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의도는 복제할 수 없기에

정답이다. 조림술사

어제 <흑백요리사 시즌2> 결승전 보셨는지요. 아마 많은 분들이 잠을 설치셨을 겁니다. 기술과 인간, 조직의 관계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으로서 어제 그 장면은 단순한 예능 프로그램의 한 장면을 넘어선 충격이었습니다.


특히 우승을 차지한 최강록 셰프가 ‘나를 위한 요리’에서 보여준 그 서사는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그 한 그릇의 요리가 제게는 마치 '이것이 내 인생이다'라고 외치는 선언처럼 느껴져서, 보는 내내 찌릿찌릿했습니다.


오늘은 흑백요리사 시즌2 우승자가 보여준 인간의 의도에 대해, 그리고 왜 AI는 이 영역에 도달할 수 없는지에 대해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눠보자 합니다.


확률을 거스르는 용기, 결핍의 고백

사실 조림을 예상했습니다. '조림핑', '조림인간'. 그만큼 조림 요리에 정통하다고 알려져 있고, 대중 역시 뭉근하게 졸여진 깊은 맛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시그니처나 다름없는 조림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이어진 고백은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나는 사실 조림을 잘하지 못한다. 공부는 많이 했지만 자신은 없었기에 항상 척하는 삶, 눈치 보는 삶을 살았다."

이 고백은 정말 놀랐다


생각해 보면 우리네 생활도 비슷합니다. 전문가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내면에는 늘 들킬까 봐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는 결승전이라는 가장 중요한 무대, 자신의 콤플렉스를 마주해야 하는 순간에 역설적으로 대중이 가장 기대하는 정답을 버리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건 그동안 자신을 괴롭혀왔던 척하는 삶과의 결별이자, 나를 찾겠다는 선언이었죠.


AI는 선택을 이해 못 할겁니다. AI에게 "결승전에서 우승할 확률이 가장 높은 요리를 내놓으라"라고 했으면 심사위원들의 취향, 대중의 기대치, 그리고 최강록이라는 요리사의 승률이 가장 높았던 필승카드. 99.99% 조림이니까요. AI는 기본적으로 확률에 기반한 모델. 실패를 최소화하고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도록 설계된 알고리즘에게, 리스크를 감수하고 자신의 콤플렉스를 정면으로 돌파한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다릅니다. 때로 확률적으로 불리한 길을 의도를 가지고 선택하니까요. 그것이 나를 증명하는 길이라면, 우승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면 기꺼이 확률을 배반합니다. 어제 그가 조림을 내려놓고 마주한 불확실성이야말로 스스로와 마주하려는 존재만이 가질 수 있는, 비합리적이지만 지극히 인간다운 의도였습니다.


재고 처리인가, 자전적 소설인가 : 정체성의 무게

그가 내놓은 요리의 재료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기가 막힙니다. 그냥 버리기 아까우니 구워서 국물 요리에 넣던 닭 뼈, 해장할 때나 듬뿍 넣던 파, 오늘 팔지 못하면 내일은 버려야 하는 성게알, 마냥 보관해 둘 수 없는 송이버섯까지. 사실 이건 주방 한구석 냉장고에 남아있는 재고에 가깝습니다. 요식업 사장님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소위 짬처리해야 하는 재료들이죠.

요식업 사장님이라면 이해가 가는 마음


요리사로서의 한 줌 자존심도 잊지 않았습니다. 과거 다른 경연 프로그램에서 그에게 쓰디쓴 실패를 안겨주었던, 트라우마와도 같은 메뉴인 '깨두부'를 만들어 넣었거든요. 이걸 자기 점검 차원이라며 다시 끄집어냈습니다. 조림은 포기했지만 요식업 사장님과 요리사로서의 정체성 포기하지 못한 거죠.


이 지점에서도 AI와 인간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AI에게 '너는 20년 차 일식 요리사야'라고 입력하면 흉내는 낼 수 있겠죠. 하지만 팔다 남은 우니를 보며 아까워 어쩔 줄 모르는 자영업자의 절박함이나 닭 뼈 하나에 담긴 아쉬움, 과거의 실패(깨두부)를 이겨내겠다는 극복 의지를 가질 순 없습니다. AI에게 재고는 DB상의 숫자일 뿐, 처리해야 할 감정의 덩어리가 아니니까요.


