에 버금가는 기초 기술력을 가지고 있으며, 막대한 투자금 지원과 기존 우주산업체들의 탄탄한 기술 지원을 동시에 누리고 있는 다크호스다. 아마존 제프 베조스의 자금 동원력은 일론 머스크의 그것에 비해 열 배가 넘는다는 게 금융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게다가 그동안 보잉, 록히드마틴을 비롯한 군산복합체들의 독무대가 되어 공공연하게 옴팡 바가지를 씌웠던 독점 체제의 우주산업이, 스페이스X 덕분에 경쟁체제로 전환되어 이를 갈고 있는 업체들이 많다. 블루 오리진은 바로 그런 점에서 기존 우주업체들의 전폭적인 지원과 협력 체제로 급속하게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돈과 기술 지원면에서 스페이스X를 훨씬 앞서는 여건이다.
스페이스X는 많은 민간인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다. 혁신을 선도하는 이미지는 마치 고 <스티브 잡스>가 이끌던 애플을 연상케 한다. 블루 오리진은 이와 비교하면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에 해당하는 격이다. 특별나게 화려하진 않지만, 매우 체계적이고 상업적인 면에서 차근차근 쌓아가고 있다. 블루 오리진의 개발 로드맵에 따르면, 필자가 보기에도 매우 합리적이고 현실성이 높은 접근법을 택하고 있다. 스페이스X의 다소 무모한 로드맵과는 차이가 있다.
그런 블루 오리진, 제프 베조스는 처음부터 진지하게 100km 카르만 라인을 돌파하는 민간 우주여행 상품을 주력으로 개발하고 있다. 스페이스X는 빈약한 자금력 덕분에 우주정거장 택배업에 집중하여 NASA의 용역비에 의존한 성장을 해왔지만, 블루 오리진은 처음부터 돈 쌓아놓고 우주 관광업을 선점하기 위한 장기 포석을 해왔다. 그 결과가 바로 <뉴 쉐퍼드 : New Shepard> 우주선이다.
필자가 몇 년 전 처음 뉴 쉐퍼드를 접했을 때, 아마도 많은 분들과 같은 생각이겠지만 다소 충격을 받았다.
최신 민간 우주여행선이 뭔가 어색할 정도로 못생겼다!
경박한 표현이 될 수 있으니 묘사는 자제하자. 그러나 저런 형태는 오로지 경제적이고, 안전성과 효율성이 높은 단일 목적 우주선을 설계하다가 나온, 기술자들의 공밀레 결과물이다. 멋진 날개, 매끈한 동체, 타기만 해도 우주를 넘어설 듯한 SF이미지, 배경 사진으로 쓰고 싶은 멋진 우주선... 그런 외형은 결코 아니다.
뉴 쉐퍼드는 가장 효율이 좋은 액체수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로켓이다. 추진력도 충분해서 발사하면 수직으로 빠르게 상승한다. 기술적인 평가를 해봐도, 엔진과 구조설계 등에서 거의 만점을 줘도 좋을 정도인 소형 로켓이다. 다른 로켓들은 사용 후에 버리거나, 회수해도 다시 정비 시간이 오래 걸려서 재활용을 통한 경비절감에 애로점이 있다. 하지만 뉴 쉐퍼드는 회수 후 곧바로 재급유를 거친 후, 간단한 정비를 통해 재발사해도 무방할 만큼 간결하며 완벽하다. (기술적으론... 물론 실제 즉시 재사용은 장담 못한다.)
그럼에도 뉴 쉐퍼드는 우주로 인공위성을 보내거나, 국제 우주정거장에 물자를 수송하지 못한다. 처음부터 단 한 가지 목적만을 위해 다른 것을 모두 버리고 만들었기 때문이다.
6명의 탑승객을 100km 고도까지 수직으로 쏘아 올렸다가 그대로 내려온다.
뉴 쉐퍼드는 오로지 사람을 최대한 안전하게 100km 고도 너머까지 수직 상승시켰다가 귀환시키는 로켓이다. 그러면서도 경제성을 갖춰야 하기에 로켓 본체는 우주선과 분리 후 독자적으로 착륙하여 재활용한다. 사람이 탑승한 캡슐형 우주선은 로켓 연소가 끝나면 분리되어 관성으로 우주까지 올라갔다가 지상으로 귀환한다. 캡슐형 우주선의 안정성은 그동안 인류가 애용해온 방식이므로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다. 여기에 더해서 매우 괜찮은 비상탈출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만약 로켓 발사 시에 사고가 발생하면 사람이 탑승한 부분만 따로 떼어내서 탈출시키는 것으로, 이런 시스템을 갖췄던 유인 우주선이 발사 중에 사고로 우주비행사가 사망한 일은 극히 드물다. (소유즈 우주선 초기의 사고에서도 탈출 시스템 덕분에 사람은 무사히 탈출한 사례도 있다.)
