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라이너를 잇는, 보잉의 야심작 CST-100 Starliner
항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보잉의 B-787 드림라이너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국내 모항공사에도 도입되어 김포-제주 공항 노선에 투입이 되었다. 드림라이너는 중형 기체임에도 엄청난 장거리를 무급유로 날아갈 수 있다. 변화하는 국제 항공 여건에서 최적의 기종으로 손꼽히며 <꿈의 여객기>라는 찬사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인기 모델이다.
하늘에는 드림라이너가 있지만, 우주에는 스타라이너가 간다.
미국 NASA는 러시아에 위탁해서 국제 우주정거장으로 우주비행사들을 보낸 게 벌써 5년이 넘고 있다. 그 사이에 러시아 우주선 티켓값은 폭등하였고, 변변한 우주선도 없어서 경쟁국인 러시아에게 <퍼주기> 논란이 퍼지면서 자국 우주선의 필요성은 급증하였다. 하지만 NASA의 장기 로드맵은 이렇다.
지구 저궤도(LEO)를 벗어나, 더 먼 심우주(달, 화성, 소행성대)까지 가기 위한 오리온 MPCV 우주선 개발.
지구 저궤도 임무는 민간에 위탁하여 보잉, 스페이스X의 새로운 저가 우주선 개발 지원.
NASA는 전용 우주선인 오리온 MPCV를 벌써 오래도록 개발 중이다. 오리온은 세계 최대의 방산업체인 록히드 마틴에서 개발 중이며 지금까지 벌써 7조 원 가까운 개발자금이 투입되었다. 오리온은 전통적인 캡슐형 우주선이지만 상당히 대형이며, 이중으로 두꺼운 외벽에 둘러싸여 심우주의 방사능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되었다. 특히 안전성 부문에서는 역대 최고 수준이며, 공학적으론 예술적 경지의 화려한 초고가 명품에 가깝다.
초고가 우주선인 오리온을 단순하게 우주정거장으로 파견 인력 수송하는 업무에 쓸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NASA는, 별로 어렵지 않은 저궤도 미션은 비교적 염가의 단순한 민간 우주선으로 대체하기로 결정했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스페이스X의 드래건 우주선과, 보잉의 CST-100 스타라이너이다.
언론과 대중의 주목을 받는 업체는 아무래도 스페이스X 쪽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보잉이 훨씬 큰 기업이고, 경험과 기술력도 앞선다. 보잉은 인류를 달까지 보냈던 아폴로 우주선을 만든 회사다. 사실 우주강국 미국의 대부분 우주기술은 록히드마틴과 보잉이 양분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나마 두 회사는 담합을 위해 공동출자 회사인 ULA를 만들어서 미국의 관급 우주시장을 싹쓸이하고 있었던 게 고작 얼마 전의 일이다.
미국 정부는 NASA의 새로운 주력 우주선을 개발하기 위해 이미 20조 원을 넘게 보잉과 록히드마틴에 지불했다. 그 결과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역사상 최고 명품 로켓이라는 SLS(스페이스 런치 시스템)와 오리온 우주선이다. 돈으로 떡칠한 두 괴물은 빠르면 내년에 달까지 시험비행에 나선다. 그러나 이 녀석들은 오로지 선택받은 NASA의 우주비행사들만을 위한 전용 모델이니, 민간인이 탑승하고 우주여행에 나설 가능성은 전무하다.
그런데 보잉은 SLS의 개발을 맡고 있다. 경쟁사(?)이자 묘한 동업자인 록히드마틴이 오리온 우주선을 담당한다. 미국 정부는 그간 민간 우주선 용역에서 보잉을 밀어주는 듯한 인상을 보였다. 50년 넘는 끈끈한 관계의 보잉과 NASA. 보잉의 스타라이너는 항간에서 오리온 우주선의 다운그레이드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매우 흡사하다. 즉, 카르텔의 일원이 아닌 스페이스X의 진입을 막기 위해, 록히드마틴이 NASA 자금으로 개발한 오리온의 기술을 보잉에게 전달해서 스타라이너를 개발하도록 도왔다는 추측이다.
보잉은 오리온과 스타라이너가 전혀 다른 기술로 개발되었다고 밝혔다.
