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을 잘하는 방법

분석은 거들 뿐

커피를 상당히 좋아합니다. 하루에 못 해도 세 잔은 마시니 카페인의 힘으로 버티는 감도 없지 않지만, 사실 머리 굴리는 데 커피만 한 게 없습니다. 커피 향을 마주한 김에, 제가 요즘 골몰하고 있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좀 나눠볼까 합니다. 여러분도 조직과 HR, 그리고 이 복잡한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관심이 많으실 테니 제법 흥미로우실 듯합니다.


주제는 '해석을 잘하는 방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변화를 읽겠다고 습관적으로 데이터를 쪼개고 분석하려 듭니다. 하지만 저는 감히 말하건대, 진짜배기는 분석이 아니라 해석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이 해석이라는 놈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그 해석을 잘할 수 있는지 천천히 얘기해보려 합니다.


먼저 용어부터 구분해 봅시다. 분석과 해석, 이 둘은 출발점부터 다르니까요. 분석은 대상을 잘게 쪼개어 그 구성 성분을 밝혀내는 작업입니다. 현상을 구성하는 데이터 조각들을 분리하고 인과관계를 따지는 것이죠. '매출이 10% 올랐다', '퇴사율이 5% 줄었다' 같은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반면 해석은 그 쪼개진 조각들을 다시 이어 붙여 하나의 완성된 그림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왜 하필 지금 매출이 올랐는가?', '퇴사율 감소가 우리 조직에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파편화된 정보 사이의 숨겨진 맥락을 그려내는 것이죠. 대부분은 흔적을 확인하는 분석 단계에서 안도합니다. 거기서 딱 한 발짝만 더 나아가면 좋을 텐데 말이죠.




분석은 해석을 거들뿐

분석을 폄하하려는 건 아닙니다. 좋은 해석을 위해서는 정교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분석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분석은 현상의 흔적을 통해 당시의 상태를 읽어내는 작업이라, 필연적으로 수집한 정보들이 파편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아래 제가 가져온 미국의 2025년 3분기 비농업 부문 생산성 지표를 보시죠.

수치상으론 정말 엄청난 발전을 이뤄냈다


노동 생산성이 전기 대비 4.9%나 상승했습니다. 지난 1분기 -1.8%까지 떨어졌던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반등이죠.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산출량(Output)은 5.4%나 늘었는데, 노동자가 일한 시간(Hours worked)은 고작 0.5% 느는 데 그쳤습니다. 더 흥미로운 건 단위 노동 비용(Unit labor costs)이 오히려 1.9% 줄었다는 점이죠. 이 숫자를 보고 적지 않은 분들이 이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미국의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었네? 산출량은 늘고 비용은 줄었으니, 기업들의 마진율이 좋아지겠구나. 미국 주식 시장에 호재겠는데?"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다소 아쉽습니다. 파편화된 숫자로 들여다보긴 했지만 생산성이 왜 증가했는지 파악하진 못했거든요. 여기서 멈추면 말 그대로 숫자만 핥고 지나가는 꼴이 됩니다. 이 파편들을 모아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 그게 바로 해석의 시작입니다.


'메인스트림(Mainstream)'을 포착하라

그렇다면 해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메인스트림(Mainstream)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바다 위에서 몰아치는 파도 그 아래에는 거대한 해류, 즉 메인스트림이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목격하는 파도들은 그 해류의 흐름이 수면 위로 잠깐 모습을 드러낸 것일 뿐이죠. 파편화된 정보들의 간극을 메워서 그 거대한 흐름과 연결 짓는 것이 해석의 핵심입니다.


앞서 본 생산성 지표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봅시다. 생산성이 4.9% 늘었고 비용은 줄었다는 희망적인 분석 결과를, 2025년 12월 미국의 고용 지표라는 조각과 맞춰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12월 고용 지표를 보면, 비농업 부문 고용은 5만 명이 늘었습니다. 이는 2024년의 월평균 증가폭인 16만 8천 명에 비하면 1/3 수준에 불과한 수치입니다. 실업률이 4.4%로 유지되고 있다는 게 신기하군요.

볼수록 기묘한 미국의 고용지표


산업별로 뜯어보면 모양새가 기묘합니다. 소매업(Retail trade)에서는 12월 한 달간 25,000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기업들의 인력 수요를 보여주는 '임시직 서비스(Temporary help services)'는 석 달 연속 감소하여 12월엔 5,700명이 줄었습니다. 전문 및 비즈니스 서비스(Professional and business services) 분야도 9,000명이 감소했죠. 제조업은 확실한 감소가 보이는군요. 이제 이 조각들을 연결해서 아래 퀴즈를 풀어봅시다.