뉴 쉐퍼드는 개발 로드맵에 꽤 충실하게 진행되어 온 편이다. 다른 회사들의 상품이 잇단 지연과 사고로 연기되어 온 것에 비하면 상당히 대조적이다. 블루 오리진은 2017년에 최초의 유인 시험비행을 거친 후, 2018년부터 본격적인 상업 우주관광 발사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앞당겨지진 않겠지만, 적어도 일정에서 1~2년씩 늦춰지진 않을 것 같다. 뉴 쉐퍼드는 3~6명씩 승객을 태우고 텍사스의 발사장에서 매주 한번가량 발사될 예정이다. 가장 중요한 가격은 경쟁사(버진 갤럭틱)에 비해 너무 비싸진 않을 것이라고 한다. 아마도 일인당 3억 원 이내에서 결정되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이다.
뉴 쉐퍼드는 <자이로드롭>이라는 놀이기구와 상당히 흡사하다. 단지 가이드레일이 없을 뿐이며, 여러 가지 안전장치를 충실히 갖추고 수직으로 상승했다가 다시 내려온다. 가격 면에서 몇 만배 더 비쌀 뿐이지만, 그로 인해서 얻을 수 있는 스릴과 경험은 비교할 수 없다. 신뢰성 검증면에서는 그동안 여섯 차례의 시험 발사를 모두 성공적으로 수행했었다. 우주로켓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성이다. 아직 수십 차례의 시험 비행이 더 남아있지만, 앞으로 특별한 사고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100km를 돌파하는 우주관광상품으로는 추천할 만하다.
믿음이 가는 블루 오리진, 서브 오비탈 관광상품의 첫 주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뉴 쉐퍼드는 이륙 후 캡슐 분리, 카르만 라인 돌파 후 다시 자유 낙하하여 지상에 돌아오기까지 고작 10분가량 비행한다. 이 중에서 정점에 도달하고 무중력 체험을 하는 시간은 3분이 채 안될 것이다.
반면에 로켓 비행기들은 날아오르는데 약간 더 시간이 걸리고, 때론 모선에 부착돼서 상승하는데도 꽤 시간이 걸린다. 정점에 도달 후 자유낙하하는 속도는 비슷하지만, 대기가 풍부한 고도에 도달하면 활공비행을 시작하는데, 이 경우 체공 시간이 길어지게 된다. 뉴 쉐퍼드가 수직상승, 수직하강을 하는 시간에 비해 전체 비행시간이 훨씬 길어진다.
수억 원에 이르는 엄청난 금액을 지불하고 총 비행시간이 고작 10분인 것과, 그 몇 배에 이르는 시간을 비행하는 것은 승객들의 체감상 큰 차이를 줄 수도 있다. 물론 클라이맥스는 모두 비슷한 시간 동안 지속이 된다. 뉴 쉐퍼드는 전희와 후희를 감상할 시간적 여유가 극히 짧은 것이 단점이다.
장점은 앞서 말한 것처럼 매우 높은 신뢰성이다. 지금껏 인류가 우주로 가는데 가장 많이 쓰인 방식이기도 하다. 그리고 비상탈출 시스템도 안정성이 높아 보인다. 만약 비행기 형태의 우주선이라면, 유사시 탑승객을 사출좌석으로 대피시켜야 한다. 그러나 성층권 이상의 고고도에서 사람이 튕겨져 나온다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만약 글라이딩 방식의 상품과, 뉴 쉐퍼드가 공존하게 된다면 우주를 체험하려는 여행객들은 두 가지 상품의 차이점을 명확히 이해해야 할 것이다 뉴 쉐퍼드가 조금 더 안전하게 우주를 다녀올 수 있지만 뭔가 허전할 것이다. 우주비행기 형태의 상품들은 극한의 스릴과 긴 여운을 남겨줄 수 있지만 위험성은 더 높다. 물론 가격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