내후년부터 공식적으로 <우주 택시> 사업에 뛰어들게 된 보잉과 스페이스X는 이미 NASA와 업무 계약을 체결했는데, 보잉 측이 약 42억 불, 스페이스X는 26억 불을 지급받는다. 보잉의 파이가 훨씬 크다. 여기에 더해서 얼마 전에는 업무의 효율을 내세우며 미국 의회가 스페이스X를 퇴출하고 아예 보잉에 일감을 몰아줘서 비용 절감한다는 이야기도 나왔었다. (당연히 미국 내 스페이스X 지지자들이 난리가 났었다.)
우여곡절 끝에 스페이스X는 계속 우주 택시업에 종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일부 NASA의 진보스빨(?) 관료들의 후원 속에 화성, 달 탐사에도 슬금슬금 끼어들고 있다.
NASA의 친스페이스X 관료는 암살 위협을 받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보잉이 마치 동네 양아치 마피아 큰형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기술과 경험에서는 인류 최고의 기업으로 손꼽힌다. 스페이스X가 거리를 배회하며, 중견 우주기업에서 해고된 기술자들을 불러 모아 기술을 빼내 온 편이라면, 보잉은 원천 기술을 만들어온 회사다. 특히 아폴로 달 정복의 주역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런 아성을 신생 벤처기업에게 빼앗기기 싫은 거다. 그래서 탄생한 게 바로 보잉의 야심작, CST-100 스타라이너!
이 부분은 명확한 상세 자료가 아직 풍부하지 못해서 필자가 정확한 검토를 내리지 못했다. 홍보에 신경 쓰는 스페이스X와 달리, 기존의 우주업체들은 조금 폐쇄적이다. 자세한 스펙도 공개되지 않은 것들이 많다.
스펙만 공개되면, 시뮬레이션으로 우주선의 성능을 꽤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여러 실험 공개 장면과, 간략한 스펙 등으로 볼 때 스타라이너는 상당한 물건(!)이다. 경쟁 기종인 스페이스X의 드래건 V2는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우주정거장, 달, 화성까지 모두 써먹을 수 있는 듯 여겨지지만, 스타라이너는 기본에 충실해서 지구 저궤도 미션에 특화된 모범생으로 보인다. 또한 드래건 V2는 오로지 자사의 발사체인 팔콘 9, 팔콘 헤비에만 장착이 가능하다. 반면에 스타라이너는 거의 모든 발사체에 장착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잉은 이 방면의 최고 경험자라는 것을 잊지 말자.
보잉은 스타라이너를 이용해서 저급한 <민간 우주여행> 시장에도 뛰어들 것을 천명했다. 자신들의 우주선이 경쟁사에 비해 훨씬 안전하고, 믿음직스럽다는 점을 강조하며, 곧 개설될 우주호텔까지 민간인들을 태우고 콜택시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스페이스X가 민간 달 탐사를 앞당겨 추진하는 이유가 이런데 있는 것이다. 보잉이 견제에 나서니까, 스페이스X는 이벤트로 대응하고 있다.
덕분에 즐거운 것은 민간 우주여행객들이다. 서브 오비탈을 뛰어넘어, 오비탈까지 단숨에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경쟁으로 인해 서비스의 품질은 높아지고, 가격도 안정이 될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보인 면으로 판단하면 스페이스X와 나머지 기존 업체들은 결코 섞이지 않을 듯하다. 이런 흐름에서 지금 우주 택시업을 독점하고 있던 러시아도 조급해진 양상이다. 벌써 반세기 넘게 써먹고 있는 소유즈 우주선은 너무 구식이다. 탑승인원도 적고, 내부도 비좁다. 최근의 경제 상황 때문에 러시아 우주과학기술이 퇴보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지만, 그래도 한때 우주를 주름잡던 옆 동네 형님은 다시금 새로운 민간 우주경쟁에 뛰어들 것이 확실하다.
만약 오비탈 우주여행을 떠날 사람이라면, 드래건과 스타라이너 둘 중에서 어떤 것이 좋을지 고민해도 무방하다. 스타라이너의 오비탈 민간 여행 비용은 러시아의 소유즈 여행 비용과 비슷할 것이라고 한다. 아마도 4,000~5,000만 불을 예상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