"산출량은 폭발적으로 늘었는데(+5.4%), 오히려 노동 비용은 줄었다(-1.9%). 하지만 사람은 뽑지 않는다. "


Q) 이 모순적 상황을 관통하는 흐름은 무엇인가?

A) 기업들이 사람을 덜 뽑고도 더 많은 물건과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경기가 나빠서 고용을 줄이는 게 아닙니다. 상당 부분 자동화로 인간의 업무를 대체하거나, AI 같은 도구를 통해 기존 인력의 효율을 극대화하면서 고용의 필요성이 옅어졌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특히 임시직이나 단순 사무직, 소매업, 제조업 등에서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상은 기술의 진보가 정확히 어디를 타격하고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2025년 하반기 미국에서 발생한 '증가한 생산성', '줄어든 노동비용', '둔화된 고용'을 하나로 이어 보면 AI와 자동화로 인한 생산성의 질적 전환, 빈자리에 고용을 미루는 조용한 해고로 귀결됩니다. '고용이 기대에 못 미쳤다' 대신에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고용 없는 성장을 실현하기 시작했다. AI를 통해서'라고 읽어내야 맞습니다.


미래의 흐름까지 읽어내자

메인스트림을 읽었다면, 이제 시야를 넓혀 관련 분야의 트렌드까지 연결해 봐야 합니다.


다시 미국의 생산성 데이터를 보겠습니다. 아직 제조업(+3.3%)보다는 전체 비농업 부문(+4.9%)과 비즈니스(+5.0%)에서 생산성 향상이 두드러집니다. 이는 현재의 LLM으로 대표되는 AI 기술이 주로 지식 노동이나 서비스업 위주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실제로 내구재 제조업의 단위 노동 비용은 0.6% 상승했지만, 전체 비농업 부문은 1.9%가 하락했군요. 하지만 이 흐름이 과연 서비스업에만 국한될까요?


최근에 끝난 CES 2026에선 엔디비아의 코스모스 같은 월드 모델과 현대자동차의 피지컬 AI가 세상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제 AI를 모니터 밖으로 끌어내 물리적 세계, 즉 공장과 물류 현장부터 제어시키겠다는 선언에 가까웠죠. 자동차 회사가 로봇을 만들고, 물류 회사가 로켓을 쏘아 올리며, 가전 회사가 건강 관리에 집중합니다. AI를 통해 업종과 산업 간의 경계가 급속도로 무너져 내릴 거라는 신호로 봐도 무방합니다.

하나의 선언에 가까웠던 CES 2026


앞선 분석부터 메인스트림, 여기에 관련 분야 트렌드까지 이어 보면 우리는 이런 문장을 작성할 수 있게 됩니다.


"현재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고용 없는 생산성 폭증'은 조만간 제조업까지 전이될 것이다. 인간의 노동에 대한 정의 자체를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그 거대한 변화의 초입에 서 있다."


여기에서 HR을 다루는 분들이라면 '내가 속한 조직의 인적자원 전략을 어떻게 재편해야 할지, 나는 어떤 기술을 습득하고 역량을 길러야 생존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반드시 AI를 통해서 말이죠. 해석의 진정한 힘은 이처럼 나에게 떨어질 숙제까지 정확하게 정의해 내는 바로 그 지점에서 나옵니다.




분석가는 포드를 몰고, 해석가는 캐딜락을 몬다

좋은 분석가는 꼼꼼하고 날카로운 눈을 가져야 한다 배웠습니다. 저 역시도 그렇고요. 하지만 분석가는 필연적으로 시야가 좁을 수밖에 없습니다. 일종의 직업병이랄까요. 반면 좋은 해석가는 먼 산을 바라보고, 날씨를 읽으며,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정할 수 있습니다. 부가가치는 거기서 파생되죠.


두려워하지 말고 점처럼 파편화된 정보들을 연결해 보세요. 그 점들은 선의 일부일 수도, 면의 일부일 수도 있으며, 거대한 입체도형의 단면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HR 담당자이든, 신입사원이든, 혹은 경영진이든 상관없습니다. 관심 있는 현상을 끊임없이 연결해 보십시오. 경제 지표와 기술 트렌드, 사회적 변화와 문화적 맥락 그 무엇이든 좋습니다. 그 이면에 흐르는 메인스트림을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한참 떠들다 보니 머릿속이 이제 막 뜨거워지기 시작했는데, 커피가 다 식었군요.

다시 내려야겠습니다.






(참고자료)

CES 2026 Keynote

2025년 3분기 미국 생산성 지표

2025년 12월 미국 고용 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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