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직장인들이 상사에게 가장 많이 듣는다는 소리가 '우리도 AI로 뭔가 좀 해봐'라죠? 잠시 피식했지만 그 뒤로 길게 씁쓸했습니다. 단순한 밈으로 즐기기엔 필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림이거든요. 빅데이터가 그랬고 메타버스가 그랬습니다. 업계 관계자로서 느끼는 안타까움이랄까요. 우리가 고수하고 있는 일의 방식에선 인공지능을 이렇게 소비할 수밖에 없겠구나 싶은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일의 관점에서 인공지능은 여러모로 매력적입니다. 매력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선 그전에 해두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혹시 '우리도 인공지능으로 뭔가 좀 해볼까'라는 얘길 들으셨다면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부분을 한 번 짚어 보시기 바랍니다.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습니다.
인공지능은 어디까지나 도구다
우선 인공지능은 어디까지나 도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도구는 특정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그 자체로 가치를 갖진 않습니다. 목적이 되는 가치가 있어야 도구로서 가치를 가지며, 목적이 분명하고 명확할수록 도구의 가치 역시 선명해집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쉽게 인정하는 '정답'의 영역입니다.
필드에 있다 보면 정답에서 벗어난 기획들을 하나씩 접하게 됩니다. 대부분 도구는 선명한데 반해 목적이 불투명한 사업들이죠. 불투명함에 대해 말씀을 드리면 갸우뚱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럴 땐 목적을 기대효과로 바꿔보라는 조언을 드립니다. 누구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설계했는지가 중요합니다.
기업에게 ‘당신 회사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묻는 시대입니다. 그간 금과옥조처럼 배우고 읊었던 이윤추구와 성장은 기업의 입장에서나 유효한 목적이지 소비자에겐 아니라는 거죠. 선택의 기준도 달라졌습니다. ‘가격과 품질보다 기업의 가치관과 신념을 보고 구매한다’는 비율이 전체의 64%, 절반을 넘었습니다. 존재 이유를 인정받지 못하는 기업이 설 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개별 사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철저히 외부의 시선에서' 어떤 것을 얻을 수 있는가를 선명하고 명확하게 언급해야 합니다. 그게 불분명하다면 제아무리 좋은 도구라도 내세울 명분이 떨어집니다.
일의 해부가 필요하다
도구사용의 명분을 챙겼다면 이제 설득의 단계로 넘어갑니다. 외부의 시선은 조직을 경계로 나누어집니다. 사업의 방향이 조직 내부를 향하는가 외부를 향하는가에 따라 점검해봐야 할 지점 역시 달라집니다. 물론 조직 내부와 외부, 모두 설득해야 한다는 미션은 동일합니다.
사업이 조직 내부를 대상으로 한다면 '일의 해부'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모든 부서나 업무 프로세스에서 인공지능을 필요로 하진 않기 때문입니다. 제트 비행기가 가장 빠른 이동수단이지만 출퇴근에 적합한 교통수단은 아니며, 슈퍼 컴퓨터가 기상 예측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웹 서핑과 영상을 즐기는 일반 가정집에서는 과하듯 막대한 초기 도입비용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도입했다간 부작용만 야기하기 쉽습니다. 어디에 어느 수준으로 적용하고 활용할지에 대한 정교한 복안이 있어야 합니다. 인공지능의 기능과 한계, 일을 진행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가지고 가야 설득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조직 외부를 대상으로 한다면 '진정 이것을 필요로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진보된 기술이 해답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시장에 나섰다 실패한 사례는 부지기수입니다. 3D효과를 내세웠던 아마존의 파이어폰이 그랬고 마이크로파로 무장한 더멜트의 샌드위치 메이커가 그랬습니다. 파이어폰은 그저 화려하기만 했고 더멜트의 샌드위치는 맛이 없으니 철저히 외면당했죠. 소비자의 가치를 극대화시켜야 인공지능 같은 최첨단 기술도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결국 소비자를 설득시키기 위해선 그들이 의미 있다 느낄만한 그 무엇이 필요합니다. 기술만 가지고는 설득이 어렵습니다.
부수적으로 고민해야 할 지점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신뢰 문제입니다.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먹고 자랍니다. 사용하는 나의 데이터 역시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판단을 내릴 데이터가 부실하다면 어긋나거나 잘못된 콘텐츠를 제공할 수 도 있습니다. 유출 사고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유지보수에 신경 쓸 부분이 많다는 건 그만큼 제품이나 서비스가 많이 비싸진단 의미입니다.
우리가 가진 일의 방식에선 사람이 가장 싸고 흔하다
결과적으로 우리도 AI로 뭘 좀 해보라는 소리는 '알리기 위해서 인공지능을 써먹어보자'란 뜻입니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가 고수하는 일의 방식이 단기간에 사람을 갈아 넣어 경쟁우위를 달성하는 수준에 머물러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갈아 넣을 만큼 흔한 재료라 가격도 낮습니다. 사람 값이 낮게 책정된 환경에서 지불가능한 인공지능의 가격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물론 후자의 경우가 아예 없거나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짚어 왔던 대로 핵심을 파악하여 그에 대한 해답과 적절한 도구를 찾아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해 나가며 목적을 만들어가는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 위에 인공지능이 더해지면 정말 기대되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탄생하겠지요. 비록 익숙하지 않아 초기 도입비용은 높겠지만 말입니다. 아마 그 부분도 손에만 익는다면 그 비용 역시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시중에 나와있는 인공지능 관련 제품이나 서비스는 많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생각하고 기대했던 그 수준이 아닐 것입니다. 분명 편리하고 빨라져야 하는데 별다른 차이 없이 지갑만 열린 현실이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짜낸 결과물이라는 게 여러모로 달갑지 않습니다.
좋아지겠죠? 네.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