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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련작가 Oct 09. 2024

조물주의 비애

구중궁궐 뭇짐승이 숭상하는 사날(肆捏)과 빈추(鑌醜)와 로락수(虜樂獸)가 기로를 마주했다. 


사날(肆捏)이 말했다.


“내 길로 가자. 나야말로 뭇짐승의 우두머리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나를 영접하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난다. 너희들은 매일 새벽 굳게 닫힌 대문 앞에 선 짐승들의 긴 행렬을 보지 못했느냐?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내 몸을 두른 가죽은 동대문의 그것과 별다른 바가 없고, 크기도 그것과 차이가 없으며, 실용성도 떨어진다. 짐승들이 내가 앉는 자리마다 손수건이나 휴지를 깔아줘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나를 한 번이라도 안아보기 위해 줄을 서지 않는가? 나는 사랑의 언약이요, 효도의 최후이며, 차별의 표상이다.”


사날(肆捏)의 말을 들은 빈추(鑌醜)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옥상옥(屋上屋)이란 말을 들어보았느냐? 뭇짐승들이 아무리 너를 귀하게 여긴다 한들, 너는 소털일 뿐, 기린의 뿔이 아니다. 그것들이 오전 아홉 시부터 오후 여섯 시까지 고된 노역의 대가로 받은 결실을 나를 위해 더 많이 쓰기 때문이다. 보통의 짐승들이 불과 30일의 노역으로 너를 얻을 수 있다면, 나를 얻기 위해선 수백 일을 노역해야 한다. 나도 몸을 두른 철판은 울산에서 나온 그것과 다를 바가 없고, 크기도 그것과 차이가 없으나, 실용성은 떨어진다. 짐승들이 내가 아프면 오랜 시간 비싼 값을 들여 치료해줘야 하니까. 그럼에도 그것들은 나를 타는 게 소원이지 않은가? 나는 승차감보단 하차감이요, 그래서 성공의 상징이다.”


둘의 말을 조용히 듣던 로락수(虜樂獸)가 머리 위에 올려진 번뜩이는 왕관을 만지작거리며 크게 꾸짖었다.


“어리석구나! 왜 실용을 논하고 수준 낮은 것들과 우리를 비교하는가? 우린 실용적이어서 숭상받는 게 아니다. 실용성이 없을수록, 쓸모가 없을수록, 우릴 향한 경애는 커져만 간다. 내 길로 가자. 우리 가운데 뭇짐승을 이끌 진정한 왕은 오직 나밖에 없으니. 우리 중 황제를 가리는 방법은 쉽다. 짐승의 우두머리들이 얼마나 사랑하느냐를 보면 되지. 뭇짐승의 지존인 미합중국(美合衆國) 우두머리들의 손목에는 대대로 내가 있었다. 또 짐승들이 꼭두새벽부터 줄을 선다고 나를 만날 수 있는 게 아니요, 나를 한 번 모셨다가 다른 짐승에게 넘기면 수천만 원의 웃돈을 번다.”


로락수(虜樂獸)의 호통을 들은 사날(肆捏)과 빈추(鑌醜)가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야말로 유구한 역사와 희소성의 정점이라는 로락수(虜樂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셋은 로락수(虜樂獸)가 가리킨 길을 향해 걸었다.


주저앉아 그들을 지켜보던 짐승 수수자(秀手子)가 굳은살 박인 양손으로 뭉툭 잘린 양다리를 만지작거리며 한탄했다.


“내 곱디곱던 양손은 어디로 갔는가? 맨손으로 뒤뜰에 용광로를 짓고 철광석을 뽑아내느라 사라진 것인가. 내 튼튼했던 양다리는 어디로 갔는가? 맨다리로 참새와 바퀴벌레와 모기와 파리를 쫓느라 사라진 것인가. 그로부터 수십 년 지난 지금도 주저앉아 저들을 끝없이 만들지만, 여전히 나는 비좁고 어두운 곳에서 밥을 먹고 대소변을 누며 잠을 자는구나!”


곧 짐승 수수자(秀手子)에게 사날(肆捏)과 빈추(鑌醜)와 로락수(虜樂獸)가 걸어간 방향에서 뭇짐승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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