제 아무리 정교한 생성형 AI라도, '스스로를 위한 요리'라는 프롬프트만으로 이런 궁상맞으면서도 처절하며, 동시에 아름다운 재료의 조합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삶의 흉터와 생활의 무게가 켜켜이 쌓인 인간이 가진 정체성을 감히 이해하고 따라 하긴 어려우니까요.


위로의 알고리즘은 없다, 오직 빨뚜만 있을 뿐

결국 그가 완성해 낸 그림은 빨간 뚜껑의 소주 한 잔을 곁들인 ‘주방 뒤편의 일상에 남은 나를 위한 위로’였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선 몇 시간이고 조려대지만 '정작 나를 위해선 요리해 본 적은 없다'는 사람이 내놓은 건 하루 종일 주방에서 전쟁을 치르고 난 뒤, 불 꺼진 가게 구석에 앉아 들이키는 마감 요리와 노동주였습니다. 좋아하는 가쓰오부시 육수에 남은 재료를 다 때려 넣고 끓인 그 한 그릇. 그것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오로지 고생한 자신을 향한 투박한 위로였습니다.

투박하지만 확실한 위로, 빨뚜


기술이 발달하면서 AI는 우리에게 더 적절하고 와닿는 조언을 해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루 힘드셨겠어요"라는 텍스트를 출력할 수도 있죠. 하지만 AI는 뼈가 녹아버릴 정도로 일한 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소주 한 잔의 그 알싸함을, 뜨끈한 국물이 들어갔을 때 스르르 풀리는 근육과 척추의 감각을 알지 못합니다. 전달할 수도 없죠.


그 빨뚜 한 잔이 주는 느낌은 참 묘했습니다. 귀하거나 비싼 술은 아니거든요. 흔하디 흔한 술 한 잔이지만 내면의 성찰, 자기 수용, 그리고 가장으로서 혹은 직업인으로서 짊어졌던 책임감까지 담겨 있었기에 새롭게 다가오지 않았나. 계산된 공감이 아닌, 체험된 고통에서 우러나오는 위로는 기술이 흉내내기 어려운 인간만의 고유한 향기일 겁니다.




마음까지 조려버린 완벽한 의도

결국 이 요리는 퍼펙트 디쉬를 낳았습니다. 그 까다롭기로 소문난 심사위원이 그릇째 들고 싹싹 비워냈으니까요. 이 무언의 찬사는 단순히 맛에 대한 평가가 아니었을 겁니다. 그 한 그릇에 담긴 한 요리사의 인생, 그 치열했던 삶에 대한 깊은 존중의 표현이었겠지요.

최고의 리스펙이었다


생각해 보면 참 아이러니합니다. 우승을 위해 가장 잘하는 조림을 포기했습니다. 남은 재료, 콤플렉스였던 깨두부, 나와 맞지 않았던 별명들, 척하며 살아온 세월들... 이 모든 오답 같은 재료들을 모아 자신을 위한 한 상을 차렸고 우승했습니다. 자신의 의도를 명확히 구현했고 지켜보는 이의 마음을 조리고, 끝내는 뭉근하게 위로해 버렸습니다.


"이것은 내가 최고의 요리사가 되기까지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 모두가 최고의 요리사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이 슬로건은 단순한 방송 카피가 아니었습니다. 우승자 개인의 서사가 우리 모두의 삶으로 확장되는 순간, 그 제작진의 의도 역시 하나의 낭만으로 구현된 것이죠.


우리는 지금 AI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코딩을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놀랍고 때로는 두렵습니다. 하지만 결승전을 보며 그런 생각은 들더군요. 효율과 확률을 넘어,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타인의 마음까지 움직이는 이 복잡미묘한 인간의 의도만큼은, AI가 따라 하기 어렵겠구나.


결승전,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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