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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련 Oct 14. 2024

신발과 싸우는 법

문명인을 만드는 건 신발이다. 신발은 문명국의 근저를 이룬다. 문명이란 사통팔달의 소통인데, 신발을 신고서야 산과 바다를 넘을 수 있어서다. 무역과 전쟁 중 발을 다치는 건 곧 죽음을 의미하니까.


내가 살았던 기원전 전국시대는 신발이 다양하지 않았다. 조(趙)나라 사람과 초(楚)나라 사람이 신는 신발이 같았고, 같은 나라 안에서도 위정자와 백성의 신발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발의 재료와 제조법이 같아서다.


입지 못한 혼례복과 피 묻은 베옷을 상례옷으로 지어 입던 때의 얘기다. 허공을 내달리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력자가 뒷덜미를 향해 날아드는 한 치의 비수에 땅으로 나뒹굴던 혼란한 그 시절의 얘기. 그래도 그때는, 신발과 싸우는 게 쉬웠다. 모든 신발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욕망을 향해 걸었다.


글을 외운 이는 나라의 동량지재가 되고자 했고, 글을 짓는 이는 초야에 묻혀 심신을 고결하게 하고자 했으며, 힘이 센 이는 농기구 대신 창칼을 들고자 했고, 문무(文武)에 모두 무지했던 이들은 논을 버리고 산속에 숨어 화전을 일구고자 했다.


당시엔 신발만 보면 그의 사정과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보법과 보폭은 달랐지만 신발이 모두 생존과 번식이라는 욕망을 추구한 까닭에. 살풍경한 계절이었으나, 사람들은 신발로 서로의 민낯을 확인하며 신의를 굳혔다.

피가 묻었는가? 흙이 묻었는가? 어디가, 얼마나 해졌는가? 그렇게 우리는 같은 신발을 신고, 같은 신발로 말하며, 같은 신발과 싸웠고, 같은 신발로 위로했다.


오늘날은 나의 신발과 너의 신발이 다르다. 위정자와 시민이 다르고, 빈부에 따라 다르며, 소속된 조직에 따라 다르다. 종류와 목적, 외관, 색깔, 가격, 재료, 제조법이 천차만별인 신발들이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걷고 있다.


이런 까닭에 현대인은 서로의 민낯을 보기 어렵다. 나와 너의 신발이 다르므로, 상대방의 신발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해진 내 신보다 멀끔한 신발을 신은 그는 사실 지옥불을 건너는 중일지도 모른다. 다만 신발이 튼튼할 뿐.


마음을 나누기 어려운 시대다. 위로를 건네기도 어려운 시대다. 서로 통할 수 없으므로, 서로 싸울 수도 없다. 이렇게 道를 전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그래도 道가 통하고 道를 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아야지. 우리는 문명인이기 전에 사람이니까. 신발을 벗으면 모두 맨발이니까. 21세기 신발과 싸우는 최고의 방법은 우리의 맨발을 잊지 않는 것이다. 먹구름 뒤에는 언제나 맑은 하늘이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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